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분 궁정동 안가에서 대통령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조갑제 기자에 의하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박정희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남긴 말은 "난 괜찮아, 자네들은 어서 피하게" 였다고 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에 대하여 인간 박정희는 주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훌륭한 지도자다운 모습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유신 독재의 종말을 알리는 독재자의 마지막 신음소리에 불과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정희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총탄에 맞아 죽어가면서 남긴 한 마디 "난 괜찮아"라는 유언 아닌 유언에서 그가 유신이라는 이름의 철권통치로 국민들을 억압했다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 이상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이유를 찾고 있다. 가족들을 위해 모든 고통을 아무 말 없이 혼자 안고 가는 자신들의 아버지의 모습을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박정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어리석고 고집이 세며 가난했던 자신들의 아버지 모습을 회상하면서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삶은 의미가 없는 법이라며 그의 시대를 암울했던 독재의 시대로 기억한다.

하지만 각자의 정치적 견해를 잠시 잊고 사회적 변화의 측면에서 "난 괜찮아"의 시대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박정희의 죽음은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지배하던 기존의 "난 괜찮아"의 시대에서 20세기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주도하는 "넌 괜찮아"의 시대로의 전환점이었다.

대통령 박정희의 시대는 성인 남자들이 다음 세대를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 (La France ne peut être la France sans grandeur) 라고 주장하며 모든 프랑스 국민들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것을 요구했다. 박정희와 같은 해에 태어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취임식에서 "국가가 너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을 묻지 말고 네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 보라"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고 외쳤다. 1945년부터 1993년까지의 미국 대통령들은 - 트루먼에서 아버지 부시까지 - 현역으로 군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개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도 당파적 차이에 관계 없이 남자들이 국가를 위해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 희생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히 생각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럽과 미국에서는 1968년부터, 대한민국에서는 1979년부터 세상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버지(dad knows it all)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각자의 인생은 자신이 결정하는 시대로의 변환이 시작된다. 이제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에게 "난 괜찮아"가 아니라 "넌 괜찮아"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박정희 시대의 강압적 훈육방식에 화가 나 있던 20세기 중반에 태어난 세대들은 다음 세대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에 더 이상 그들의 고통을 안고 가려 하지 않게 된다. "무자식이 상팔자" 라는 이야기가 일종의 유행어가 되고 다음 세대의 고통에 대하여 "넌 젊으니까 괜찮아. (하지만 난 여기서 무너지면 재기하지 못 하니 너희들이 힘들어도 희생해야지)" 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전과 달리 위 세대가 아래 세대에게 자신들의 고통을 전가하는 것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한다.

이는 20세기 중반에 태어난 세대와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세대와의 사이에 새로운 유형의 갈등을 가져오게 된다.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들의 책임전가와 이기주의에 분노하고 반항하기 시작한다. 20세기 중반에 태어난 세대가 그들의 아버지 세대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에 불만을 품었다면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세대는 이전 세대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기회주의적 행태에 분노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기성 세대의 행태를 상징하는 인물로 젊은 세대들에게 인식되면서 그의 공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 있기도 전에 이른바 적폐의 대표적 인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젊은 세대의 불만에 찬 눈에는 1940년대, 195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민자본주의에 충실한 사람들로 인식되며 박정희 체제의 수혜자들이면서 자신들이 과거에 얼마나 유능했었고 부지런했었는지를 잠시도 쉬지 않고 자랑하는 잘난 척 하는 노인들로 보인다. 대통령 박정희로 대표되는 그 이전 세대들이 준비해 놓은 성공의 길로 반강제적으로 달려갔던 과거를 자신들의 도전과 개척의 기록으로 미화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워한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1960년대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586세대들에 대하여는 더욱 냉소적이다. 전두환 시대의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아서 이전 세대의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들이 어떻게 민주주의가 없는 어려운 시절을 살아왔는지를 다음 세대에게 훈계하는 모습은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과 같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신의 생활수준은 남들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진보적인 사람으로 분류되고 싶어서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민주와 평등을 외치는 강남 좌파라는 비난을 받는다.

2010년부터는 기성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말해 주는 "넌 괜찮아"의 이유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과 안철수 대표의 [청춘 콘서트]라는 강연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은 시대를 잘 못 타고 나서 힘든 거야. 그러니까 넌 괜찮아"라고 설명하며 일상 속의 행복을 찾으라고 권유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멘토(mentor)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젊은 세대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넌 괜찮아"라고 하며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시도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넌 괜찮아"가 이전의 "넌 젊으니까 괜찮아"보다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다음 세대에게 아무런 해결책이 없이 말로만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준 것이고 부정적인 면이 있다면 자신의 문제를 사회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치유(healing)이라는 이름으로 위로하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점은 어느 정도 평가되어야 하나 사회적인 불평불만을 전국적으로 증폭시켰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급기야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 온 성공한 기업가 안철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단숨에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게 된다.

이제 이전의 "넌 괜찮아"가 젊은 세대에게 설득력을 잃어 가면서 - 개그맨 유병재는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대하여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라고 sns에 글을 남겨서 많은 젊은이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 새로운 형태의 "넌 괜찮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국가가 너희들을 돌보아 줄 거야. 그러니까 넌 괜찮아"라는 새로운 흐름이 맞춤형 복지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이전의 "넌 괜찮아"가 젊은 세대에 대한 추상적이며 정신적인 (실체가 없는) 위로였다면 새로운 형태의 "넌 괜찮아"는 현존하는 세대에게 구체적인 경제적 혜택을 약속하고 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2016년 성남시장 이재명의 청년배당, 무상 공공 산후조리원, 무상교복 지원의 3대 무상복지사업의 전면실시를 기점으로 경쟁적으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복지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성남시에 거주하는 만 24세 청년들에 대한 50만원 상품권 지급 실시와 그의 대선공약이었던 65세 이상 노인들을 포함한 2,800만명에 대한 연간 100만원 상품권 지급 공약은 이재명을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인물로 자리잡게 했다. 전국의 기초자치단체들은 무상복지에 더하여 맞춤형 복지의 시대를 선언한 이재명의 성남시를 벤치마킹하며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복지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라는 민간 부문에 대한 공공 부문의 거의 유일한 효율성 측면의 우위를 소멸시키게 되고 - 다품종 소량생산은 획일적 대량생산에 비하여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므로 - 추가적인 사회복지예산 증가분을 충당하기 위한 국채 발행을 통한 재원 조달은 현재 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다음 세대에게 전가시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넌 괜찮아"는 "우리 후손들에게 전가하면 되니까 넌 괜찮아"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에게 자신의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게 될 가능성이 큰 맞춤형 복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맞춤형 복지의 시대의 시대를 살아가게 될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세대들은 기성 세대들이 해 오던 대로 이전 세대들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들이 대한민국 헌법이 허용하는 합법적 입법수단을 활용하여 그들의 후손들을 철저히 경제적으로 이용한 세대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하여 고려장이 부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첫번째 세대가 되지 않을지,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넌 괜찮아"라는 말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후세에 남기게 된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세대로 기록되지 않을지, 미래 세대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넌 괜찮아"가 아닌 "난 괜찮아"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준 세대로 기억되지 않을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