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남북 비행금지구역설정에 반대”-남북경협 리스트·시간표도 요구
“제재 1건만 어겨도 사업 전면 중단해야” 경고도

최근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남북 군사합의와 대북(對北) 경제협력에 대해 미국이 구체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정부는 오는 11월 시행에 들어가는 군사분계선 비행금지구역에 대해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남북경협 리스트와 시간표를 요구하고 한국정부가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보증한 사업에서 추후 제재 위반 문제가 한 건이라도 드러날 경우 리스트에 포함된 모든 남북 경협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한다는 '경고'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북한이 비핵화를 하기도 전에 남북경협 추진 등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는 문재의 정부의 ‘독주’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로이터통신 등은 18일(현지시간) 남북이 군사합의서에서 군사분계선(MDL)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기로 한 것에 미국정부가 반대한다고 두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워싱턴과 서울은 모두 공개적으로는 북한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한 마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남북이 군사적 긴장 상태를 제거하고 경제적 협력 관계를 구축함에 따라 막후에서 한미 간 불협화음이 점증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평양공동선언에서 나온 군사합의는 올해 남북이 체결한 협정 가운데 가장 견고한 합의”라며 “그러나 미국의 관리들은 남북군사합의가 방위준비태세를 무력화하고 비핵화에 실질적 진보를 불러오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남북군사합의는 남북 간 일체의 적대 행위를 금지하고 군사분계선 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며 DMZ 내 모든 GP(경비초소)를 철수하고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올해 안에 지뢰·폭발물을 제거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주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전화통화에서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국내 일간지 등을 통해 외교부 내부 문건에 이 같은 사실이 명시된 것이 확인됐다. 로이터통신은 “이는 동맹 간에 보기 힘든 불협화음”이라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서울의 한 관리를 인용해 “미국이 공개적으로 남북 간 계획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할 것 같지는 않다”며 “그러나 제재 집행과 군사력 사용 등에 관한 깊은 관여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연기하거나 바꿀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전방에서 공습훈련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비행금지구역은 미국에게 중요한 난제다. 폼페이오 장관은 강경화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바로 이 부분을 지적했다.

남북군사합의에 따르면 11월부터 전투기 등 군용기는 서부지역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0km까지, 동부지역은 40km까지 비행할 수 없다. 또한 남북군사합의는 군사분계선 기준 남북으로 총 10km에서 포병사격훈련과 야외기동훈련을 금지한다. 헬리콥터, 드론, 벌룬 등의 사용도 금지된다.

그러나 한미 공군은 지금까지 매년 6월 정기적으로 전방에서 근접항공지원(CAS:Close Air Support) 훈련과 대(對)화력전(ATK 또는 X-ATK) 훈련을 실시해 왔다. CAS 훈련은 유사시 우리 지상군을 지원하기 위해 전차, 장갑차 등 북한 기갑부대를 전투기로 파괴하는 것이다. ATK훈련 등은 방사포 등 북한 장사정포를 정밀 폭격하는 것이다. CAS 훈련 구역은 군사분셰선으로부터 구역에 따라 27~54km 사이에 설정돼 있다. ATK 훈련 구역은 CAS보다 더 광범위하다.

따라서 다음달 1일부터 비행금지구역이 시행에 들어가면 전투기 등 군용기의 경우 서부지역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0km까지, 동부지역은 40km까지 비행을 할 수 없다.

CAS의 경우 훈련구역이 비행금지구역과 거의 겹치기 때문에 앞으로 현재와 같은 훈련을 할 수 없다. ATK훈련도 전방 지역에선 불가능해진다.

이에 대해 미측은 우리 군 당국에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고 알려졌다. 정찰기 활동에 제한이 생기며 공습 훈련 제한으로 인해 유사시 북한 기갑전력 기습과 장사정포 대응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우리 공군은 CAS 훈련구역을 비행금지구역 이남으로 조정하려고 하지만 주한미군은 이에 합의해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은 "전방 공습 훈련 약화는 적 도발 의지를 사전에 좌절시키는 전략적 우위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정부는 최근 한국정부에 대북 경협 사업 목록과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하고 해당사업들이 유엔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음을 한국이 직접 보증할 것을 요청했다고 조선일보가 19일 보도했다.

또한 미국은 한국이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보증한 사업에서 추후 제재 위반 문제가 한 건이라도 드러날 경우 리스트에 포함된 모든 남북 경협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이 동맹인 한국의 체면은 살려주는 대신 남북경협을 위한 실질적인 자본과 물자 이동을 막아 대북 제재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남북 철도 연결 등 남북 경협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자 과속 가능성에 견제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철도와 도로 연결 등 한국이 (지난 4월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따라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경협을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한국이 어떤 사업을 언제 할 것인지 그 목록과 구체적인 시간표를 사전에 제시하고, 제재 위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추진하는) 관련 사업 중 유엔 제재 위반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다 (제재를) 면제해줄 수는 없을 것”이라며 “한국이 제출하는 목록과 시간표를 놓고 한미가 투명하게 사전에 협의하고 소통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만일 한국 측에서 제재 위반이 없다고 판단해 추진한 사업에서 제재 위반 사례가 나올 경우 남북 경협 전반에 대해 반대를 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한국정부에 지난 15일까지 남북 경협 사업 목록을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17일까지 구체적인 경협 사업 목록을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15일은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린 날이었다.

이 회담에서 남북은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11월 말~12월 초에 열기로 합의했다. 미국이 남북 고위급 회담일에 맞춰 경협 목록 제출을 요구한 것은 한국이 북한과 무리한 합의를 하지 못하도록 무언의 압력을 넣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리의 말대로 남북경협이 추진된다면, 남북 철도·도로 연결의 착공식은 예정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착공식 자체는 북한과 물자가 교류되는 것이 없어서 대북 제재 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철도·도로 연결을 위해 자재가 남북을 오가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제재 위반 소지가 높다.

조태열 주(駐)유엔 대사도 지난 16일 뉴욕 유엔 대표부 국정감사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과 관련해 사업이 본격 진행되면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조 대사는 '유엔 안보리나 미국의 대북제재를 어기지 않고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불가능하다”며 "남북 협력사업이 본격화되려면 제재의 선을 넘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이 내건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도 철도와 도로 연결을 추진하는 것은 지난 8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설 당시처럼 어떻게든 교두보를 마련해 두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당시 연락사무소 개설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발전기용 경유 공급 등이 대북 제재 위반 논란에 휘말렸고, 결국 남측에서 전기를 직접 끌어다 쓰는 방향으로 제재를 우회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8일 남북 철도 문제와 관련해 “지금 미국 쪽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고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한미 간 공조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일단 사업을 추진해놓고 추후 제재 위반 가능성이 제기되면 지난 8월 연락사무소 개설 당시처럼 우회로를 찾아 제한적인 범이 안에서라도 미국을 설득해 나가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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