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 칼럼] '괴물'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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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1.18 09:11:50
  • 최종수정 2018.01.1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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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삼 박정희기념재단 기획실장 
김용삼 객원 칼럼니스트 

정부 시책에 적극 호응하여 아침에 차를 놔두고 전철을 탔더니 공짜랍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기 위해서라나요? 서울시에서만 이런 혜택이 주어진다니 서울 주변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시는 경기도민들은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지나 않았을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하던데, 이제 미세먼지의 폭격을 반기는 사람들도 생겨나지나 않을까 괜한 걱정도 해 봅니다.

휴대폰을 꺼내 뉴스를 보다 보니 하와이에서 탄도미사일 소동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하와이 주(州) 공무원이 실수로 조작을 잘못하여 "하와이를 향해 탄도미사일이 날아온다. 훈련이 아니니 즉각 대피처를 찾아라"라는 긴급 문자 메시지가 발신됐고, 이를 받은 주민들이 대피하느라 큰 혼란이 벌어졌다는 뉴스였습니다.

우리는 기억도 못하지만, 하와이는 물론이요 일본도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여 ‘핵폭발 시 행동요령’을 발표하고 주민대피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공격 위협의 직접적인 당사국인데, 이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대비책을 마련하고, 어떤 대피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나 세우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한숨을 푹푹 쉬다 보니 미세먼지 흡입량만 늘겠구나 걱정하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있다가 문득 대학 시절 접했던 시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벨기에에서 태어나 프랑스 국적을 갖게 된 시인 앙리 미쇼의 ‘단편들’이란 시였는데요. 그 시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비누는 때를 바라보지 않는다. …새가 미치건 말건 나무는 관심 없다.…’

초현실주의 시인답게 앙리 미쇼는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난해한 시를 썼습니다. 이 시의 구절을 음미하며 동북아의 한복판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운명이 떠올랐습니다. 대한민국의 존재가 앙리 미쇼의 시에 등장하는 ‘비누’ 혹은 ‘나무’ 같은 입장이라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불행하게도 한반도가 위치한 동북아에는 우리가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인구 대국, 경제 대국, 기술 대국, 공산주의 종주국 등 다종다양의 거대 국가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만만한 상대가 하나도 없는 겁니다.

●“새가 미치건 말건 나무는 관심 없다”

덕분에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다른 말로 바꾸면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충돌로 끝내 허리를 잘라 분단선을 만들어버린 불편하고 불행한 역사를 우리는 감내하고 있습니다. 앙리 미쇼의 시를 빗대어 말하면 동북아에서 우리의 존재는 비누가 아니라 ‘때’이며, 나무가 아니라 ‘새’의 신세인 것이 엄연한 현실 아니겠습니까.

1,500년 이상을 중국의 짓밟힘 아래 신음하다가, 근세 들어 이번에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민족이기에 우리는 주변국에 억하심정이 많습니다. 이성적으로 따지면 수천 년 이 나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6․25 때 공산 세력의 편에 서서 대한민국을 적화시키겠다고 300만 명 이상의 대군을 파견한 중국에 더 반감이 심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중국에게는 꼼짝도 못하면서 일본과 사소한 마찰이라도 벌어졌다 하면 전 국민이 부르르 치를 떨어야 정상적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것은 치료를 요하는 수준의 집단적 ‘혐일(嫌日) 내지는 반일(反日) 바이러스 감염 증후군’ 증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신적 질병 수준의 집단적 광기를 치료할 백신이라도 발명되면 전 국민이 접종을 받고 전문의의 치료를 받아야 할 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 쯤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면 구한말 조선의 패망 상황이 나타납니다. 조선이 왜 망했는가를 이성적으로 따지는 것도 이제는 부질없는 일입니다.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乙巳五賊)이 나라 팔아먹어서 망했다는 딱지가 워낙 강하게 붙어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국수주의적 민족사관에 맞서 합리적 이성이나 논리, 팩트(fact)를 바탕으로 이의를 제기하면 ‘꼰대’ ‘틀딱’ ‘수꼴(수구 꼴통)’ ‘태극기 우파’로 몰려 집단 린치를 당하거나, 전 가족이 ‘친일파 매국노’로 낙인을 찍힐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전체주의적 광기에 젖은 홍위병들에 의해 백주노상에서 중인환시리(衆人環視)리에 역사 테러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눈 가리고, 귀 막고 자기 편한 대로 근현대사를 난도질하는 일국사(一國史)적 민족사관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죠. 엄연히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들을 왜곡․편향․날조한 근현대사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학교 교과서, 언론, 학계,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퍼뜨리고, 자기들의 사관만이 진리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후폭풍

그러나 있는 사실 그대로를 바라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19세기 말에 전 지구적 차원에서 패권국 영국과, 패권 도전국 러시아의 쟁패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아내기 위해 발칸반도와 흑해에서 격돌했고(크림전쟁), 아프가니스탄에서 격돌했으며(아프간 전쟁), 그 여진이 동북아까지 몰려왔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영국과 러시아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인 패권 쟁탈전이라 하여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와중에 고종과 민 왕후, 그리고 당시의 조정 지도부 인사들이 엉뚱한 일을 벌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영국과 러시아 세력이 동북아로 몰려와 격돌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서 자신들의 종주권 강화를 위해 조선의 내외정에 깊이 간섭하고 나서자 고종과 민 왕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청나라와 일본의 압력을 물리친다는 구상을 하게 됩니다. 이름 하여 인아거청(引俄拒淸), 인아거일(引俄拒日) 정책입니다. 요즘 용어로 설명 드리면 대한민국이 패권국 미국을 외면하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 편에 가서 붙은 겁니다.

러시아는 조선과의 수교, 그리고 제1․2차 조러 밀약사건을 통해 한반도 내에서 부동항을 획득하고, 이를 통해 영국의 방해를 피해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됩니다. 패권국 영국 입장에서 보면 조선이 자기들 면전에서 러시아와 손을 잡는 바람에 글로벌 봉쇄망에 큰 구멍을 낸 결과가 된 것이죠.

틈만 났다 하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그레이트 게임의 판을 뒤엎어버릴 수도 있는 일을 무시로 저지르는 고종과 민 왕후의 골치 아픈 행위를 패권국 영국이 너그럽게 용서하고 넘어갔을까요?

그 후의 끔찍한 역사를 보시면 답은 즉각 나옵니다. 일본의 민 왕후 시해사건, 영일동맹, 러일전쟁, 조선의 식민지로의 전락은 결국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영․러 패권 쟁패전의 엄중한 상황에서 패권국 영국이 일본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조선을 확실하게 손을 봐준 결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대한제국(조선)의 멸망과 일제 식민지는 동맹을 잘못 선택한 참혹한 업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조선이 서양 열강이 아닌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서양 열강이 보기에 조선은 너무나 가난하여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국가적 이권을 찾기 힘든 나라였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바로 옆에 ‘중국(청나라)’이라는 풍요로운 먹이가 있는데 구태여 비참하게 가난하여 착취할 것조차 없는 나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탓이지요.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어서 망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완용과 을사오적을 탓하며 그들을 구제불능의 악당으로 만든 다음, 전 국민이 그들을 속죄양 삼아 즐겁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전쟁에서 패해 나라를 잃으면 그 나라 백성들이 얼마나 비참한 꼴을 당하는지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느부갓네살’로 등장하는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대인 전부를 바빌론으로 끌고 가 노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고 난리를 치는데, 나라가 망하면 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역사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국수주의적 민족사관에 찌들어버린 학자들과 언론, 좌편향적 학자들은 근현대사를 소설처럼 각색하여 마치 고종과 민 왕후는 통치를 잘 하고 있었는데, 대륙침략에 눈이 뒤집힌 일본이 쳐들어와 협박을 했고, 이완용과 을사오적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어 조선이 망했다는 식으로 왜곡과 날조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설 창작 식 근현대사 날조는 ‘의식화의 은사’, 혹은 ‘시대의 양심’, ‘실천하는 지성’으로 알려진 이영희 교수와,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에 이르면 더더욱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 분들은 아예 자기가 태어났고, 세금 내면서 살아가고 있는 나라에 재를 뿌리고 침을 뱉는 것은 물론이요, 마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鬼胎)’로 학대 모욕의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제가 현직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이영희 교수와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를 인터뷰하여 「월간조선」 잡지에 게재한 적이 있습니다(1994년 4월호, ‘이영희 교수의 말과 글’, 1994년 5월호, ‘태백산맥 조정래의 현대사 왜곡’ 기사 참조). 대한민국 청년들을 좌익 이데올로기로 물들이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두 분의 과대망상적 국가 학대증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기사였습니다.

본래 이름을 두고 의도적으로 북한 식 표기법인 ‘리영희’를 고집했던 이영희 교수는 구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졌을 때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너무 과신했음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 사회가 좌회전의 완연한 기류가 형성되자 또 다시 북한을 찬양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인류가 나아갈 이상향인양 기만 선동하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영희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자 갑자기 손을 덜덜덜 떨더니 “너 같은 놈하고는 인터뷰 안 해!” 하고 소리치고 나가버렸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자신이 소설을 써놓고는 “잃어버린 현대사의 복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니 소설은 픽션(fiction), 즉 허구의 이야기이고, 역사는 팩트(fact)의 세계 아닙니까? 픽션을 팩트라고 주장하고 나선 데 아연실색하여 저는 작가에게 이 부분을 질문했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나는 대한민국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작가다. 세금 제일 많이 내는 작가를 조선일보가 보호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주장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좌익과 빨치산, 공산주의자들은 고귀한 선(善)의 존재로, 우익청년단과 국군․경찰, 대한민국 정부는 절대 악(惡)의 존재로 묘사한 소설을 팔아 막대한 돈을 벌고, 그 책을 읽은 수많은 청년들은 공산혁명을 부르짖으며 반정부 투쟁을 일삼다가 감옥에 가서 인생을 망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조정래였습니다. 그런 분이 기자에게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작가이니 보호를 해 달라”고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절망낙담하고 말았습니다.

이쯤 되면 이 분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국가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하는 ‘깨어 있는 지식인’이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국가를 파괴 말살하기 위해 포효하는 ‘괴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논리의 비약은 아니라고 용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좌익은 종북이 되고, 종북은 좌익이 된다

도대체 자기 조국을 파괴하는 운동의 전위 역할을 하는 ‘괴물’들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요? 이영희, 조정래 두 분이 쓰신 자서전과 일대기, 언론 인터뷰 기사를 통해 그 단서를 추적한 결과 공통점이 발견됐습니다. 이영희 교수는 평북 삭주 출신으로 월남을 했습니다. 남한에서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안동에서 영어 교사를 하던 중 6․25가 일어나자 국군에 입대하여 통역장교가 되었습니다.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하필 그가 소속되어 있던 부대가 거창 양민 학살사건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양민학살의 충격을 접하며 그는 자신이 속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부정 저주하고,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을 미화찬양하고, 급기야 북한이 인류의 이상향 쯤 되는 것으로 착각하도록 만드는 글을 발표하여 대한민국 좌익화에 일등 공신 역할을 하게 됩니다.

조정래 작가는 해방 공간에서 부친이 좌익 대처승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언론에 발표한 글에 의하면 어느 날 부친이 지역의 우익 청년단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어깨뼈가 부러지는 모습을 목격했고, 6․25 때는 모친과 누이가 미군들에게 좋지 않은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조정래 작가의 심성을 반(反)국가․반(反)사회․반(反)우익 쪽으로 엇나가게 만든 결정적인 동기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사 차원의 어두운 체험이 결국 자기 조국을 파괴하는 ‘괴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유전인자로 작용했다고 판단됩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생각하셔야 할 점은 남북 대치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의 작동 원리입니다. 한 시절 유명한 학생운동권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강호 씨는 “한국 사회에서 좌익은 필연적으로 종북이되고, 종북은 필연적으로 좌익이 된다”고 설파했습니다. 이영희 교수와 조정래 작가의 논리를 추적해 가면 이 점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질풍노도의 국가건설 와중에 본의 아니게 국가 공권력에 의해 상처 받은 사람들이 좌익논리로 무장하여 대한민국의 기본 틀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파괴하고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체제를 전환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서구 선진국들의 국가건설(state building)은 100~20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해방이 되면서 서구 선진국들보다 훨씬 어려운 여건 하에서 단기간에 걸쳐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했습니다. 식민통치 후유증과 빈곤, 인재 부족, 인프라 부재 상황에서 국가건설을 해야 했기 때문에 상당한 부작용과 모순, 시행착오가 수반된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북한이라는 외부적 위협과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는 내부적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치안질서조차 유지할 능력이 없는 나라, 재정을 스스로 감당할 능력이나 행정능력이 부족했던 나라, 빈곤과 질병과 혼란으로 고통 받던 대한민국은 민주정치는커녕 생존조차 힘들었던 것이 실입니다.

●국가건설의 험난함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국가건설기였던 1945~1970년대의 혼란과 이념 투쟁 과정에서의 희생은 역사적으로 보면 ‘신(神)조차도 어쩔 수 없었던’ 고통스러운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창조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더 위험한 일은 없으며, 그 성공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설파하지 않았습니까?

이 과정에서 발생했던 가슴 아픈 상처를 일부러 덫을 내서 국가를 파괴하는 쪽으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그 아픔을 기억하며 다시는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고치고, 내적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이 현명한지는 공동체 소속원들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저는 사회주의․공산주의는 자유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음습한 그늘에서 기생하는 곰팡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 곰팡이를 박멸하겠다고 강력한 살충제를 살포하면 그 중 일부는 박멸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곧바로 내성이 생겨 더 강한 세력으로 확산됩니다. 그 동안 반공법, 국가보안법으로 좌익분자와 공산주의자들을 감옥에 집어넣어도 더 강경한 투사가 되어 사회 혼란에 앞장서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렇다면 곰팡이를 제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음습한 그늘에 햇볕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기능으로 말씀드리면 패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고,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경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뭐든지 빨리빨리 속도전으로 해치웠고, 압축 성장으로 몇 단계씩 뛰어넘어 기회를 찾았습니다. 이러한 질풍노도의 와중에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사람, 본의 아니게 실수를 했다가 졸경을 치른 사람,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준 것이 아니라 아예 포기하고 앞만 보고 뛰다 보니 ‘발전의 덫’에 스스로 갇혀버린 것은 아닌지 고민을 해 봅니다.

이제 괴물 탄생의 법칙을 이해하셨으면, 치유법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요. 나라 망해가고 있는데 한가하고 느긋한 소리 한다고 비난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도 문제 해결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용삼 객원 칼럼니스트(박정희기념재단 기획실장/전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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