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선언 북한판엔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한국판 '연결'만 적시하고 연내 착공 밝혀
4.27 판문점선언서 명시한 철도현대화 사업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최소 43조원'
평양선언 2조 文정권은 '상호호혜', 北은 '호혜'…'소통' ↔ '협상·연계'로 태도 달라
文정권하 남북 선언문 논란, "연내 종전선언 합의" 적시한 판문점선언 유엔제출본 이어 두번째

'9월 평양공동선언'의 남북 철도연결사업 관련 조항에서 북한판에는 있는 '철도 현대화'라는 문구가 한국판에선 빠진 채 공개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판 평양선언 제2조 1항엔 "남과 북은 금년내 동, 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하였다"고 적혀 있지만, 북한판에선 "북과 남은 올해안에 동, 서해선 철도 및 도로련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가지기로 하였다"고 명시된 것이다. 

인터넷종합신문 '뉴데일리'는 8일 청와대가 발표한 평양공동선언의 한글 및 영문본 2건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등이 발표한 한글 및 영문본 2건을 비교·대조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4건의 평양공동선언 한글·영문본을 들여다 보면 이런 '의미상 차이'가 드러난다. 남북 정권이 각각 내놓은 평양공동선언 영문본에서도 현대화(modernizing)라는 문구의 유무가 확실히 구별된다.

9월 평양공동선언 한국판 제2조 1항 한글 및 영문본 캡처
9월 평양공동선언 북한판 제2조 1항 한글 및 영문본 캡처

문재인 정권은 남북의 철도 및 도로 '연결'을 합의하고 왔다는 문서를 국민에게 내보였지만, 북한 정권은 '현대화' 작업까지 약속받았다는 합의문을 공표한 셈이다.

남과 북이 서로 다른 합의서를 들고 있는 격이다. 특히 정부가 4.27 판문점선언 이행 차원에서 추진 중인 북한 철도·도로 '현대화' 사업에 최소 43조원이 소요된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어, 평양공동선언 문구를 둘러싼 논란 또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정양석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국회 예산정책처를 통해 입수한 한국철도시설공단 내부자료를 근거로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북측이 공사인력을 '무상 제공'해 건설 단가의 10% 수준인 인건비를 절약하더라도 북한 경의선 철도 412km(개성~신의주) 구간과 동해선 철도 781km(고성~두만강)를 현대화하는데 각각 13조1634억원과 24조9530억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철도 1km당 건설단가를 토지 수용비부터 제외한 채 355억원으로 계산한 데 따른 것이다. 북한의 경의선 도로 161km(개성~평양)와 동해선 100km(고성~원산)를 현대화하는데에도 토지비·인건비를 빼고 각각 4조347억원과 1조5050억원이 든다.

철도 현대화에 38조1164억원, 도로 현대화에 5조5397억원이소요되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지난달 11일 국회에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면서 밝힌 내년 1년치 추가예산(2986억원)의 약 150배다.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한 이후 심각한 경제난으로 철도 유지·보수를 거의 하지 못한 북한에게 있어 도로와 철도의 현대화는 절실한 부분이다.

정갑윤 한국당 의원이 10월 2일 국회 예산정책처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관련 사업전망'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철도·항만 등 10개 분야의 현대화 사업을 위해서는 최소 103조2008억원, 최대 111조4660억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철도 관련 조항의 모체가 된 평양공동선언 2조는 남북간 서술 곳곳에서 차이가 확인돼 의문이 확산된다.

문재인 정권은 선언문 2조에서 "남과 북은 상호호혜와 공리공영의 바탕 위에서 교류와 협력을 더욱 증대시키고…(후략)"라고 밝힌 반면 북한 정권은 "호혜와 공리공영의 원칙에서 교류와 협력을 더욱 증대시키고…(후략)"라고 명시했다.

'공리공영'을 공통된 어휘로 썼지만 남측은 '상호호혜'를 '바탕'으로 교류협력을 증대한다는 입장이고, 북측은 '호혜'를 '원칙'으로 삼아 교류협력에 임한다고 각각 밝힌 것이다.

북측에서 통상 '상호'라는 어휘를 '호상'으로 쓴다고는 하나, '호혜'만을 적시한 것은 남북간 뉘앙스 차이가 없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뉴데일리는 "향후 남북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북한이 '원칙적으로' 도울 이유는 없는 셈"이라고 추측했다.

조항 자체로도 경제력이 수십분의 1에 불과한 북한이 한국에 상호 혜택을 주기는 어려운 게 현실인데, '북측의 체면 세우기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9월 평양공동선언 내 한국판 서문(맨 위)과 제1조 2항(위에서부터 두번째)에는 '소통'이라는 어휘가 줄곧 쓰였지만 북한판 서문(위에서부터 세번째)과 1조 2항(위에서부터 네번째)에는 '소통'이 아닌 '협상'과 '련계(연계)' 등이 적혀있다.
9월 평양공동선언 내 한국판 서문(맨 위)과 제1조 2항(위에서부터 두번째)에는 '소통'이라는 어휘가 줄곧 쓰였지만 북한판 서문(위에서부터 세번째)과 1조 2항(위에서부터 네번째)에는 '소통'이 아닌 '협상'과 '련계(연계)' 등이 적혀있다.

9월 평양공동선언 서문에 서술된 '소통' 역시 남과 북이 서로 다르게 적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판은 "양 정상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 당국 간 긴밀한 대화와 소통, 다방면적 민간교류와 협력이 진행되고…(후략)"으로 서술돼 있다.

하지만 북한판에는 "수뇌분들께서는 력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후 북남당국 사이의 긴밀한 대화와 협상, 다방면적 민간교류와 협력이 진행되고"라고 적시돼 있다. '소통'이 아닌 '협상'으로 명기된 것이다.

1조 2항에도 같은 차이가 있었다. 한국판은 "남과 북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하여 군사분야 합의서의 이행실태를 점검하고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상시적 소통'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한다.

반면 북한판은 "북과 남은 북남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하여 군사분야합의서의 리행실태를 점검하고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항시적인 '련계'와 '협의'를 진행하기로 하였다"고 돼 있다.

문재인 정권은 서문과 세부조항을 가리지 않고 '소통'을 연신 강조했지만 북한은 모두 다른 용어를 쓴 것이다.

이밖에 남북이 각각 평양선언 영문본을 냈을 때, 문재인 정권은 남북을 'The two sides(양측)'로 일컬었지만 북측은 'The north and the south(북과 남)'으로 여전히 자신들을 앞세워 명시한 서술 행태도 확인된다.

(왼쪽부터) 9월 평양공동선언 한국판 영문본, 북한판 영문본 일부 캡처

한편 문재인 정권에서 발표한 남북간 선언문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된 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지난달 12일 "남북이 9월6일 유엔에 공동으로 제출한 (4.27) '판문점선언'이 연내 종전선언 합의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판문점선언 한국판은 제3조 3항에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적시해 연내 종전선언도 '추진 대상'이라는 게 주된 해석이었다. 영문본 역시 추진(pursue) 뒤에 종전선언을 하는 것(declaring an end to the War)이라는 문구가 적혀 같은 해석이 나왔다.

사진=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 일부 캡처

그러나 북한은 같은 문장을 두고 영문본에 "북과 남은 올해 안에 종전선언하는 것에 합의했다(The north and the south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라고 전제한 뒤 추가 합의사항을 서술해, 유엔 공동 제출 전까지 이를 배포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엔에 공동제출된 영문본은 "양측은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기로 했다(The two sides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로 시작한 뒤 추가 합의 사항을 나열해 북측의 입장과 더 가깝다고 VOA는 지적했다.

사진=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 일부 캡처
사진=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 일부 캡처

그 전까지 배포된 한국판 판문점선언 한글·영문본 모두와 다르게, 유엔에는 종전선언을 연내 선언하기로 남북간 이미 합의했다고 입장을 바꿔 전달했다는 의혹이다. VOA의 질문에 청와대는 "유엔에 제출되기 전에 공개된 판문점선언 영문본은 비공식 번역이었다며 "비공식 번역이라는 말이 누락된 건 담당부서의 실수"라는 변명으로 일관했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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