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선언 11주년 기념식 만찬서 김태년 與정책위의장 소개받자 발언
與지도부는 "北 사람들 원래 센농담 많이해" "친근감 표현일수도" 또 감싸
당사자 김태년, 리선권 발언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자꾸 가십 만들지 말라" 언론 탓
9월 대통령 수행 방북한 기업총수들에 '뭘 한게 있다고 냉면을 더 드시냐'
반복된 무례한 언사…고위급회담 전 기자 질문에 "왜 그렇게 질문하냐" 면박
조명균 통일장관엔 "주인 관념없으니 시계가…" "기자질문 영 아냐" 갑질
장관 '역지사지 정신' 언급에도 "역지사지란 말 피하자"는 협상 태도 보여

(왼쪽부터) 북한 조평통 위원장 리선권, 조명균 통일부 장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사진=연합뉴스)
(왼쪽부터) 북한 조평통 위원장 리선권, 조명균 통일부 장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사진=연합뉴스)

남북 대화 과정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우리 측 취재진을 노골적으로 비아냥대거나, 문재인 대통령의 9월 방북을 수행한 우리 대기업 총수들에게 '뭘 한게 있다고 냉면을 더 드시냐'고 면박을 줘 파문을 일으킨 북한 대남(對南)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리선권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핵심 당직자에게도 초면에 막말을 한 것으로 4일 드러났다.

이날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리선권은 최근 10·4선언 11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방북한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가리켜 "배 나온 사람한테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고 독설에 가까운 농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대표, 원내대표 다음가는 중책을 맡은 김태년 의장 풍채를 보고 초면에 대뜸 '배 나온 사람'이라고 부른 것이다.

리선권은 지난달 5일 10·4선언 11주년 기념 공동행사 후 평양 고려호텔에서 남측 주재로 열린 만찬에 참석해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연합뉴스는 당시 배석자들을 인용해, 민주당 한 원내부대표가 "이 분이 우리 당에서 (정부정책) 예산을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김 의장을 소개하자 리선권은 "배 나온 사람한테는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고 돌발 발언을 했다. 외모 비하 성격이 짙은 발언을 당사자인 김 의장은 배석자들과 웃어넘겼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별다른 항의 없이 넘어간 셈이다.

민간 방북단은 평양으로 떠나기 전 당국으로부터 '북측 인사와 만났을 때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철저히 교육받았던 것에 비추어 보면, 북측이 조심성 없는 언사로 일관하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MBN 보도화면 캡처
사진=MBN 보도화면 캡처

민주당 안팎에서 이런 후일담이 뒤늦게 회자되는 건 최근 리선권이 지난 9월19일 평양 옥류관에서 오찬을 갖던 우리 대기업 총수들에게 '빈손으로 오셨느냐'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 '(사리 추가를 요구한 총수에게) 뭘 하신게 있다고 더 드시느냐'고 노골적으로 비아냥대 '남북교류 갑질이자 막말'이라는 취지의 비판 여론이 고조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당 지도부 측에서는 '북측 인사들이 원래 센 농담을 자주 하며,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국내정치에서와 결이 다른 인내심을 보이는 모양새다. 

연합뉴스는 민주당 관계자가 통화에서 "리 위원장의 냉면 발언은 발언의 여부를 알 수 없고, 설사 있었다 해도 그 맥락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북측 사람들이 원래 거칠고 센 농담을 하는 일이 많다", "툭툭 던지는 농담이 친근감의 표현일 수도 있어서 발언의 전후 맥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일 예산·법안심사 대비 워크숍에서 리선권의 냉면 막말 의혹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최초 시인했던 조명균 장관을 만나 "야당이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고 하니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해야 한다"고 다그친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보다 앞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리선권의 냉면 막말 파문 당시 "그 말 한마디 갖고 그렇게 굴욕적이다 아니다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발언한 바 있다.

김 의장마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를 마친 뒤 리선권의 '배 나온 사람' 막말 관련 기자들의 질문에 "자꾸 가십을 만들어 내지 마세요"라며 "그러면 본질이 흐려져요"라고 사실상 '언론 탓'으로 대응했다. 그는 앞서 '배 나온 사람' 발언이 실제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웃음으로 답변을 피해 발언 사실을 사실상 인정했고, '심각하게 오간 건 아니죠'라는 질문에는 "예"라고만 답했다. 

사진=TV조선 보도화면 캡처
사진=TV조선 보도화면 캡처

 

그러나 리선권의 무례한 언동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군부 라인이자 대남 선전기구 수장인 그가 북측 수석대표로 대남 협상에 나서면서 '대한민국이 우스워졌다'는 자조를 불러일으킬 만한 언사가 잦았다.

김 의장에 대한 '배나온 사람' 발언, 우리 기업총수들에 대한 '냉면 목구멍' 막말 외에도 리선권은 지난 6월1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을 개시하기에 앞서, 우리 측 취재진에게 "불신을 조장하는 질문을 하면 되느냐"며 '질문 가이드라인'을 종용하는 등 갑질 행태를 보였다. 

당일 기자단에서 "지난 5월16일 북측이 고위급 회담 연기 (일방통보) 이후로 내세웠던 '엄중한 사태'가 해결됐다고 보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리선권은 "엄중한 사태가 어디서 조성된 걸 뻔히 알면서 나한테 해소됐냐 물어보면 되느냐"며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는 측면에서 질문이 진행돼야 하고 오도할 수 있는 질문을 하면 안 되지 않겠냐"고 쏘아붙였다.

특히 질문한 기자에게 그는 "어디 소속이냐"고 묻고 'JTBC'라는 답변을 듣고는 "JTBC는 손석희 선생이랑 잘 하는거 같은데 왜 그렇게 질문하오. 앞으로 이런 질문은 무례한 질문으로 치부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담 전망'을 묻는 기자에게도 리선권은 "아주 잘될 게 분명하지. 기자 선생들은 잘 안 되길 바라오?"하고 비꼬았다.

사진=TV조선 보도화면 캡처
사진=TV조선 보도화면 캡처

리선권은 회담장에 들어온 뒤로는 남측 수석대표인 조 장관을 마주하자 마자 인사말도 없이 "기자, 기자 선생들 질문이 영 아니야"라고 한 소리를 했다.

 "아까 기자 선생이 저한테 '엄중한 상황이 해소됐다고 생각합니까'라고 해서 제가 그건 조명균 선생한테 물어보라고, 그 장본인, 그 초래한 사람한테 물어야지 나한테 물어보느냐"고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들이 일방 거부한 5월 고위급 회담 무산의 책임이 남측에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리선권은 북측에서 바라는 바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상황을 나무 등걸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주먹을 쥔 채 팔을 들어보이며 "팔뚝 만한 작은 나무등걸은 큰 수레를 뒤집어 엎는다. 실제로 큰 수레(남북 정권간 관계)가 뒤집어 엎히지는 않았지만 전진을 가로막은 나무 등걸이 있었다"면서 "나무 등걸을 우리 대로에 갖다 놓는 일이 없도록 하면 북남 관계는 빛(의) 속도, 세계가 알지 못하는 속도로 갈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리선권은 회담 내용 공개도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조 장관에게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첫 고위급 회담인 만큼 공개적으로 기자 선생들이 다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회담 공개와 관련해 "가부를 물으면 좋겠는데 찬성하는 분들 손들라고 하면 기자 선생들은 다 손들 거고, 그렇게 되면 장관 선생을 좀 따분(난처)하게 만들 거니까"라며 "제가 오늘은 양보를 하겠는데 다음번에는 공개를 좀 합시다"라고 했다. 

그는 이날 회담을 마치고 나오던 평화의집 로비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점심식사도 못 한 사람에게 자꾸 뭘 그렇게 문의하나"라며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사진=TV조선 보도화면 캡처
사진=TV조선 보도화면 캡처

리선권은 지난달 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10·4선언 발표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행사가 열린 고려호텔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다가 조 장관이 당초 일정보다 3분가량 늦게 나타나자, "단장부터 앞장서야지 말이야"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후 리선권은 조 장관과 회담장에 들어서며 "조평통 위원장이 복도에서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야…일이 잘될 수가 없어"라고 핀잔을 놓았다. 

조 장관이 "시계를 당장 가서 좋은 걸 사야겠다"라고 에둘러 변명하자 리선권은 "자동차가 자기 운전수 닮은 것처럼 관념이 없으면 시계가 주인 닮아서 저렇게 떨어진단 말이야"라고 야단을 쳤다.

실제 조 장관의 시계는 '30분' 정도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는 그의 옆에 앉은 정재숙 문화재청장을 통해 확인됐다. '30분' 늦은 시계로 '2~3분' 늦은 것이다.

특히 리선권은 조 장관이 "역지사지 하면서. 하나하나 풀어나간다면…"이라고 모두발언을 하자 다음부터는 역지사지란 네 글자를 되도록 피합시다"라고 일축했다. 북측이 대남 협상에 임하는 태도를 바로 알 만한 언사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조 장관은 이로부터 열흘 뒤인 지난달 15일 남북고위급회담장에 들어서기에 앞서 북측 대표단을 '먼저 기다리는' 태도를 보였다.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리선권은 "먼저 나와 계십니까. 아까는 내가 먼저 나왔는데"라고 크게 웃으며 말했고, 조 장관도 "제가 지난번에 그런 것도 있고...."라고 말했다.

사진=TV조선 보도화면 캡처
사진=TV조선 보도화면 캡처

한편 리선권의 '적대 발언' 사례도 있다. 그는 남측 방문단들이 보는 앞에서 행한 10·4선언 11주년 기념 연설에서" '반통일 세력'들 때문에 남북관계가 최악의 파국으로 치닫게 됐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 등도 중단됐다"고 전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적반하장식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쏟아냈다. 

금강산 관광은 지난 2008년 7월 우리 관광객 박왕자씨를 북한군이 등 뒤로 3발의 총을 쏘아 살해하면서 중단됐고 개성공단 폐쇄는 2016년 북한의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강행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한기호 기자 rlghdfl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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