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갑질’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이웃집 유(柳)사장은  레미콘 트럭 3대로 시멘트콘크리트 운송사업을 하던 사람이다. 한 대는 자신이 운전하고 다른 두 대는 기사를 고용하여 운영 할 때는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건강이 좋지 못해 운전에서 손을 놓고 장기간 치료를 하면서 사업실적까지 좋지 않아 레미콘 차를 처분하고 한 대만 겨우 유지하고 있었는데, 고용한 운전사가 말썽을 부렸다. 지난 1년간 두 차례나 임금을 올려주었는데, 또다시 임금 인상을 요구하여 따져보니 도저히 올려 줄 형편이 아니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운전기사는 마지막 노임을 받자마자 트럭을 외딴곳에 방치 한 채 도망을 치고 말았다. 도망 간 줄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차량을 찾아 점검 해 본 유사장은 경악하여 주저앉고 말았다. 레미콘드럼 속 가득 돌처럼 굳어버린 시멘트콘크리트를 보았기 때문이다. 거금이 들어가는 수리비를 감당 할 자신이 없는 유사장은 그길로 사업을 접었다. 

필자가 제조업을 운영 할 때 일이다. 개발과 생산기술을 담당했던 간부직원이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발길을 끊었다. 며칠에 걸쳐 알아보니 경쟁사에서 제시하는 파격적인 급여와 승진에 이끌리어 유능한 부하 직원까지 데리고 일자리를 옮긴 것이다. 제조업이란, 특히 정밀한 전자제품 제조업이란 기술적 중심인물에 결원이 생기면 운영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다. 문서상 인계인수를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숙련과 머리로만 간직되는 노우하우까지 인계 받을 수는 없다. 그로 인해 납기를 맞추지 못 한 수출물량은 바이어로부터 오더 캔슬을 통보받고 재고를 처분하지 못 해 금융과 재정 압박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다. 

서울 구로구에서 교육기재를 생산하던 W라는 회사가 있었다. 한 때 석탑 산업훈장까지 받으며 잘 나가던 회사는 노동조합의 지나친 임금투쟁과 파업 여파로 위기가 닥쳤다. 그로 인해 역시 수출오더를 제때 이행 하지 못 해 급기야는 부도가 나고, 윤(尹)사장은 회사를 살려보기 위해 살던 집을 처분하고 셋방을 살면서 안간힘을 해 보았지만 역부족으로 ‘법정관리’가 되기에 이르렀다. 와중에 생활고로 시달리던 윤사장은 이혼까지 당하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어 아픈 상처를 간직 한 채 회사 살리기에 몸을 던졌다. 압류 딱지가 붙은 기자재들이 즐비한 공장 한 구석에 야전침대를 놓고 숙식을 하며 공장을 포기하지 않는 윤사장의 눈물겨운 노력에 감동 한 채권단과 법원은 윤사장을 ‘법정관리자’로 지명하였다. 
숙련된 근로자들은 다 떠나고 몇몇 남은 임직원들과 함께 한 피나는 노력으로 다시 회생 하는듯하였으나, 한번 신용을 잃은 바이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힘들게 버티던 공장은 결국 정리절차를 밟아 폐쇄하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그 공장자리를 지날 적마다 가슴이 아려오고 코끝이 찡 해진다. 내 사업을 접은 다음 윤사장을 돕기 위해 한동안 무보수 고문으로 일 해 준적이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여 !  젊은이들이여 ! 
위의 경우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가?
과거를 돌아보면 위와 유사한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경영진이 겨우 물 컵 하나 집어던진 것이 그렇게도 큰 ‘갑질’인가? 이른바 오너의 그런 갑질은 누군가의 기분을 크게 상하게 하고 마음에 상처를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본인의 노력에 따라 쉽게 치유될 수도 있고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에 비하여,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의 ‘갑질’은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뿐더러 연관 된 사회의 여러 구성원, 이를테면 거래업체와 협력업체 그리고 그 가족들과 소비자들 까지 광범위 하게 피해를 줄 수가 있다. 여기서 노동자의 ‘갑질’이란, 임금체계의 사회적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의 지나친 인상 요구와 노조의 본질을 벗어난 경영권 탈취, 또는 정치적 이념의 재정립 요구를 모두 포함한다. 그와같은 광범위 한 투쟁 결과 생겨난 현재의 집권 세력은 소위 ‘민주화’라는 투쟁시절의 포장을 벗겨내고 ‘사회주의화’라는 알맹이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사회주의’란 ‘공산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그대들이 북한을 닮은 사회주의가 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북한에 흡수되는 통일을 원한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혹 그대들이 인정 안 할지도 모르나, 누군가에게 속아서 합세한 노동자 ‘갑질’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원치 않았던 이상한 나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마음을 바꾸어야 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서둘러 ‘사회주의-공산주의’ 말고 원래 원했던 진짜 ‘민주주의’로 가는 이정표를 고쳐 세우고 다시 투쟁해야 되지 않을까? 그대들의 일자리를 더 만들어 낼 투쟁, 계속해서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게 하는 투쟁, 무식하고 독선적인 불순 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한 정당한 투쟁 말일세.

신현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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