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합의인 4.27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도 안받았는데 국무회의로 후속합의 의결?
국무회의 의결 당일 비준까지 정부 단독 진행…이달 말쯤 관보게재시 효력 전망
文 "군사합의 비준 경제에 도움, 완진한비핵화 촉진 역할, 北주민 인권 증진" 강변
조명균 통일장관 "국회와 협의하겠다"더니 법제처 "국회 비준동의 불필요" 판단
법제처, 철도·도로 현대화 포함된 평양선언에 '중대한 재정적 부담' 제대로 판단 안해
국가안보 '직결'되는 남북군사합의에 오히려 '중대한 재정적 부담' 해당 안된다 잣대
한국당, 법제처 자의적 유권해석 남발 질타…"대체 어느나라 입장이냐, 역사적 책임 져야"
바른미래 "판문점선언 국회비준 요구해놓고 구체적 후속합의 직접비준, 순서 안 맞다"
野 비판에도 靑임종석 "원칙과 방향 선언적 합의"라며 "이미 법제처 판단 받았다" 강변
與도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안 되는 가운데 정부가 취한 불가피한 조치" 옹호

문재인 정권이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도출된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 절차가 끝나지 않은 가운데 그 후속합의 성격인 남북 군사분야 부속합의서와 9월 평양공동선언을 '입법부 패싱'한 채 행정부 단독으로 비준 절차를 마쳤다.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로 공조해야 할 미국과도 파열음까지 일으킨 사안이어서 적잖은 논란이 일 전망이다.

정부는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9월 평양공동선언'과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심의·의결했다. 이후 두 합의서를 국회 비준 동의 없이 바로 대통령이 서명, 비준했다. 비준 절차를 국무회의 의결 당일 마쳐버리면서 당초 예상보다 관보 게재도 빨라질 전망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대통령 재가 이후 관보 게재까지 보통 5일 정도 소요되며, 관보에 게재되는 순간 효력이 발생한다. 남북 군사합의서는 별도로 북측과 문본을 교환(합의서 제6조 '이 합의서는 쌍방이 서명하고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하는 절차를 거쳐 북측으로부터 입장을 받은 뒤 관보에 게재하면 효력을 갖는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통상 남북 공동 선언문이 법적 효력을 지니려면, 먼저 법제처 심사를 거친 후 국무회의 심의 및 대통령 재가를 받아야 한다. 그 다음 국회 비준 동의 후 대통령이 비준하고 공포 절차를 거쳐 발효된다. 그러나 법제처는 이들 두 합의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지난 10월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법제처는 평양공동선언이 판문점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 합의의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해서도 판문점선언의 부속 합의 성격인 데다 국회 비준 동의 요건인 남북관계발전법상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발생하지 않아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분명히 남북 정권이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올해안에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가지기로 했다"는 등 대규모 대북 투자를 요구하는 사업들을 합의했는데 '중대한 재정적 부담' 여부를 짚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군사분야합의서를 경협사업과 동일한 '중대한 재정적 부담' 잣대만 놓고 판단했다는 문제점도 거론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합의는 합의 이행에 비용이 들지 않아 비준 대상이 아니다"라며 "미국도 남북 평양 정상회담 직후 환영 성명을 낸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에는 유엔제재위반 가능성을, 군사분야 합의에는 군 당국간 협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무엇보다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의 '모체(母體)' 격인 판문점선언에 대한 비준동의안이 합의사업 이행 비용 졸속추계 등 논란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데 후속 합의들부터 정부가 자체 비준해버리는 셈이다.

행정부가 노골적으로 입법부인 국회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게다가 야권이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를 저지하는 주된 근거가 비용 졸속추계로 인해 '중대한 재정적 부담'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북한 정권과의 후속 합의들을 '중대한 재정적 부담'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체 의결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0월1일 국회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야당 국회의원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당초 평양공동선언 등에 대한 국회 비준도 검토했었으나 국회 무시로 자체 결론냈다는 비판도 제기될 전망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일 국회 대(對)정부질문에서 "평양공동선언의 국회 비준에 대해 검토 중이다. 필요하다면 검토되는대로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두 후속 합의서 심의와 관련해 "남북관계의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더 쉽게 만들어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위할 뿐 아니라 한반도 위기 요인을 없애 우리 경제에도 도움될 것"이라고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그동안 불이익을 받아왔던 접경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먼저 혜택이 돌아가고 북한 주민 인권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키는 길이기도 하다"면서 "오늘 심의 비준되는 합의서들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각 부처가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 유럽순방과 관련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영국을 비롯한 주요국을 방문하거나 개별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 발전 방안 뿐 아니라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바티칸과 교황께서는 평양 방문 의사를 직접 표명하시는 등 최대한 지지를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뜻을 같이 하고 있는 만큼 당사자인 우리의 역할과 책무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며 "핵위협을 완전히 없애고 완전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국민들도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분야 합의서 정부 단독 비준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비판을 가하고 있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22일 심야 논평을 통해 "두 합의서는 국회에 이미 제출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의 성격을 가지므로 판문점선언 비준논의가 마무리 된 이후 국회 비준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문재인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는 철도·도로 연결, GP 철수 등 막대한 예산과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국회비준동의가 필수적인 사안"이라며 "특히, 군사분야 합의서의 경우 마지막 내용에 '정당한 절차'를 거쳐 효력이 발생한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그것이 충족된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판문점선언과 부속합의서의 처리 순서도 잘못된 것은 물론이고, 막대한 국민혈세가 필요한 것이 자명한 두 합의서를 정당한 절차인 국회 비준동의를 거치지 않는 건 문재인 정부가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오만과 독선"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당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비준 동의 여부는 국회 논의를 통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며 "외교·안보의 중대 사안에 대한 임의적인 유권해석은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특히 법제처 해석 문제에 대해 "법제처가 10·4 선언에는 비준동의가 필요없다고 했다가, 껍데기에 해당하는 판문점선언은 비준동의의 대상이라고 하고, 그 부속 선언인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는 비준동의가 필요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 입장에서 하는 것이냐"며 "국가 안위의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자의적인 유권해석을 남발하고 있다"고 맹비판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백승주 의원도 회의에서 군사분야 합의서 단독 비준에 대해 "안보에 주는 부담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 평가를 보지 않았는느냐"며 "특히 대규모 군사훈련 차단 및 정찰행위 중단 문제를 남북 군사공동위원회 북한 차관급 부부장과 공동위 구성해서 협의해 가기로 했는데 군사주권적 사안인 중요한 문제들을 안보에 주는 부담이 없다니, 어느 군사 전문가와 의논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법제처에 "유감"이라며 "정부가 군사분야 합의서를 일방적으로 합의하고, 일방적으로 국회를 피해서 비준요구 자체를 우회하고, 조치들이 대한민국 안보를 극도로 불안하게 했다. 역사적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른미래당의 이종철 대변인도 이날 구두논평을 통해 "판문점선언은 국회 비준을 요구한 상태에서 더 구체적인 후속 합의 성격인 평양선언을 직접 비준한다는 것은 순서에 맞지 않는다"며 "판문점선언을 비준해 달라고 다짜고짜 들이밀지 말고 야당과의 소통 및 협력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안은 지난달 11일 국무회의 의결 뒤 국회에 제출돼 있으나, 정부가 1년치 비용 추계만 내놓고 합의 내용 전체에 대한 국회 비준을 요구한 탓에 여야 공방 속에 여전히 계류 중인 상태다.

반면 이날 청와대는 한국당의 우려를 '정치적 주장'이라고 치부하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안이 계류 중인 것에 관해 "과거에도 원칙과 선언적 합의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 받은 건 없었다"며 "구체적 합의들을 갖고 나중에 새로운 남북의 부문, 부분 합의들이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만들 때는 그때 국회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칙과 방향, 합의, 선언적 합의에 대해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문제의 후속합의들이 단순 '원칙과 방향'만을 다룬 선언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결여된 점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계자는 "이미 법제처 판단도 받았다"면서 "판문점선언도 국민적 합의와 안정성을 위해서 우리가 추진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식 대변인도 이날 "평양 공동선언과 관련해 남북 간 철도, 도로, 산림 분야에서 실무접촉이 계속되고 있다"며 "유엔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분야에선 협력을 지속해 나가야 하는 만큼 불가피한 조치"라고 청와대의 역성을 들었다. 그러면서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취한 불가피한 조치인 만큼, 정치권에서도 대국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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