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박정희 정신'을 다시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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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10.22 10:12:31
  • 최종수정 2018.10.24 21:35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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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서울의 학생 수는 14% 줄었지만 교육청 예산은 23% 늘어...국고낭비 심각
풍요와 번영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최대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슘페터의 경고 되새겨야
박정희 시대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땅'에서 어떻게 경제 기적 일으켰나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O 풍요가 자본주의 최대의 적(敵)

형용모순은 형용하는 말이 형용 받는 말과 모순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드는 예가 ‘둥근 네모’이다. ‘포함관계 모순’도 떠올릴 수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이 그것이다. 청소년은 학령기(學齡期)에 속하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 안’에 있어야 한다. ‘학교 밖 학생’은 자퇴하거나 학업을 중도 포기한 학생들을 의미한다. 교육 사각지대에 방치된 청소년이다.

서울시 교육청이 이 아이들에게 매월 현금 20만원씩을 통장에 넣어 주겠다고 한다. 시범 실시를 해보고 결과가 좋으면 점차 확대하겠단다. 학교를 떠난 뒤 연락처를 알 수 없는 아이에게 현금을 주면 ‘그들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더 놀라운 것은 ‘돈의 용처’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경제학에 ‘실패의 유인’(incentive to fail)이란 용어가 있다. 실패하도록 사회가 부추긴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학교 그만 두자, 그러면 20만원씩 국가가 용돈 준단다”를 외치는 청소년이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다. 

돈이 넘쳐나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착상되는 것이다. 학생 수는 주는데 교육 예산은 매년 는다. 지난 5년간 서울의 학생 수는 14% 줄었지만 교육청 예산은 23% 늘었다. 올해 예산은 9조원을 넘었다. 종부세, 소득세 등 내국세의 20.3%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또박 또박 떼어가기 때문이다. 돈에는 3가지가 있다. ‘내 돈, 네 돈 그리고 눈먼 돈’이 그것이다. 세금은 이미 ‘눈먼 돈’이 되고 말았다.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다. 국고(國庫)는 ‘화수분’(widow's cruse)이 된지 오래다. 

서울시 교육청 사례를 근거로 국고낭비 운운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간과해서 안 될 것은 교육청의 터무니없는 정책에 대해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묵시적 동의’라면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는 ‘무산국가(無産國家)’이다. 모든 생산자원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고 국가는 ‘징세권’만 있다. 생산 활동이 이뤄져야, 즉 부가가치가 창출되어야 세금을 걷을 수 있다. “너는 일해라 나는 세금 혜택 볼 테니”라고 생각한다면 누구도 생산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들 무임승차(free rider)하려 한다면 ‘바스티야’의 촌철실인처럼 ‘합법적 약탈’만 횡행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풍요와 번영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최대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슘페터’의 생각이 스친다. 그는 일찍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42)』에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성공을 견인했던 요인들이 오히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를 쇠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슘페터의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은 아닌 지 두렵기까지 하다. 

O 저(低)성장의 고착화 

IMF(국제통화기금)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10.9)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8%로 0.2%포인트 내렸다. IMF 이외에도 “골드만 삭스, 노무라, 금융연구원, ADB, OECD”등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했다. 성장률 전망치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성장률 평균을 못 쫒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추경을 편성하면서까지 끌어올린 2017년 3.1% 성장률은 선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세계성장률평균(3.7%) 보다 0.6% 낮은 성장률이었다. 2018년 성장률을 2.8%로 가정하면 세계성장률(3.7%)과의 차이는 0.9%로 벌어진다. IMF의 예측에 의하면 2019년에는 그 차이가 1.1%로 확대된다. 우리는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물질적 토대와 정신적 가치가 문재인정부 들어와 공공연히 침식당하고 있다. 좌편향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는 국가개입주의에 의해 ‘몰가치’한 것으로 폄훼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적 현실에서 기업가는 정부와 대중의  표적이 되었으며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전락하였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조의지’가 실종된 것이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녹아있다. 사회 분위기의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한국경제는 계속해서 쇠몰(衰沒)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O 박정희정신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문제의 뿌리’(root cause)를 찾아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천착하려면 ‘원점으로 돌아가’ 문제를 다시 봐야 한다. 이를 원점회귀(shift left)라고 한다. 우리는 글을 쓸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따라서 문장을 수정하려면 왼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출발점으로 돌아가 문제를 다시 봐야 비로소 왜 실패했는지를 알 수 있다. 현재의 위기 상황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경제 하려는 의지’(the will to economize)가 실종되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우리는 60년대의 가난을 극복 했는가를 복기(復棋)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입에 달고 산 말이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저주의 불모의 땅”이다. 저주란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내심은 그랬다. 1960년에 한국이 빈곤했던 이유는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부존자원과 자본, 기술, 고급인력이 전무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고, 이를 토대로 어떻게 가난에서 벗어날까에 대해 국가적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이 더 문제였다. 가진 것이 없는 게 아니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가난했던 것이다. 이를 혁파한 사람이 박정희였다. 

1960년대에 세계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수입대체 공업화’ 전략을 채택했다. 한국의 ‘수출지향적 공업화 전략’은 지극히 예외적이었고 국제정세의 흐름을 잘 탄 ‘절묘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소련과 중국의 사회주의가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도록 봉쇄전략(containment strategy)을 채택했다. 1947년 트루만 독트린이 이것이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을 극동의 병참기지로 삼아 일본의 경제부흥을 지원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은 일본을 부흥시켜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고, 한국을 통해 한반도에 반공(反共)의 방화벽(fire wall)을 세우는 것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빨리 경제력을 갖추는 것이 절실했다. 미국은 한국에 자신의 시장을 기꺼이 내주었다. 한국으로선 경제를 일으킬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얻었다. 그리고 주한미군을 통해 안보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어 경제성장에 매진할 수 있었다. 수출 중심 경제성장 전략은 이렇게 짜여졌다. 그 기저에는 국제정세를 꿰뚫어보는 혜안과 전략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1960~1970년대 한국은 자본에 비해 노동이 풍부한 나라였다. 자본은 귀한 대접을 받고 노동은 그렇지 못했다. 저임(低賃)일 수밖에 없다. 당시 저임금이 일반화된 것은 노조가 결성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노동공급량이 자본에 비해 과잉이었기 때문이다. 저임과 착취는 전혀 다르다. 그러면 어떻게 노동을 가진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시킬 수 있겠는가. 그것은 노동을 집약적으로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많이 만들어 해외에 파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의 수요가 많아져 흔해 보이던 노동이 귀해지고, 그 결과 노임(勞賃)이 증가하게 된다. 국가 간에 노동을 직접 수출할 수는 없지만 무역은 간접적으로 생산요소를 이동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값싼 노동을 이용해 노동집약적인 재화를 수출했다는 것은 ‘노동을 수출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누대의 가난을 벗게 한 것은 노동집약적 재화의 ‘수출 물꼬’를 튼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선택한 대외지향적 수출전략은 옳았다. 내수를 넘어 해외시장에 눈을 돌린 것은, 비유하자면 운동장을 넓게 쓴 것이다. 만약 당시 반(反)박정희 지식인들의 주장대로 농업중심의 산업생산, 그리고 중소기업과 내수 위주의 경제운영을 도모했다면 ‘대장간, 철물점, 정미소, 양조장’ 등이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1960년대 필리핀이 한국보다 나았으므로 필리핀을 상정하더라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박정희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유지해 온 좌파지식인들은 한 번도 그들의 편협한 시각에 대해 유감을 표한 적이 없다.

박정희는 ‘관치경제’ 시대였다. 정부주도 경제운영은 정부라는 ‘조직의 힘’에 의한 자원배분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때 시장규율에 필적하는 ‘의제(擬制)된 규율기제’를 창출하지 못하면 자원배분의 왜곡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정희는 ‘실적(목표할당)과 지원(인센티브)의 교환’이라는 규율기제를 창출했다. 즉 국가의 지원에 수혜기업의 실적의무를 연계시켰다. 그 결과 기업의 국가 지원을 획득하기 위한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를 적절히 통제하는 동시에, 전략부문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배분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실적과 인센티브를 절묘하게 교환한 것이 박정희 경제정책의 백미(白眉)였다. 시장의 경쟁압력이 충분치 않았음에도 지대추구를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즉 정경유착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실적과 지원’의 교환이라는 의제된 규율체계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O 에필로그

박정희 정부가 절대빈곤에서 우리 경제를 건져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가치중립적인 시장 중심의 정책사고’를 했기 때문이다. 분배가 아닌 투자주도 성장을 꾀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우리 모두 잘 살아 보자”고 했지, 성장의 혜택이 어느 계층에게 더 가야 한다고 외치지 않았다. 일한 만큼이 내 몫이기 때문에 모두들 열심히 일했다. 

박정희는 국민에게 땀과 눈물을 호소했다. 국민의 자조(自助)의지로 가난을 물리칠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국민의 삶을 책임져준다’고 하지 않았다. 고유의 재원을 갖지 않는 무산(無産)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것’은 허구다.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이 받아들여질 ‘사회가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계층’이 또렷이 들어난다. 국가에의 의존이 타성화 되는 것만큼 인간의 존엄을 허무는 것은 없다.

“가진 것이 없어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을 ‘맨주먹과 몸을 가진 것’을 축복으로 여기자고 설득한 것이 ‘박정희정신’이다. 그는 국제정세를 ‘읽는 눈’과 전략적 사고 그리고 자조의지로 오늘의 번영된 한국을 창조했다. 하지만 한국의 명운은 여기까지 일 수도 있다. 한강의 기적이 한강의 눈물로 급전직하할 수 있다. ‘학교 밖 학생’에게 묻지마 현금을 주겠다는 나라, 비정규직을 제로(zero)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나라, 이때다 싶어 친인척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고용을 세습하는 나라, 오직 내 임기만 챙기겠다는 YOLO(you only live once) 정권이 우리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는 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우리가 가난할 때 부러워했던 굴지의 산유국 베네주엘라의 오늘의 처지는 실로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베네주엘라는 자국의 고액권(高額券)을 가지고 여행상품을 만드는 나라로 전락했다. 베네주엘라는 원유를 싼 값에 팔고 정제유를 비싼 값이 수입하는 나라다. 반면 한국은 원유를 싸게 사서 비싼 값에 정제유를 수출하는 나라로 발전했다. 장기계약을 통해 원유를 안정적으로 도입하면 그게 바로 ‘산유국’이다. 부존자원은 지정학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계약을 뒷받침하는 경제력 그 자체가 부존자원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저주의 나라’를 석유제품 수출국으로 만든 것이 박정희정신이다. 오늘날 박정희정신을 반추해야 할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분배를 통해’ 성장을 꾀하겠단다. 그러면 생산은 누가하는 가. 우스갯말로 ‘소는 누가 키우는 가’ 말이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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