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은행에 경고한 美재무부 간부는 이란제재 담당한 대니얼 모저
文정부는 크게 우려하지 않는 분위기
文대통령 “北비핵화 진전에 따라 대북제재 완화 등도 협의 가능할 것”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지난 4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게재한 특별지정제재대상(SDN)의 북한 관련 개인, 기관 정보란에 ‘세컨더리 제재 주의(secondary sanction risk)’라는 문구를 새로 추가했다(화면 캡처).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지난 4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게재한 특별지정제재대상(SDN)의 북한 관련 개인, 기관 정보란에 ‘세컨더리 제재 주의(secondary sanction risk)’라는 문구를 새로 추가했다(화면 캡처).

미국 재무부가 최근 수정한 대북(對北)제재 리스트에는 수백 건의 대북 제재 대상에 ‘세컨더리 제재 위험’이라는 문구가 총 466번이나 새로 삽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지난해 9월 행정명령으로 대북 세컨더리 보이콧의 근거를 마련한 뒤 그 대상을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조건으로 제재 완화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어 대북제재를 두고 한미 간 불협화음이 커질 우려가 나온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지난 4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게재한 특별지정제재대상(SDN)의 북한 관련 개인, 기관 정보란에 ‘세컨더리 제재 주의(secondary sanction risk)’라는 문구를 새로 추가했다. 북한과 무기, 사치품을 불법 거래했다는 이유로 터키 기업 1곳과 터키인 2명, 북한 외교관에 대한 독자제재를 발표하면서 새로 추가한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은 물론 북한의 외화벌이 기관인 조선노동당 39호실과 노동성 등 내각의 경제부처들, 고려항공 및 대성은행, 광선은행 등 북한의 8개 은행 등 앞서 미국이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466건의 기업 및 개인에 모두 적용됐다.

이에 따라 한국 등 제3국의 기업과 개인은 김정은 등 466건의 개인 및 기관과 어떤 식으로든 교역 및 거래하면 미국 내 자산이 압류되고 미국 기업, 은행과 거래금지 조치를 당할 수 있다.

미 재무부의 세컨더리 보이콧 경고는 이른바 ‘제재 구멍’을 겨냥한 선전포고로 해석된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개인 및 기업과 거래를 한 제3국 기업과 기관을 미국법에 따라 제재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이란 제재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해 핵 포기를 이끌어냈다.

또한 이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가 제기하고 있는 대북제재 완화 주장을 일축하고 북한과 대규모 경협에 속도를 내고 있는 한국까지 겨냥했다는 것이 한미 외교가의 분석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달 말 유엔총회를 기점으로 제재 완화 요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도 9.16 평양 공동선언에서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정상화하고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행관광공동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해나가기’로 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5.24조치를 해제를 검토 중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논란이 일었다. 따라서 미국의 이번 조치는 최근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데 따라 국제사회의 제재 전열을 재정비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국이 이미 세컨더리 보이콧의 적용 가능성을 구두로 경고한 만큼 새롭게 문구를 명시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보도된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북-미 연락사무소 개소 및 대북제재 완화 등도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국 금융기관들이 경제 제재와 관련해 주의해야 할 것들을 충분히 잘 알고 있다”며 한국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을 받을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공고문에 새로 세컨더리 보이콧 주의 문구가 삽입됐다고 해서 큰틀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미가 충분히 협의하는 만큼 해당 문구의 효용이 크진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 재무부가 지난달 하순 국내은행과 접촉해 대북제재 위반을 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은 단순히 ‘예방적 차원’으로 보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지난달 20, 21일 국내은행들에 직접 전화회의를 요청해 진행한 미 재무부 고위간부는 이란제재를 담당해온 핵·테러자금 전문가 대니얼 모저인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미국 측은 그를 재무부 테러·금융정보국(TFI) 소속의 수석부차관보라고 은행 측에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TFI는 테러, 범죄 자금을 추적하고 핵개발 국가의 돈줄을 조여 압박하는 업무를 주로 맡는다. TFI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도 대북 금융제재를 주도하고 있어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 대상 국가엔 ‘저승사자’로 불린다.

모저는 테러자금·금융범죄실(TFFC) 소속으로 보수 민간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출신으로 알려졌다. FDD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제재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한 곳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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