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전문가들 “美재무부의 국내은행 접촉은 사실상 경고 메시지...韓이 최대압박정책 깨는 것 원치 않아”
뱁슨 前세계은행 고문 “北과 거래에 관여하면 해당은행은 美정부의 제재 대상 될 수 있어”
스탠가론 KEI 선임국장은 "국민은행ㆍ농협, 美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이 있다"
美재무부, 4일 北제재 명단에 ‘세컨더리 제재 위험’ 문구 추가...제재 수위 강화
전문가 “北에서 영업하거나 北과 거래하는 은행은 파산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을 것”

지난달 20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개성공단 일대가 고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은 평양공동선언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정상화하기로 했다(연합뉴스).
지난달 20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개성공단 일대가 고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은 평양공동선언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정상화하기로 했다(연합뉴스).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하순 한국은행들을 직접 접촉해 대북제재 준수를 요청한 것은 사실상 한국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경고한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또한 재무부는 최근 대북제재 명단에 ‘세컨더리 제재 위험(secondary sanction risk)’ 문구를 추가한 것으로 알려져 대대적인 남북경협을 앞두고 있는 한국에 본격적인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앞서 지난달 20~21일 미 재무부가 한국의 주요은행에 직접 연락해 대북제재를 위반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한 것을 ‘이례적인 일’로 평가했다. 또한 그 배경에는 워싱턴 정계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다.

브라운 교수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국이 북한에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북한 쪽으로 너무 기울고 있다는 워싱턴 정계의 우려가 있다”며 “따라서 미 재무부의 한국은행들에 대한 대북제재 준수 요구는 한국에 강력한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대해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미국은 먼저 (비핵화) 돌파구가 마련돼야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은 정치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브래들리 뱁슨 전(前) 세계은행 고문은 “만약 (한국 은행이) 북한과의 거래에 관여한다면 해당 은행은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VOA는 이에 대해 “이는 사실상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과 개인을 제재대상에 포함시키는 미 행정부의 금융 독자제재, 즉 ‘세컨더리 보이콧’과 일맥상통한다”고 해석했다.

뱁슨 고문은 “정치적 측면에선 한국이 최대 압박 정책을 깨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이 거듭 강조한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가운데 한국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미국 정부에 딜레마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해거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샌디에이고 대학 교수는 VOA에 “당연이 한국 은행들이 북한과 직접 거래할 수는 없지만 북한과 사업하는 중국, 한국 기업에 자금을 조달할 수는 있다”며 “미 재무부의 이번 조치는 모두 ‘세컨더리 보이콧’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정부가 5.24 대북 제재 해제를 검토하고 여러 측면에서 경제협력을 모색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풀려고 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미리 경고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로이 스탠가론 한미경제연구소(KEI) 선임국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은 여전히 미국 재무부에 의해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돼 있고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대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은행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위해 은행에 돈을 맡겨두면 사후에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상속되도록 하는 상품을 내놓은 것을 거론하며 미 재무부가 한국 은행들에 제재 위반 가능성을 알린 것을 '신중한' 선제 조치로 평가했다.

또한 그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사업을 재개하는 것은 북한에 대량 현금(bulk cash)이 이전되는 것을 막는 유엔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은 사업을 위한 보험이나 금융혜택 등도 다른 유엔 제재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탠가론 선임국장은 "게다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지에 은행을 재개설하려는 국민은행과 농협은 북한에 상품이나 서비스 혹은 기술을 제공하는 사람이나 기업이 미국 금융체계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미국의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으로 활동했던 윌리엄 뉴컴 전 미 재무부 선임 자문관도 "이는 한국 은행들의 제재 위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미국의 제재를 위반할 경우 미국 금융체계 접근이 차단된다"며 "또한 미국 달러화 송금 등 북한 은행이나 대행기관과 거래하는 사람이나 기관은 누구나 형사법상 처벌, 민법상 벌금, 자산몰수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인 20일과 21일에 미 재무부는 한국의 주요 은행들과 직접 접촉해 전화회의를 개최했다. 11일 국회와 금융권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이날 국책은행인 산업·기업은행과 시중은행인 국민·신한·농협·우리·하나은행 모두 7개 은행과 전화회의를 열고 ‘대북제재를 위반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직접 전달했다.

재무부는 특히 농협이 검토 중인 ‘금강산 지점’ 재개 추진 상황과 개성공단 관련 이슈를 집중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국책·시중 은행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북 연구 및 사업 조직을 강화해왔다. 국민은행은 북한연구센터를 개설하고 최근 외부 자문위원들을 위촉했다. 개성공단에 지점을 운영했던 우리은행은 개성공단 재개 시 지점 운영방안을 검토 중이었다. 농협은 지난 2009년까지 운영했던 금강산 지점 재개를 준비 중이었다.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이 10월 4일 ‘Secondary sanctions risk’를 추가해서 수정발표한 제재명단에 오른 북한 관련 기관과 개인 정보(RFA)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이 10월 4일 ‘Secondary sanctions risk’를 추가해서 수정발표한 제재명단에 오른 북한 관련 기관과 개인 정보(RFA)

 

또한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일 대북 제재 대상 북한 기관이나 개인의 신상 정보란에 ‘세컨더리 제재 위험(secondary Sanctions Risk)’ 문구를 추가했다. 세컨더리 제재는 미국정부가 북한 등 제재 대상국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관과 기업, 개인 등에 금융거래 등을 제재하는 것이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전 세계 대북제재 공조체제에 ‘구멍’을 만들고, 한국마저 대규모 북한경협을 약속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대북제재 수위를 한층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12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대북 특별지정제재대상(SDN) 명단 곳곳에 ‘세컨더리 제재 위험’이라는 문구를 새롭게 추가·삽입했다. 

미국 정부의 제재 관련 법률회사 ‘베이커 도넬슨’의 공동대표인 도린 에델만 변호사는 RFA에 “해외자산통제실의 제재명단(SDL)에 포함된 북한 대상에 ‘제3자 제재 위험’을 공식적으로 경고한 것은 처음”이라며 “이는 미국정부가 이란과 러시아에 사용하던 ‘제3자 제재’를 제재명단에 있는 북한의 기관이나 개인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경고”라고 밝혔다.

또한 에델만 변호사는 “세컨더리 보이콧에 대한 경고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결의와 미국정부의 독자 대북제재 적용 범위를 넓히려는 사전조치로 보인다”며 “이번 조치는 미국인들이 제재 대상인 북한 관련 기업과 거래를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미국 또는 미국인과 거래하려는 제3국의 기업이나 개인의 대북거래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했다.

그는 “대북제재에 간접제재가 포함되면 파급력은 훨씬 커질 것”이라며 금융권에 우선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에델만 변호사는 “미국정부는 북한에서 영업하거나 제재 대상인 북한 기관과 거래하는 중국이나 러시아 은행 등을 적발하면 미국 금융권과의 거래를 전면 중단시키고 달러화 사용금지 조치를 내리게 된다”며 “(해당 은행은) 파산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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