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南北조사·착공 합의했지만 美 ‘사실상 불승인’"
통일부 “확정된 일정 없었다” 부인

파주시 경의선 임진강역(연합뉴스)
파주시 경의선 임진강역(연합뉴스)

정부가 오늘(26일)부터 경의선 철도 북측 구간의 현지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미국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오는 11월 5일로 계획한 동해선 철도 북측 구간 점검도 같은 이유로 무기한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비핵화하기 전까지 대북제재를 철저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미국의 대북 기조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문화일보는 26일 남북 철도 연결 및 현대화 사업에 참여 중인 소식통을 인용해 “경의선 철도 공동점검단은 당초 오늘 북한으로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유엔사와의 협의 지연으로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다”고 밝혔다. 이어 “11월 5일로 일정이 잡혔던 동해선 철도 북측 구간 점검도 같은 이유로 미뤄졌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남북이 경의선은 10월 하순, 동해선은 11월 초로 합의를 했으니까 계획은 거기에 맞춰서 잡아놓지만 아직 미국과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남북은 비무장지대(DMZ)의 북측 구간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48시간 전에 유엔사에 군사분계선(MDL) 통행 계획을 통보, 승인받아야 한다. 한미는 통상 유엔사 통보 이전에 사전 협의를 하는데, 이번 공동조사와 관련해 사전협의 단계에서 합의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문화일보는 전했다.

유엔사는 지난 8월에도 남측 열차가 MDL을 넘어 개성-신의주까지 운행하며 경의선 북측 구간을 점검하려던 통행계획을 불허했다. 하지만 유엔사가 통보 시간을 이유로 통행을 불허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미국과 협의 지연으로 현지조사가 무산된 것은 대북제재 해법을 둘러싼 한미 이견이 상당할 뿐 아니라 이것이 남북협력 국면 상당한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은 남북철도가 대북제재에 속하며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기 전까지 제재를 철저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남북협력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정부의 대북 기조와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동안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사업을 위한 공동조사와 착공식이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 15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공동조사와 착공식의 구체적 일정을 북한과 합의한 후에도 유엔 대북제재 면제 신청을 하지 않은 것 역시 이런 판단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번 일로 미국의 대북제재와 정부의 남북협력이 거세게 부딪친 것이다.

지난 8월 유엔군사령부는 남측 인원과 열차의 군사분계선 통행 계획을 불허했다. 당시 정부는 연료차 등을 포함해 열차 6량을 달고 경의선 구간인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열차를 운행하려고 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북한으로 반출하는 물품 중 유류, 발전기 등 대북제재 품목이 상당수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북측 현지에서 우리 측 인원이 사용할 물자를 반출하는 것이므로 대북제재 위반 소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엔 대북제재는 ‘비상업적이고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공공인프라 사업 등 합작사업’의 경우라도 ‘대북제재 면제’를 거쳐야만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한국정부가 공동 조사 계획을 협의하자 이런 제재 위반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유럽 순방에서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남북이 고위급 회담에서 공동조사와 착공식 시기를 합의했지만 미국의 입장 변화는 없는 상태다.

정부는 이날 말까지 며칠이 남아 있는 만큼 미국과 협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과 협의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유엔사의 48시간 전 통보 규정에 어긋나지 않게 MDL 통행 신청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의 비핵화에 비해 지나치게 앞서 나간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협의가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 철도 현지 공동조사가 무산됐다는 보도와 관련해 “확정된 일정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통일부는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경의선은 10월 하순부터, 동해선은 11월 초부터 시작하기로 합의한 바 있으며 관련 준비 중”이라며 “북측 및 미국 측과 협의 중에 있으나 일정이 확정된 바 없다”고 했다.

남북은 이날 오전 판문점에서 장성급 군사회담을 개최했다. 남북은 회담에서 9.19군사합의서에 포함된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등을 논의할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방안과 한강(임진강) 하구 공동조사 방안도 논의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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