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범 칼럼] 피 흘림의 각오 포기하면 안보는 없다
[김행범 칼럼] 피 흘림의 각오 포기하면 안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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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권, '북한 대변인' 노릇하며 對北제재 해제 앞장서...한미동맹과 안보 약화로 귀결
"북방한계선 계속 피로써 지킬 수 없다" "종전선언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文대통령의 안일한 안보의식
무장해제의 집단 자학, 안보 의지의 아노미, 경제의 퇴락에 직면한 韓..."북핵이 이미 투하된 것 아닌가"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한강과 서해를 연결하는 경인운하(아라뱃길) 건설정책은 정책 타당성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정부정책의 타당성 평가는 비용과 편익을 저울질한다. 예컨대, 100억을 들여 만든 사업이 110억의 효과를 낳으면 그 비용편익 비율(효과/비용)은 1.1이 되고, 반대로 그 돈 들여 얻은 효과가 90억에 불과하다면 그 비율은 0.9가 된다. 경인아라뱃길은 그 비율이 1보다 낮은 사업성에도 불구하고 추진되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정부 정책결정이 타당성이 있으려면 편익/비용 비율이 1보다 커야한다.

그런데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특수한 국가정책 부문이 있다. 우리 역사 660년의 황산벌 전투는 백제 계백의 오천 결사대와 신라 김유신의 오만 군사가 치른 큰 전투이다. 백제 측 오천 명은 거의 전멸했고 신라측 사상자 수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나 죽음 무릅쓴 백제 군사 오천 앞에 그보다 훨씬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으로 널리 짐작되어 왔다. 아주 단순화하면, 예컨대 신라의 일만 군사의 희생으로 백제의 군사 오천이 희생되었다면 신라측의 편익/비용 비율은 0.5에 불과하다. 위 논리에 따르면 신라의 이 전쟁은 잘못된 것인가? 오히려 오천으로 일만의 적을 죽인 백제가 이긴 것인가? 그러나 역사가 규정하는 그 전쟁의 승자는 분명 신라이다.

일반 정책과는 달리 전쟁, 안보와 같은 국면에서는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이더라도 그 가치 자체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우승을 다투는 축구 결승전에서 단 한번 온 슈팅 기회를 잡아 한 골을 넣은 팀보다 수십 번의 헛발질을 하더라도 두 골을 넣어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함과 같다. 많은 비용 든다고 무시할 수도, 무시해서도 안 되는 것이 안보 정책이다. 국가 안위 가치의 보호에는 불행히도 큰 피와 희생이 따르지만, 큰 비용을 들이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안보이다. 지금 이 정부가 안보의 결의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우려가 총론적 얘기만은 아니다. 대통령이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고서 이를 중심으로 공동어로의 평화수역을 만들기로 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결국 국정감사에서 북은 북방한계선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남북이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으로 설정했다는 구역은 백령도 이북의 북방한계선 기준으로 보면 남측의 적대행위 중지 구간이 85㎞정도인데 이는 북측의 약 50㎞보다 더 길다. 정부는 그 구역에서 충돌을 막는 것이 중요하지 그게 우리 측으로 더 많이 내려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해명했다. 핵심은 북한은 이 수역을 정할 때 애써 기준선인 북방한계선을 무시했었는데, 더 중요한 점은 이 정부도 이 기준선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의구심이다.

더욱이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을 계속 피로써 지킬 수는 없으니 이를 평화로 해결하겠다면서 ‘공동어로’란 이름으로 우리 영해에 북의 지분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려는 것은 충격이다. 이것은 앞으로 중국이나 일본이 영해 관련 분계 충돌을 야기할 경우를 예상하면 더욱 그러하다. 대통령은 계속 피로써 지킬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계속 국익을 내어주며 북을 달랠 수 있을까를 더 걱정해야 할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유화주의로 일관하다 독일에게 침략의 기회와 시간만 주었던 네빌 체임벌린을 이어 총리 자리에 오른 직후 의회에서 ‘피, 고난, 눈물, 그리고 땀’ 외엔 드릴 게 없다고 말했다. 계속 피로써 북방한계선을 지킬 수는 없다고 천명하는 한국 대통령과는 정반대이다. 열매를 약속하는 지도자와 그에 이르는 과정을 약속한 지도자가 있을 때, 오히려 후자가 진정한 평화의 열매를 얻음에 비해 전자는 피, 고난, 눈물, 그리고 땀 밑에 놓인 역사가 대부분이다. 피와 희생이 들지 않는 안보를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렇게 피로써 나라를 철저히 지키겠다는 각오로 맞서야만 진정 피를 막을 수 있었다.

또 대통령은 25일 미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종전(終戰) 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며 미국에게 그 선언을 부추겼다. 만약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란 논리다. 그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선언이라면 왜 이 정권이 앞장서 그것에 그리 목을 매는가? 그러나 일단 종전 선언 이후에는 북측의 비핵화 약속 불이행에도 미국으로선 종전선언을 취소하고 전쟁이 일시 정지되어 있는 현재 상태로 복귀함은 현재의 미국 정치 구조와 과정에선 극히 어렵다. ‘일단 구매하고 나중에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반품 가능하다’던 불량 제품이 제대로 환불되는 경우란 적대국 사이엔 없다. 한번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라는 논리로 안보를 접근하려는 방식이 너무 가볍다.

요즈음 외교장관이 아니라 통일부의 집행관 노릇을 하는듯해 딱해 보이는 한국 외교 장관은 천안함 피격 이후 지켜 온 5.24 조치 해제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가 미국의 강한 반발을 받았다. 외교 장관은 북한 핵무기에 대한 신고 요구를 미루자고 미국에 제안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북측이 아직 꺼내지도 않은 말을 한국 정부측이 앞장서 대변해 주는 것이다. 미국으로선 중국의 대북 제재 위반 외에, 정작 북핵의 일차적 피격 목표일 한국이 스스로 대북 제재 해제를 시도하는 것에 경악할 만하다.

결국, 위의 예들에서 보듯이 이 정부가 북한의 충용한 대리인 역할을 부지런히 해주며 북한은 뒤에서 실속을 챙기는 형세이다. 안보에 관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입장들을 이 정부가 조정하고 대표하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좌파단체보다 이 정권 자체가 가장 앞장서 북의 입장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 미국으로선 결국 한반도에 북한 정권뿐 아니라 점점 신뢰하기 어려워지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또 다른 전선을 상정하게 되고 그것은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의 약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과거의 남북 비핵화 약속을 북이 이를 깨고 핵무장을 완성한 후 한국을 협박하자 이 정부는 ‘평화’가 좋은 것이라며 그들에게 하나하나 굴복해 가고, 북이 화를 낼만한 일을 회피하느라 양보를 하며, 거기서 더 나아가 북측의 ‘선의’를 대외적으로 변론해 주는 패턴은 이제 고착화되었다. ‘문재인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해외 언론평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일자리 못 만드는 정권이 제 미래 일자리 하나는 확실히 예약해 둔 모습이다.

주적과의 수많은 포옹, 악수, 촬영, 박수의 일련의 이벤트 속에서 대통령은 제 홀로 몽환 속에 빠져 든 것인가? 이미 핵력에 굴복하여 그 정권을 추종하는 것인가? 혹은 운동권 시절 강제 징집되었던 군에 대한 증오심들로 현재의 권력실세들이 군을 무력화하려는 것인가? 피 흘리지 않고도 지켜진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국경도 아닌 것이고, 그런 식으로 지켜진 예도 없다. 우리는 안보에서 북을 두려워하기에 앞서 이제 이 정부를 먼저 두려워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초 시작된 환상의 드라이브는 이제 연말로 향해 가고 있다. 핵은 저기에 굳건하건만 적의 선의에 대한 과신과 자기 몽환에 빠진 운전수는 엉뚱한 곳으로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다.

‘믿을지어다, 북을 믿으면 비핵화가 온다’는 구호로 여기까지 끌려왔지만 지금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무장해제의 집단 자학, 동맹의 약화, 안보 의지의 아노미, 경제의 퇴락, 미래에 대한 만연한 위기감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북핵은 이미 남쪽에 실제 투하된 것 아닐까? 그런 효과를 조장하는 것이 바로 제 목숨 바쳐 안보를 지켜야 할 지도자였다는 점이 황당하다. 그 핵 폭발음은 참 역설적이다: ‘평! - 화!’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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