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 2016년 JTBC 태블릿PC 미확인보도 12일 만에 '박근혜 하야론' 주장
"뉴스 세계에 형벌집행자 초청" "비판세력 탄압용" 의구심 해소할 설명 부족
'가짜뉴스'도 비(非)좌파적, 정부비판적 내용에만 민감 반응
北김정은 無검증 주장으로 찬사하기도…과거 '광우뻥' 현장 중심에 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권 차원에서 '가짜뉴스'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지 여전히 밝히지 않은 채 "가짜뉴스의 퇴치는 의견표현을 제약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실의 조작과 왜곡을 없애자는 것"이라는 일반론을 주장했다.

이낙연 총리는 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논평은 자유다. 그러나 사실은 신성하다' 언론의 철칙"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10월9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이 총리의 말은 원론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현 정권이 내세우는 '가짜뉴스와의 전쟁' 경과와 이 총리 자신의 과거 언행을 살펴보면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지난달부터 친(親)정부 좌파성향 '제도권 언론'은 물론 집권여당까지 정부비판적인 소셜미디어 이용자, 유튜브 페이지 운영자들을 싸잡아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조장하고 통제 필요성을 공언했다.

이어 정부가 이달 8일 '범(汎)정부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 보고한 뒤 방송통신위원회 주관으로 발표하기 직전에 이르렀다가, 발표시각을 30분여 넘겨 돌연 연기했다.

방통위에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동참한 합동브리핑이었다. 법무부와 경찰청 등 사법당국까지 그 대열에 합류했었다. 이처럼 유관기관을 '총동원'한 합동브리핑을 이 총리가 연기 지시했다고 한다.

지난 10월8일 오전 11시30분으로 예정된 '범(汎)정부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 합동브리핑이 30분 넘게 미뤄진 끝에 돌연 '무기한 연기'됐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이 당일 브리핑 무산 직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을 돌아나가는 모습.(사진=연합뉴스)

국무총리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총리는 각 부처 보고 내용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며 담당 부처들을 질타했다. 

브리핑 일정을 전후로 야권에선 "가짜뉴스를 핑계로 사상통일을 하려는 것"이라며 "비판세력 탄압용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연기가 아니라 취소가 마땅하다"(박대출 자유한국당 이원)는 지적이 나왔다.

중앙일보 전영기 칼럼니스트도 자신의 칼럼에서 "이성적 논쟁이 작동해야 할 뉴스의 세계에 '권력의 사냥개' 소리나 듣는 형벌 집행자들을 초청했다"며 "사법이 지식정보의 판단자 권한까지 쥐게 되면 양심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전체주의로 가는 문이 열리는 것"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처럼 각계의 비판이 커지자 이 총리는 정권발(發) 가짜뉴스 근절대책을 "사실의 조작과 왜곡을 없애자는 것"이라며 해명과 반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사진=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화면 캡처

그러나 이 총리는 현 정부를 겨냥한 보도 또는 비판론에만 민감한 반응을, '친정부 좌파 가짜뉴스'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 총리는 전남도지사 시절인 지난 2016년 10월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10월24일)가 나오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연설문 작성에 최씨가 관여했다'는 의혹 등으로 대(對)국민사과를 두차례(10월25일과 11월4일) 하자마자 대통령 하야론에 앞장선 적이 있다.

그는 2016년 11월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야 일정을 밝히면서 과도기 운영에 대한 국민과 정치권의 합의를 구하는 길이 가장 좋다"며 "계속 거부한다면 국가적으로나 본인에게나 더 큰 불행이 닥칠지도 모르는 만큼 재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공개 압박했다. 

박 전 대통령을 최순실씨가 뒤에서 '조종'하며 국가간 무기거래까지 모든 국정을 전횡했다는 식의 왜곡·과장된 의혹으로 반(反)정부 기류가 고조될 때, 광역자치단체장 신분으로 대통령 하야론부터 꺼내들었던 셈이다. 그러나 의혹의 핵심 소재였던 '태블릿PC'는 지금까지도 대중 앞에 공개된 적도, 물증을 토대로 최씨의 것이라고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이다.

JTBC는 전화통화 및 문서 수정 기능이 없는 기종으로 확인된 이 태블릿PC로, 최씨가 독일 승마장에서 '항상 끼고 다니며 통화했다'는 익명 제보를 소개하거나 최씨가 수백건의 국가기밀자료를 받아보며 40건을 넘는 대통령 연설문을 직접 수정했다는 취지로 보도했었다. 그러나 각종 반론 보도가 나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대상이 되자 'JTBC 뉴스룸은 그렇게 단언한 적 없다'며 책임 소재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태블릿PC 보도가 기폭제로 작용한 이른바 '국정농단 의혹' 최대 수혜자 격인 현 집권세력 중에선 현재까지 드러난 여러 가짜뉴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인사가 없다. 도리어 포털사이트에서 정부 비판 댓글이 늘자 여당 의원들이 '댓글제 폐지' 필요성을 내세우고, 정부비판적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방송이 인기를 얻자 여권 진영에선 이들을 겨냥한 '가짜뉴스 몰이'를 시작했다. 곧이어 행정부 2인자인 총리가 '가짜뉴스 근절'을 명분으로 유포자 처벌, 유통 경로 통제 필요성까지 주장하고 나서니 '비판세력 탄압용'이라는 의혹이 확산되는 셈이다.  

"사실은 신성하다. 이것이 언론의 철칙"이라고 밝힌 이 총리는 정확하지 않은 보도를 토대로 "대통령 하야"를 주장한 자신의 당시 행동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총리는 지난달 말 베트남 방문 당시 평생에 걸쳐 공산주의자로서 활동했던 고(故) 호치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의 거소를 방문해 "백성의 사랑을 받으신 주석님의 삶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집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는데, 자유월남을 지키고자 월남전에 참전했던 대한민국의 총리 자격으로 지나치게 몸을 낮춰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러나 그가 적은 '주석님'이라는 표현으로 일각에서 북한 김일성 또는 김정은을 지칭한 것으로 오해해, 그들을 찬양하는 방명록을 적은 것이라는 허위 정보가 퍼지자 "방명록에 쓴 글을 왜곡한 가짜뉴스가 나돈다"며 "야비한 짓을 멈추기 바란다"고 공개 경고했다. 방명록 내용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총리는 일부 허위 정보를 공격함으로써, 호치민 거소 방명록으로 인한 모든 비판이 가짜뉴스로 치부되는 효과를 봤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0월1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사진=연합뉴스)

가짜뉴스 단죄론에 앞장서는 이 총리 자신이 '검증된' 발언과 행보만을 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외교·통일·안보 대(對)정부질문에서 이 총리는 유기준 한국당 의원이 '청와대가 이자카야, 와인바, 포장마차 술집에서 업무추진비를 쓴 내역에 대해 국민은 어떤 잣대로든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하자 "청와대가 조목조목 해명한 걸로 알고 있다"며 "(업무추진비 카드를 쓴) 현장을 확인한 기사를 봐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읽었다"고 간접 인용을 토대로 주장했다.

이를 두고 '문제가 없다는 것이냐'고 유기준 의원이 추궁하자, 이 총리는 "전부 감사를 하고 있으니 문제 여부가 드러날 것"이라고 여지를 남기는 태도를 보였다.

이 총리는 지난 7월19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 빌라 로사 켐핀스키 호텔에서 개최한 동포 만찬 간담회에서 "(북한에) 여러가지 변화가 있겠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백성의 생활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마침내 출현하신 것' 아닌가"라고 북한 김정은을 '극존칭'까지 동원해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백성의 생활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마침내 출현하신 것"이라고 기정사실인 듯 전제한 뒤 이를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힌 것이다. 

최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명백히 드러났듯 북한 정권의 대규모 주민 동원 행태가 여전하고, 이달 들어 유엔은 북한 주민 40%가 여전히 영양실조라는 분석을 발표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김정은은 자신의 전용차를 벤츠에서 롤스로이스로 바꾸는 사치행위를 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이 총리는 현재 '공기를 통한 전염', '5년 내 사망' 등 각종 괴담 검증이 끝나 소위 '광우뻥'으로 불리는 광우병 선동에 편승하던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의 집회현장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일례로 지난 2012년 5월2일 저녁 문성근 대표체제의 민주당 지도부는 서울 청계광장으로 향해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당시 문성근 대표는 "정동영 의원, 이낙연 의원, 19대 (총선) 남윤인순 당선자, 정청래 당선자, 오영식 당선자, 박홍근 당선자도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하고 있다"고 소개했었다. 

이 총리는 이보다 4년 전인 2008년, 노무현 정부가 서명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회 비준을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에 광우병 의혹제기로 맞서며 '광우병위험 쇠고기의 수입 및 유통제한 등에 관한 특별법'을 공동발의한 바 있다. 국내법을 통해 광우병 검사를 거친 30개월 미만 소의 살코기만 수입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총리는 2008년 4월말 여야 의원 37명이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한미 쇠고기협상은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국민건강권을 조공으로 바친 굴욕적인 협상"이라고 주장했을 때 그 일원으로도 있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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