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정치의 최극단 무술대옥(戊戌大獄)...불의한 판관들에게 公義를 기대 말라"
"좌파혁명은 철저히 이루어졌다...혁명은 완수되었다"
"2018년, 적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어루만지고 포옹하면서 정작 제 나라 사람들은 참혹하게 죽인 해"

김행범 부산대 교수
김행범 부산대 교수

법원이 5일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기준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에 줄줄이 유죄를 선고한 것에 대해 김행범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가 6일 ‘무술대옥(戊戌大獄)’이란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 교수는 “좌파 혁명은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정치, 행정, 경제, 사법 및 문화에서 철저히 이루어졌다”며 “그람시의 ‘진지’는 의미가 없어졌다. 더 이상 숨어서 암약할 필요도 없고 이미 다 차지했으니. 혁명이 완수되었음에도 타국과의 모든 외교관계를 새로 수립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했다.

그는 “어제 및 그 이전 몇 주간처럼 두 명의 전직 국가수반을 비롯해 공직자들 및 경제인들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투옥한 적이 있었던가? 경제 질서를 이렇게 거꾸로 돌려놓은 적이 있었던가? 국가 안보를 이렇게 희대의 도박판에 장난처럼 올려놓은 때가 있었던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참으로 2018년은 한국사에 보복 정치의 최극단을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술년 개띠 해. 이름답게, 정작 적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무안할 정도로 과도하게 어루만지고 포옹하면서, dog-eat-dog라는 의미 그대로 제 나라 사람들은 참혹하게 죽인 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그 실무 간사 노릇을 사법부 판사들이 담당하는 장면은 참담하다”며 “오히려 일부는 그 혁명의 주역이었고 숙청을 통해 새 사법위계를 확립해 이제 자코방의 혁명재판소 노릇을 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광포한 권력 밑 불의한 재판관들에게 이제 공의(公義)를 기대 말라”며 “군중권력에 꿀린다는 것 자체가 곧 정치이며, 당신들은 판관(判官)이 아니라 정객”이라고 했다.

이어 “‘노예의 길’은 외적 강요로 걷는 게 아니라, 촛불과 함성으로 모든 걸 얻을 수 있다는 군중의 '위대한' 교만으로부터 건설되는 것”이라며 “당신들이 법의 지배와 권력분립을 포기할 때, 바로 그 타락한 군중은 자유 민주주의를 참주정치로 한껏 바꾸어 가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법창(法窓) 밖 다수 군중이 만들어 준 거대한 족쇄대로 쪼잔한 문구들 모아 출제예상 답안처럼 선고문을 제작할 바에야 차라리 판사들 보내고 모든 재판을 키오스크(kiosk)에게 맡기자”며 “거짓된 재판으로 겪는 불면의 새벽이 우리가 사는 곳을 가혹하게 깨닫게 해 준다”고 통탄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다음은 김 교수의 페이스북 글 전문(全文)이다.

무술대옥(戊戌大獄)

좌파 혁명은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정치, 행정, 경제, 사법 및 문화에서 철저히 이루어졌다. 그람시의 ‘진지’는 의미가 없어졌다. 더 이상 숨어서 암약할 필요도 없고 이미 다 차지했으니. 혁명이 완수되었음에도 타국과의 모든 외교관계를 새로 수립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어제 및 그 이전 몇 주간처럼 두 명의 전직 국가수반을 비롯해 공직자들 및 경제인들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투옥한 적이 있었던가? 경제 질서를 이렇게 거꾸로 돌려놓은 적이 있었던가? 국가 안보를 이렇게 희대의 도박판에 장난처럼 올려놓은 때가 있었던가? 참으로 2018년은 한국사에 보복 정치의 최극단을 기록했다. 무술년 개띠 해 이름답게, 정작 적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무안할 정도로 과도하게 어루만지고 포옹하면서, dog-eat-dog라는 의미 그대로 제 나라 사람들은 참혹하게 죽인 해.

그 실무 간사 노릇을 사법부 판사들이 담당하는 장면은 참담하다. 사법부는 행정부, 입법부와는 달리 공적 의상을 입고 일하는 유일한 부서이다. 성경 속 제사장들의 에봇(ephod)처럼 삼권분립 최후 보루에게 공의(公衣)를 입혀가며 공의(公義)를 당부하는 국민의 염원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도 혁명을 겪었다. 아니, 오히려 일부는 그 혁명의 주역이었고 숙청을 통해 새 사법위계를 확립해 이제 자코방의 혁명재판소 노릇을 하는 느낌이다.

광포한 권력 밑 불의한 재판관들에게 이제 공의를 기대 말라. 의(義)의 모험자? 진실의 발굴자? 의인도, 호세아도, 솔로몬도 아니고 책 암기로 시험 치러 사법관료 자리 얻어 남의 세금을 봉급으로 이전받는 자일뿐이었던가. 군중권력에 꿀린다는 것 자체가 곧 정치이며, 당신들은 판관(判官)이 아니라 정객.

‘노예의 길’은 외적 강요로 걷는 게 아니라, 촛불과 함성으로 모든 걸 얻을 수 있다는 군중의 '위대한' 교만으로부터 건설되는 것. 당신들이 법의 지배와 권력분립을 포기할 때, 바로 그 타락한 군중은 자유 민주주의를 참주정치로 한껏 바꾸어 가고 있다. 법창(法窓) 밖 다수 군중이 만들어 준 거대한 족쇄대로 쪼잔한 문구들 모아 출제예상 답안처럼 선고문을 제작할 바에야 차라리 판사들 보내고 모든 재판을 키오스크(kiosk)에게 맡기자.

거짓된 재판으로 겪는 불면의 새벽이 우리가 사는 곳을 가혹하게 깨닫게 해 준다: 시간이 유일한 재판관이 되어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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