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 지시는 하지하(下之下) 저급대책...언론은 권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 아니다"
"권력의 사냥개 소리나 듣는 형벌 집행자들을 초청한 총리의 발언 이해할 수 없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이른바 ‘가짜뉴스’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 지시와 관련해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하지하(下之下), 저급한 대책”이며 “언론은 권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전영기 논설위원은 현직 '제도권 언론' 종사자 중 문재인 정권의 폭주와 실정(失政)에 대해 비교적 눈치 보지 않고 정면으로 쓴소리를 하는 몇 안되는 중견 언론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 논설위원은 8일 중앙일보 오피니언면에 게재된 ‘[전영기의 시시각각] 가짜뉴스는 형벌로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칼럼을 통해 “이낙연은 군사독재 정권 때 청년학생 시절을 보냈으며 권력의 언론 탄압에 맞섰던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그의 입에서 뉴스를 힘으로 다스리라는 얘기가 나올 줄 몰랐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전 위원은 이낙연 총리를 향해 “뉴스는 뉴스 시장에서 진위가 가려지고 허위와 조작은 독자가 심판한다는 이성과 양심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것일까. 권력의 자리에 오르니 칼이 펜보다 강하다는 교만이 생긴 것일까”라며 “이성적 논쟁이 작동해야 할 뉴스의 세계에 권력의 사냥개 소리나 듣는 형벌 집행자들을 초청한 총리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 위원은 “지식과 정보의 영역에선 진실성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논리성·일관성·공정성 세 가지를 꼽는다”며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비추어 ▲전제에 합당한 결론을 내렸나(논리성) ▲동일한 잣대의 적용이 관철됐나(일관성) ▲선입견이나 의도성이 배제됐나(공정성)만 따져봐도 대체로 지적(知的) 생산물의 진위는 가려진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총리는 뉴스의 진실성 판정에 처벌을 지시하기보다 논리성·일관성·공정성 같은 지적 자산의 활용을 호소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 위원은 “사법이 지식정보의 판단자 권한까지 쥐게 되면 양심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전체주의로 가는 문이 열리는 것”이라며 “지식과 정보의 영역에 검찰과 경찰의 형벌권을 끌어들인 이낙연 총리의 조치는 반드시 민의의 저항과 불복을 불러 종국에 최고 권력자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기웅 기자 skw424@pennmike.com

 

-다음은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8일 칼럼 전문(全文)-

[전영기의 시시각각] 가짜뉴스는 형벌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근엄한 표정으로 “국가원수와 관련한 턱없는 가짜뉴스까지 나돈다. 기존의 태세로는 통제하기 부족하다”며 “검찰과 경찰이 신속히 수사하고 엄정히 처벌하라”(10월2일 국무회의)고 한 말은 하지하(下之下), 저급한 대책이다. 언론은 권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낙연은 군사독재 정권 때 청년학생 시절을 보냈으며 권력의 언론 탄압에 맞섰던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그의 입에서 뉴스를 힘으로 다스리라는 얘기가 나올 줄 몰랐다. 뉴스는 뉴스 시장에서 진위가 가려지고 허위와 조작은 독자가 심판한다는 이성과 양심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것일까. 권력의 자리에 오르니 칼이 펜보다 강하다는 교만이 생긴 것일까. 이성적 논쟁이 작동해야 할 뉴스의 세계에 권력의 사냥개 소리나 듣는 형벌 집행자들을 초청한 총리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

지식과 정보의 영역에선 진실성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논리성·일관성·공정성 세 가지를 꼽는다.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비추어 ①전제에 합당한 결론을 내렸나(논리성) ②동일한 잣대의 적용이 관철됐나(일관성) ③선입견이나 의도성이 배제됐나(공정성)만 따져봐도 대체로 지적(知的) 생산물의 진위는 가려진다. 이 총리는 뉴스의 진실성 판정에 처벌을 지시하기보다 논리성·일관성·공정성 같은 지적 자산의 활용을 호소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지난주 필자는 서울시 산하 보건환경연구원이 발간한 ‘유통식품의 방사성 물질 오염실태 조사’(연구원 홈페이지 9월7일 등재)라는 논문을 보면서 한눈에 가짜임을 판별할 수 있었다. 이 저작을 읽게 된 이유는 뉴시스라는 통신사의 “2014~17년 서울에서 유통된 509건 식품을 조사한 결과 14건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 “방사성 물질 검출 품목은 대부분 원전사고 또는 핵실험 주변 국가에서 수입한 식품으로 나타났다. (원전 사고가 일어난) 일본 제품에 지속적인 점검과 관리가 필요하다”(10월 3일)는 기사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정작 논문을 살펴보니 14건의 방사성 검출 식품 가운데 중국산이 3건(능이버섯·들깨·고사리), 북한 2건(상황버섯·고사리), 독일 1건(블루베리 잼), 한국 1건(표고버섯) 등이었고 일본산은 0건이었다. 중국이나 독일, 한국은 원전사고 국가가 아니다. 그런데 방사성 식품의 대부분이 원전사고 국가에서 수입됐다는 결론을 냈다. 비논리적이다. 후쿠시마에서 대형 원전사고가 일어났던 일본산 식품에선 방사능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도 결론에서 일본만 점검과 관리가 필요한 나라로 특정했다. 불공정하다. 연구자가 처음부터 ‘방사성 식품 문제는 일본·원전사고국에서 제일 클 것’이라는 주관적 편견에 빠져 있는 바람에 조사 결과에 일관성 있는 잣대를 적용하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 해서 우리는 가짜 논문을 검찰에 수사 요청하지 않는다. 지식정보와 사법의 세계는 가짜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법이 지식정보의 판단자 권한까지 쥐게 되면 양심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 전체주의로 가는 문이 열리는 것이다. 2700년 전 중국의 명재상으로 교과서에도 나오는 관중(管仲)은 그의 저서 『관자(管子)』에서 “형벌은 민의를 두렵게 하기에 부족하다”며 “형벌을 민의가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군주의 명령이 시행되지 않고 민의가 복종치 않으면 군주의 자리가 위태롭게 된다”고 설파했다. 지식과 정보의 영역에 검찰과 경찰의 형벌권을 끌어들인 이낙연 총리의 조치는 반드시 민의의 저항과 불복을 불러 종국에 최고 권력자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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