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인하조치로 7천억원 손해 예상되는 가운데 또다시 강제 인하...카드업계 "죽으라는 소리"
금융당국은 "마케팅 비용 줄이면 된다"는 말만...
각종 시민단체·중소상인 "카드수수료 불공정...적격비용 산정에 마케팅 비용 제외해야"
금융당국 "과도한 마케팅 비용 줄이면 카드수수료 인하 가능"

지난 8월 카드수수료 인하 협상 촉구 퍼포먼스
지난 8월 카드수수료 인하 협상 촉구 퍼포먼스

금융당국의 카드수수료 강제 인하로 내년 카드사들의 이익이 7000억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1조원 가량의 수익을 추가적으로 인하할 수 있는 규모로 보고 있다. 이에 업계에선 "카드사들은 죽으라는 소리"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 가능하다'는 식의 진단을 내놓고 있어, 이에 일각에선 자영업자들의 과도한 경쟁으로 촉발된 문제를 단순히 카드사들에게 전가하는 식으로는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적격비용 산정 논의에서 금융당국이 카드수수료율을 0.23bp(1bp=0.01%) 낮추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적격비용 산정은 3년 마다 이뤄지며 올해가 그 주기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확정된 올해 카드수수료 인하 폭만으로 7000억원 가량의 수익이 감소될 것이라 추정되고 있는 가운데, 카드사들은 금융당국의 추가적인 카드수수료 인하가 9890억원 상당의 수익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 삼성, KB국민, 현대, 비씨, 하나 등 올해 상반기 카드업계 순이익은 이미 1년 전보다 30% 이상 급감, 특히 신한카드는 55.3%, 현대카드는 40.8% 감소한 상황이다.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기저효과도 있지만 카드사들의 순이익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이같은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카드수수료 강제 인하가 계속된다면 카드사들을 끝내 파산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이 과도하다고 판단, 이 비용을 줄이면 카드수수료 인하가 가능하지 않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카드사가 수익보다는 외형확대를 중점으로 두고 경쟁하고 있어 마케팅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하 여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서 (카드 수수료율을) 우대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우대 구간도 늘리고 수수료율도 인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카드업계에선 당장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수수료 인하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추가적으로 카드수수료를 내리면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정부가 어떻게 수수료 인하 문제를 처리하느냐에 따라 내년 사업계획이 결정될 것"이라며 "정부가 카드수수료 인하를 확대하면 사실 카드사들은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라고 토로했다. 

반면 중소상인 단체와 시민단체들로 꾸려진 '불공정한 카드수수료 차별 철폐 전국투쟁본부'는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이 6조700억원으로 카드수수료 수입 11조7000억원의 절반이 넘는다는 점을 꼬집었다.

투쟁본부는 "대기업 가맹점에 편중된 6조700억원 규모의 마케팅 비용 등을 원가에서 배제한다면 카드수수료 인하여력은 충분하다"며 금융당국에 마케팅 비용을 제외한 적격비용을 산정해달라고 건의했다.

또 이들은 ▲카드사·가맹점 간 카드수수료 협상권 보장 ▲원가산정에 중소 가맹점 참여 보장 ▲공식기구인 카드수수료 산정위원회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 업종으로 분류되는 카드사 입장에선 고객을 많이 유치하기 위한 비용이 모두 원가 개념인 셈으로 금융당국이 적격비용 산정에 마케팅 비용을 배제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비스 산업의 핵심인 마케팅 비용을 줄여 수익이 보전하라는 주장은 카드사들이 경쟁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또 일각에선 자영업의 과포화 상태로 인한 폐해를 시장 내에서 극복하지 않고, 마치 카드사들이 약탈적이고 이기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논리로 정치권에 의존해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드사들은 그동안 정부의 강제적인 카드수수료 인하로 매번 대책을 세우고 대응해왔다. 정부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가맹점 수수료율을 총 11번 내렸으며, 이에 카드사들은 치열한 경쟁과 마케팅으로 극복해왔다. 카드 연회비 인상도 하나의 방편이긴 하지만 자칫 경쟁사들에 밀릴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쉽게 인상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처럼 자영업자들이 과도한 경쟁 때문에 힘든 문제를 카드사들도 똑같이 겪고 있는 것이지만 한 쪽은 소상공인·자영업자라는 서민 이미지, 그리고 한 쪽은 대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달고 있어 정부의 대책은 항상 정치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만 귀결, 이는 결국 정부에 의존적인 행태만 반복시키게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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