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발언 사실관계 규명 안됐다"며 진위 확인노력不在 스스로 밝혀
"칭찬이 비난 되기도, 비난이 칭찬 되기도, 우리 '남쪽'과 문화 조금 달라도…" 논점 흐려
"文대통령 환대받아" 자평부터가 '남북합의정신 파괴, 反국가정체성, 反인권적' 비판 대상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사진=연합뉴스)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의 고위급회담 과정, 우리 기업 총수들의 9월 대통령 수행 방북, 북측에서 개최한 10.4공동선언 11주년 기념식 등에서 잇따라 갑질·무례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나 '심각한 국격 훼손' 논란이 이는 중에도 청와대는 '물타기'로 일관하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5일 오전 춘추관에서 실시한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정치권에서 리선권의 발언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청와대에서 어떻게 보고 있나'라는 질문에 "일단 말이라는 게 앞뒤의 맥락을 잘라버리면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칭찬이 비난이 되기도 하고, 비난이 칭찬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리선권 위원장의 발언, 그 내용이 현재로서는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조명균 장관에 대한 '주인이 관념없으니 시계가…' 면박주기, 기업 총수들을 압박한 '냉면 목구멍' 발언,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과 초면에 가한 '배 나온 사람' 발언 등으로 연일 논란인데도, 대북대화를 치적 삼던 청와대가 정작 북측에 사실관계 확인 요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대변인은 특히 "설사 그게 우리 남쪽의 예법이나 문화와 조금 다르다 할지라도"라고 거듭 전제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 받았던 그 엄청난 환대에 비하면 그 환대를 훼손하는 정도는 아니다"고 '대통령 의전'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논점을 흐렸다.

사진=TV조선 '강적들' 방송화면 캡처

청와대가 '대통령이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는 언급을 기정사실화하는 자체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일 밤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는 "리선권의 (냉면이) 목구멍 넘어가냐 발언은 문 대통령 방북 때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태영호 전 공사는 "(리선권의 무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첫째로 이번에 북한이 가장 무례한 건 뭐냐면, 문 대통령을 평양 비행장에서 환영하는 공식 행사장에 (동원된 주민들을 통해) 인공기를 띄워 놨다"면서 "이는 남과 북이 (1991년도부터 남북관계를 '통일로 가기 위한 잠정적인 특수관계'라고) 수십년간 합의한 원칙을 깨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 전 공사는 또 "두 번째로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공식 회담장소 사진을 어디에서 찍었는지를 보자"며 "북한 로동신문과 조선중앙TV로 계속 보도하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손을 맞잡고 나온 사진 속 뒤편에 뭐가 있는지 아시나"라고 출연진에게 반문했다.

사진=TV조선 '강적들' 방송화면 캡처
사진=TV조선 '강적들' 방송화면 캡처

이어 "그 뒷면에 조선로동당 규약을 반영한 배경이 나왔다. 위에는 로동당 마크가, 그 아래에 한반도(모형)가 있다. 이걸 딱 중심에 놓고 찍은 사진을 로동신문이 쭉 내보냈다"며 "수많은 배경을 두고 그렇게 당 규약을 설명하는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선전하는 건 정말 '어마(어마하게) 무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6년에 개정된 북한의 조선로동당 규약은 전문(前文)에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 하여 (중략)"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해 김일성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최종목적으로 하고, 한반도 공산화의 방법은 '무력통일론'에 기반했다는 게 그동안의 주된 분석이다. 로동당 규약과 함께 북한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유일영도 10대 원칙'의 제1조는 "주체사상의 기치를 들고 조국통일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위해 투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내용이 얽힌 상징물을 '정중앙'으로 배치해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가정체성 침해에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19일 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관람한 대(大)집단체조에는 어린이, 학생을 비롯한 주민 수만명이 동원됐었다. 이같은 매스게임은 국제사회가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이라고 지적해 온 집체문화 중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주제는 <빛나는 조국>인데, 북측이 이른바 '건국 70년 자축'을 목적으로 정한 것이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를 관람하는 것이 대한민국 건국과 정통성을 스스로 훼손한 것에 다름없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사진=연합뉴스 유튜브)

또한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방북 첫날(18일) 접한 평양시민 수십만명이 동원된 평양 시내 환영행사, 둘째날(19일) 소화한 한밤중 수만명의 대(大) 집단체조 관람 및 15만 관중 동원을 두고 "엄청난 환대"라고 자평하는 행태 역시 문제가 있다. 대집단체조 주제인 <빛나는 조국>은 북측이 이른바 '건국 70년 자축'을 목적으로 정한 것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를 관람한 자체가 건국과 국가 정통성을 스스로 훼손한 것이라는 비판론이 제기돼 왔다.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인권유린이라고 지적해 온 북한판 집체문화를 문 대통령이 '기분 좋게' 받아들인 것도, 사실상 '노예들의 군무'의 비(非)인간성을 외면하는 데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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