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해킹 시도한 러시아 정보원 4명 추방
영국·EU·NATO, 러시아의 해킹에 대해 일제히 비난
러시아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꾸며낸 사악한 음모" 반박

올해 봄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출신 이중간첩 독살기도 사건에 이어, 러시아 정보요원들의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를 비롯한 전 세계 해킹 시도가 발각되자 서방세력과 러시아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안크 베일레벨트 네덜란드 국방장관은 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4명의 러시아 정보기관 요원들이 OPCW에 해킹을 시도한 것이 드러나 추방했다고 밝혔다. OPCW은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두고 있다.

러시아 정보요원들의 사이버 공격 대상이 된 OPCW는 화학무기금지협정(CWC)을 이행하기 위한 국제기구로, 화학무기를 영구히 제거하는 전 세계의 활동을 감시하는 것을 주 임무로 삼고 있다. 지난 1997년 발효된 CWC는 화학무기 개발과 획득·생산·보유·이전·사용 등을 전면 금지하는 국제협약으로 한국을 비롯해 193개국이 가입해 있다. 북한은 가입하지 않았다.

베일레벨트 장관은 "지난 4월 13일 OPCW에 대한 해킹 시도가 있었으며 당시 러시아 정보기관 요원들이 OPCW의 무선망에 접근하려 했다"며 추방된 요원들은 러시아 군정보기관인 총정찰국(GRU) 소속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당국은 이들의 실명도 공개했다.

네덜란드서 추방되는 러시아 정보요원들

해킹이 시도될 당시 OPCW는 지난 3월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출신 이중간첩 독살 시도 사건 때 사용된 신경안정제를 분석하는 작업과 시리아 두마에서 사용된 화학무기의 성분을 분석 중이었다.

네덜란드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 정보요원들이 당시 러시아가 관련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화학무기 사용 의혹을 알아내기 위해 해킹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존 데머스 네덜란드 법무부 국가안보 차관보는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이 악의적인 사이버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면서 "(러시아 요원들은) 민감한 정보를 빼돌릴 목적으로 컴퓨터 네트워크에 정교하게 접근했다"고 밝혔다. 기소된 7명 가운데 4명은 네덜란드에서 OPCW 해킹 시도 등의 혐의로 추방된 러시아 정보요원들이고 나머지 3명은 지난 7월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관련해 기소된 데 이어 추가로 기소된 인물들이다.

네덜란드 정부의 이같은 조치에 이어, 미국 정부 또한 러시아 당국이 이번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국무부는 같은날 이들 4명을 포함해 미국 원전업체인 웨스팅하우스, FIFA·WADA를 비롯한 국제 스포츠 단체들에 대해 해킹을 시도한 혐의와 가상화폐를 활용한 자금세탁, 금융사기 혐의 등으로 러시아 정보요원 7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러시아를 '상대하지 못할 국가'라고 비난했으며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도 러시아에 무모한 행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전 세계 화학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일하는 국제기구에 대한 해킹 시도는 러시아의 GRU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글로벌 가치와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NATO 국방장관회의에 참석한 개빈 윌리엄스 영국 국방장관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러시아의 사이버공격을 "상대하지 못할 국가의 무분별한 행동"이라고 일갈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NATO 사무총장은 러시아에 "무모한 행동을 중단하라"고 경고한 뒤 "나토는 사이버 영역을 포함한 하이브리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방어력과 억제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의장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각각 성명을 내고 러시아의 OPCW에 대한 "공격적인 행동은 유엔의 위임 아래 전 세계적으로 (화학) 무기를 없애기 위해 일하는 OPCW의 엄숙한 목적을 모욕하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꾸며낸 사악한 음모의 혼합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앞서 지난 3월 영국에선 러시아 이중스파이 부녀를 겨냥한 독살시도 사건의 용의자로 GRU 소속 장교 루슬란 보쉬로프와 알렉산드르 페트로프를 지목한 바 있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자국에 주재하는 러시아 외교관을 무더기로 추방하고 러시아도 이에 맞서 보복 추방에 나섬으로써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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