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면 결실 맺고 책임 다하지 못하면 대가 지불한다는 원칙 가르치는 교육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학년 초가 되면 교실엔 각 학급의 지표가 될 급훈이 내 걸리게 된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같은 고전도 있고, ‘오늘 흘린 침은 내일 흘릴 눈물’ 같은 팩트 폭격(?)성 급훈도 등장한다. 그러나 ‘Freedom is not free.’ 라는 급훈이 걸리는 유일한 학급도 있다.

그 학급에선 청소가 실명제이고 숙제를 남에게 미룰 수 없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 자신이 하겠다고 결정한 일엔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1년간 ‘공짜는 안 된다’는 급훈이 걸려있던 학급에서 퐁퐁 솟은 훈훈한 미담들은 차차 풀어가기로 하고 오늘은 학부모들과 똘똘 뭉쳐 아이들에게 ‘책임’을 가르친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한다.

1년을 내건 ‘그 급훈’에 따라 수시로 주의를 환기하고 담임교사가 솔선수범을 했지만 1학기 초부터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교직경력 28년차 교사의 기억에 ‘역대급’ 학급으로 기록이 될 참이었고 교실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마다 고개를 휘휘 저으며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청소는 안 되어 있고, 빗자루질도 할 줄 모른다고 뻗대는 아이부터 뻑 하면 교실에서 싸우는 아이, 선생님께 대들어 학생부로 지도받으러 불려가는 아이, 몰래 담배피우다 불려오는 아이 그리고 수업시간이면 무기력하게 잠만 자는 아이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매사 자신들이 책임져야 하는 법임을 아무리 가르쳐도 이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을 단시간에 되돌려 놓자고 교사가 체벌을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교사인 내 자신이 자신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싶지 않았고 체벌과 ‘벌점’에 굴복하는 이중적 인간을 길러 내고 싶지는 않았다.

필시 아이들은 본성에 따르는 자신의 선택과 힘 앞에 비굴하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행동, 그 사이의 괴리 앞에서 책임과 진실 따위는 날려버릴 것이 뻔했다. 엉망진창으로 멋 대로인 아이들을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교사인 나 자신부터 조바심을 버려야했다. 한 두 달로 승부를 볼 수 없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다.

상담 대상인 아이들을 선별했다. 제일 급한 아이들부터. 10회기 이상의 상담을 한 아이도 있었다. ‘얼굴 보는 것’을 불편해 하는 아이에게는 ‘쓰기’로 다가가기도 했다. 한 학급에 두어 명만 있어도 교사의 진을 빼놓을 아이들이 예닐곱이 넘는 학급!

차근차근 다가갔다. 1학기말엔 드디어 절정! 방학식을 하는 날은 무려 두 시간 반의 종례를 감행하는 참사(?)를 벌이기도 했다.

물론 결론부터 말하자면 방학식날 이후 꺾이기 시작한 드센 광풍은 2학기 들어서며 차츰 호전되기 시작하다가 2학기 방학식을 하는 날은 곧 학년이 바뀌어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진심어린 아쉬움을 표현하는 학급으로 바뀌었다.

‘청소가 뭐에요?’ 하던 아이들이 무려 환경미화심사에서 1등을 해 문화상품권을 전체 상으로 받는 쾌거를 거두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역할에 충실한 ‘댓가’였다. 게다가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학급으로의 ‘변신(?)’에 화룡점정이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소위 보충수업이라고 불리는 ‘방과 후 학교’는 요즘 학생들이 선택해서 들을 수가 있다. 물론 학교 형편상 듣고 싶지 않아도 어떻든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은 함정(?)이지만 자신들이 듣고 싶은 과목을 대학생들이 수강 신청하듯 듣는 것이 가능하다.

7교시 후 각자 선택한 강의실로 이동하여 듣는 수업에는 해당시간마다의 출석부가 있지만 굳이 출석부를 보고 챙기지 않으면 누가 수시로 결석을 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담임교사에게 사전에 승낙을 받고 양해된 것인지 그날 결석을 한 학생인지 조차도. 그런데 말썽쟁이들만 소복하게 모인 이 학급 아이들이 8교시 상습 무단결석이 잦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기말시험이 있기 전 스스로 양심선언을 하라며 종용했고 방학식 한 달 전에 상습결석자들의 반성문과 각서를 받아둔 터였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곧 학년을 마무리 할 시점이 다가오는데도 고약한 버릇은 고쳐지지 못한 듯 보였다. 최후통첩 시간이 왔다.

 

- 듣자하니 아직도 무단 결석자들이 줄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내일 모든 방과 후 학습 시간의 출석부를 확인해서 무단결석자들에겐 ‘책임’을 묻겠다.

 

- 에이 샘! 곧 방학인데요? 기말고사도 끝났고요.

 

- 방과후학교가 종강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I? 그럼 열심히 수업을 듣는 애들은 뭐고?

 

- ….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눈치 빠른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와 로비를 할 참이었다. ‘한번만 봐 주시지요, 다른 반도 결석 많아요. 성적도 많이 올랐어요.’ 등.

그러나 단호한 얼굴로 상습 무단결석자의 출결상황을 하나하나 기록하여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 있는 담임교사 앞에서는 그냥 입을 닫고 다시 교실로 향했다.

 

‘ooo 부모님께

 

푸릇한 봄기운이 완연하던 그 봄에 아이들을 만나 어느새 1년여를 함께 지냈습니다.

 

아이들은 그새 몸과 생각이 자라고 이젠 어엿한 청년의 면모가 보이네요.

다들 평안하시지요. 저는 담임교사 조윤희입니다.

 

아이들을 만나 열심히 잘 가르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마음 같지가 않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이 편지를 드리게 된 연유는 학교에서 실시한 8교시 방과 후 수업에 oo 가 무단으로 결석한 횟수와 관련하여 부모님께서도 아셔야 하지 않을까싶은 제 생각 때문입니다.

 

저도 자식을 둘 기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돈 벌며 고생하는 이유가 다른 것 있겠습니까. 열심히 벌어 우리 자식들이 잘 되는걸 바라보는 것 외에.

 

그런데 아이들은 아직 철이 없어 그런지 우리 부모 마음을 잘 헤아릴 줄을 모르네요.

 

저는 1년간 아이들을 맡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끝까지 책임을 다하려 하오니 부모님께서도 저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oo는 다음과 같이 8교시 수업을 무단으로 빠지고 귀가했습니다. 제가 각각 담당 선생님들의 출석부를 확인한 결과입니다.

 

저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결과일 뿐만 아니라 불성실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1년을 맡아 잘못 가르친 저의 불찰도 있겠지요.

 

(중략)

 

부모님께서도 oo를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 제게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체벌을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늦잠을 잘 수도 있고 지각은 할 수도 있지만 수업을 마음대로 빠지고, 그것도 반복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무단조퇴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이라 여겨져 연락을 드리니 제게 꼭 회신이나 전화 연락을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딜 가도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은 대우를 받겠지요. 지금부터 그렇게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제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꼭 연락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연말에 공사다망 하시고 분주하실 텐데 마음을 어지럽혀드려 대단히 송구합니다. 감기에 독감까지 기승을 부린다 하는 이 계절에 댁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덧붙임. oo가 무단으로 8교시 빠진 날짜 기록 1부.

1차 경고 후 본인이 작성했던 각서 1부.

 

2017년 12월 oo일

담임교사 조윤희 올림’

저 편지는 곱게 편지봉투에 넣어져 아홉 분의 부모님께 전달이 되었고, 직접 쓴 답장 4통, 전화 다섯 통이 돌아왔다. 그 중 두 분의 부모님은 울면서 30 여 분 이상의 이야기를 했다. 고맙다는 말씀이었다.

이제 방학하면 그만인데, 학년이 바뀌면 그만인데 공부에는 관심도 없는 우리아이를 끝까지 챙겨줘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편지 덕분에 죽도록 맞았다고 입을 삐죽 내민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원망 섞인 불평 속엔 묘한 감사의 향기도 배어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학년을 마감하고 지금은 겨울방학 중이다.

철부지 1학년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와서 만난 첫 학급은 ‘공짜가 없는’ 학급이었다. 성실하게 잘하면 결실을 맺고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그리고 약속을 지켜야 서로가 함께 편해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운 학년일 것이다. 느리지만 이렇게 멈추지 않는 가르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Freedom is not free.’이니까.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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