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경 기자
조준경 기자

“박주신이 있으면 사진 찍어보면 되지요. 박 씨에 대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이렇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난 22일 서울 고등법원 302호에서 열린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박주신씨(이하 박씨 혼용) 병역면제의혹사건 재판 항소심의 형사6부 오영준 부장판사가 말문을 열었다. 오 부장판사는 장장 세 시간 가까이 피고인측 변호인에게 박씨의 공군 훈련소 엑스레이 피사체와 훈련소 퇴소 후 병역면제판정을 받은 자생한방병원 피사체, 그리고 영국 유학을 위해 세브란스 병원에서 촬영한 영상 의 모순점 설명을 들은 후 지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박원순 시장의 아들 박주신씨의 병역면제의혹 첫 재판이 지난 2015년초에 시작된 이후 거의 4년이 다 돼 간다.

양승오 박사 등 피고인들이 요구하는 재판 진행 조건은 간단하다. 현재 영국에 유학 중인 박씨를 국내에 소환해 MRI와 엑스레이를 다시 찍어서 나온 결과가 2012년 12월 9일 자생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 피사체와 동일하면 깨끗하게 승복하겠다는 것이다.

피고인들은 1심 재판부터 줄기차게 박씨의 국내 소환을 요구했지만 박씨의 영국내 주소를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재검증은 실현되지 않았다. 4년간 주거비와 물가가 비싼 영국에서 생활하는 박씨가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나 장인으로부터 생활비를 송금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송금 받는 계좌에 박씨의 현지 주소가 기입이 돼 있어야한다. 박씨를 찾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또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암센터 병원장까지 지낸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영상의학 전문가인 양승오 박사를 비롯해  다수 의사들이 부정적인 병역면제의혹을 제기했으면 3선 서울시장을 지낼 정도로 우리 사회의 공인인 박 시장이 이 문제를 발벗고 나서서 해명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싶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추가로 기자의 생각을 얘기하자면 박씨가 2011년 9월 공군훈련소 입소 4일만에 허벅지 통증으로 퇴소한 것도 의문이 남는다. 2009년 3월 군번으로 공군(674기) 입대한 기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훈련소 1주차는 피복측정과 여러가지 교육일정으로 체력훈련은 없다. 즉 일상과 똑같은 생활을 한다는 것인데 어떻게 갑자기 허벅지 통증이 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또 기자도 학업 등을 위해 9년 가까이 외국 생활을 해봤는데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한국으로 돌아와 맛있는 음식도 먹고 체력도 보충해서 다시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4년 가까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박씨의 심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싫은건가 영국이 좋은건가? 

국가는 세정(稅政)과 군역 제도가 무너지면 망한다. 특히 군역에 있어서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은 국가의 흥망과도 직결된다. 박씨가 유학중인 영국은 왕족도 군복무를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향이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고위층 자녀들이 재학하던 이튼 칼리지 출신 중 2,000명 이상이 전사하기도 했다. 영국 귀족들의 군복무 전통은 가난했던 유럽 변두리 섬나라를 ‘해가 지지 않는 제국(The empire on which the sun never sets)’으로 바꿔 놓았다.

사회 상층부의 희생정신은 우리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라의 화랑이 그 예다. 660년 황산벌 전투 당시 좌장군 품일의 아들인 관창은 15세 나이로 적진에 단신 돌격해 사망했다. 김유신 장군은 아들 김원술이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한 뒤 생환하자 문무왕에게 처형을 요구하고 평생 의절했다. 남의 자식을 무수히 사지로 내몰았던 ‘신라 삼국통일’의 총사령관으로서 마땅히 보인 반응이다. 이런 정신력이 삼국 중 최약체였던 신라를 부흥으로 이끌었다.

반면 1453년 수도의 성벽이 무너져 내릴 때도 싸움을 용병들에게 맡겼던 비잔티움 제국의 귀족들과 시민들은 오스만 투르크에게 멸망한 뒤 남자는 입고 있던 옷도 빼앗기고 여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복자의 성노예로 전락했다. 자기나라를 자기 손으로 지킬 줄 모르는 백성들이 당하는 대가가 그런 것이다. 고위층이 모범을 안 보이는데 백성들이 미쳤다고 목숨을 버리나?(부연하자면 그나마 마지막 황제는 싸우다 죽었다) 

지금 피고인측은 박주신씨가 몸이 아파서 현역면제 받은 것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피고인들은 면제 과정에서 제출된 엑스레이 피사체와 그 이후에 촬영된 의료기록의 모순점을 들어 ‘바꿔치기’ 대리 촬영이 있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중차대한 의혹이 천만 서울시민을 책임지고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거론돼 온 박원순 시장의 아들에게서 나오고 있다면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 체제 유지와 국민들의 국가수호 의지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 시장이 깊이 관여한 참여연대는 2002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 아들 병역면제에 대해 ‘키 179cm, 몸무게 45kg 인간 미이라를 찾습니다’라는 반(反)인격적인 문구를 들어가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 총재의 아들 병역면제는 합법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박 시장이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고위공직자라면 남의 아들에게 들이댔던 잣대의 반의 반만이라도 자신의 아들에게 적용하길 바란다. 살아있는 아들을 찾는 게 미이라를 찾는 것보다 쉽지 않겠나?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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