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위부터 시계방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 신원식 전 합참 전략본부장
(왼쪽위부터 시계방향)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신원식 전 합참 전략본부장

북한 정권의 질적 변화 소식이 들리지 않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평양 공동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총6조 22항)의 실행을 서두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지난 10월 23일 국회의 동의 없이 전격적으로 국무회의에서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를 의결·비준했다. 북한의 질적 변화가 없는 가운데 11월 1일 이 합의들이 실행된다면 한국 안보에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될 수 있어 걱정이 앞선다.

우선,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민족자주와 자결원칙 재확인’ 부분은 한국방위에 절대적이자 최선으로 인정되어 온 한미 연합방위체제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북한이 ‘자주,’ ‘민족자결,’ ‘우리민족끼리’ 등을 주장하면서 숭고한 민족주의 정신으로 포장했지만 이들은 실제로 3대에 걸친 북한 정권의 ‘숙원사업’인 ‘동맹해체’를 위한 선전·선동의 주제들이었다. 미국을 한반도로부터 이탈시키지 않고는 그 어떠한 대남전략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북한은 이런 ‘민족’ 논리를 앞세우고 ①유엔사 해체, ②대규모 연합훈련 중단, ③주한미군 철수, ④한미방위조약 철폐 등을 꾀해 왔지만, 한국의 역대 정부들은 북한이 노리는 바를 알기 때문에 그런 선전·선동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양 공동선언은 이런 문제점들을 고민한 흔적을 보이지 않은 채 단번에 북한의 ‘숙원’을 들어준 것이니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군사분야합의서는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점들이 포함하고 있다.

첫째, 군사분야합의서가 담아낸 잘못된 인식과 비합리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70년 분단사에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은 100% 북한의 도발에 의한 것이었으며, 한국이 도발한 경우는 없다. 북한은 1940년대 영월발전소 폭파기도, 1950년대 6.25 남침, 1960년대 해군 당포함 격침, 1‧21 사태, 울진-삼척 공비 침투 사건, 대한항공 격추 사건, 1970년대 국립서울현충원 폭파 미수 사건, 박정희 저격 미수사건, 남침 땅굴 굴착,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1980년대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 대한항공 폭파, 1990년대 강릉 무장공비침투사건, 강릉 잠수함 침투, 제1연평해전, 2000년대 제2연평해전, 2번의 핵실험, 2010년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3번의 핵실험, 무수한 미사일 시험발사 등 무려 6,000 여 건의 크고 작은 대남도발을 해 온 긴장의 주범이다. 그런데도 주범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질책하는 표현은 전무하다. 향후 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언급도 없다. 오히려, 합의서 전문에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통된 인식”이라고 명시함으로써 마치 긴장의 책임이 남북 모두에게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내용에 있어서는 한국의 군사력에만 제약을 가하는 비합리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군사분야합의서를 두고 “허구적·비합리적인 이적성 합의”라고 말하고 있다.

둘째, 군사분야합의서에는 합의 이행을 촉구하거나 검증하는 내용이 없다. 지금까지 평양 정권은 협상과정에서 온갖 사술과 기만들을 동원할 뿐 아니라 합의된 내용을 교묘하게 악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다. 북한은 협상을 투쟁과정으로 삼고 의도하는 결론들을 도출하여 합의에 반영하며, 애매한 해석이 가능한 여지를 만들거나 이행을 회피할 수 있는 조건을 달기도 한다. 이후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온갖 트집 잡아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한국의 안보역량을 훼손시키기 위해 북한이 지난 수십년 동안 앵무새처럼 뇌까려온 ‘숙원과제들’을 한국정부가 토 하나 달지 않고 그대로 들어주면서도 아무런 검증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북한을 상대로 협상을 하면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사술과 기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은 점은 유감스러우며, 설령 추후에 검증장치들이 합의된다고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철저한 검증을 위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는 가운데, 한국의 군사력만 빠른 속도로 망가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셋째, 대규모 군사훈련, 무력증강, 봉쇄·차단, 정찰행위 등을 중단하기로 한 제1조 1항과 지상과 해상 그리고 공중에 적대행위 금지구역을 설정한 2항과 3항이 실행되면 한국군은 백전백패하는 군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중지”로 인하여 향후 한미 합동군사훈련 재개는 물론 한국군 독자의 대규모 훈련도 어려워지게 된다. 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싸워 이기는 군대가 될 수 없다. “무력증강 금지”는 사드배치, F-35도입 등에 장애물이 될 수 있으며, 향후 전반적인 방위력 증강계획을 백지화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상급 군사력 증강인 북핵을 폐기하는 문제는 아직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는데 이래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형태의 봉쇄차단” 역시 한미 연합훈련을 제약할 것이 분명하며, 북한이 해병대의 상륙훈련을 시비할 소지도 있다. “항행방해 문제”라는 표현은 북한의 무장선박들로 하여금 한국 해역을 쉽게 드나들게 할 수 있으며, “상대방 정찰행위 중지” 부분은 북한의 도발기도를 사전에 탐지하는 능력을 불능화시킴으로써 한국군의 억제역량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 분명하다.

제1조 2항의 문제점은 더욱 구체적이다. “군사분계선 5km 내 포병사격훈련 금지”는 유사시 한국군의 제1차 차단력을 불능화시킬 수 있고,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전면 중지”는 최전방 병력을 무위도식 오합지졸로 만드는 조치가 될 수 있으며, “해상기동훈련 중지”는 해군력 불능화와 NLL 무효화를 초래할 수 있다.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는 해안침투를 차단하거나 근해 해전 발생시 지원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고정익(서부 20km, 동부 40km), 회전익(10km), 무인기(서부 10km, 동부 15km), 기구(25km) 등에 대한 비행금지 구역은 수도권 방어를 위한 정찰역량을 크게 제약하고 대북전단 살포를 근절(?)하는 조치가 되며, 특히 고정익 항공기의 공대지 유도무기 사격 등 실탄사격 전술 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북한 대비 우세한 한국의 공군에만 일방적으로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요컨대, 군사분야합의서 제1조가 실행되면 한국군은 연합방위체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훈련과 정찰도 포기하고 현대화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군대가 되고 만다.

넷째, 제3조 ‘평화수역’설정은 (1)사실상 NLL 무효화를 위한 사술적인 조치일뿐 아니라 (2)북한이 서해를 침투 루트로 이용함으로써 서해를 분쟁해역화할 가능성이 증대됨을 의미한다. NLL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이 제11차 유엔사-북한군 간 장성급회담에서 북방한계선 조정 문제를 제기했던 1999년 9월 1일까지 46년간 쌍방이 인정하고 지켜 온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으로서 정전협정이 존속하는 한 협의대상이 아닌 실제적인 국경선이었다. 1999년 이후 북한은 간헐적으로 “북한은 NLL을 인정한 적도 통보받은 적도 쌍방이 합의한 적도 없다”는 주장을 제기했지만, 유엔사 측과 한국측은 “NLL은 합법적이며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9‧19 군사분야합의서는 지금까지 견지해온 유엔군사 측과 한국 측의 NLL국경선 개념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즉, 북한이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또 하나의 ‘숙원사업’을 손쉽게 해결해 준 것이다. 물론, 서해 평화수역은 북한이 진정으로 평화를 갈구하고 진실된 평화행보를 보인다면 진정한 평화수역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사술적인 평화를 추구하면거 기만하는 경우 순식간에 가장 심각한 분쟁해역이 되어 NLL을 지키기 위해 서해바다에 뿌려진 장병들의 피와 땀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질적 변화이다. 북한이 질적 변화를 결단한 상태라면, 군사분야합의서는 새로운 상생시대를 여는 서막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노벨평화상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들의 ‘적화통일’ 목표도 그대로일 것이며, 그 목표를 위해 함정 투성이인 군사분야합의서를 최대한 악용할 것이다. 군사분야합의서의 최대 문제점은 북한이 ‘나쁜 마음’에 대한 대비가 없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악의(惡意)를 품은 상태에서 군사분야합의서가 실행된다면 대한민국의 군사력 붕괴와 국가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나 질적 변화 여부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헌법이 명시한 국회비준을 우회하고 합의서 이행을 서두르는 정부를 바라보면서 “정말 이래도 되느냐”고 묻고 싶다.

공동기고 : 송대성(前 세종연구소장), 김태우(前 통일연구원장), 박휘락(국민대 정치대학원장), 신원식(前 합참 전략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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