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욱 칼럼] '가짜뉴스' 때려잡겠다는 정권과 언론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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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10.05 10:42:40
  • 최종수정 2018.10.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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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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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귀를 의심케 하는 보도를 보게 되었다. 펜앤드마이크 보도에 따르면, 이낙연 국무총리가 "악의적 의도로 가짜뉴스를 만든 사람, 계획적·조직적으로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사람은 의법처리 해야 한다. 가짜뉴스를 기존의 태세로는 통제하기에 부족하다. 검찰과 경찰은 유관기관 공동 대응태세를 구축해 가짜뉴스를 신속히 수사하고 불법은 엄정히 처벌하길 바란다"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일단 이 말을 이낙연 국무총리가 했다는 것을 배제하고 생각해보자. 

이 말 자체에 동의하는 국민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언론이 얼마나 수많은 거짓말 해왔고 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오죽하면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말이 통상어로 사용되겠는가. 논조를 정하고 쓰는 기사를 넘어 어떤 결론을 정해놓고 허위의 사실을 꿰어 맞춘 기사, 사실이 왜곡되어 여론을 몰아가려는 보도마저 언론의 자유란 미명하에 보호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좌익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그 원동력이 되었던 수많은 의혹들로 도배된 언론기사가 나중에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질 때마다 우리는 언론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선 거짓말할 자유는 있어도 사실을 말할 자유는 없다’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광우병 보도는 그 내용이 사실과 달라 국민여론이 오도되는 결과에 이르렀음에도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도 거짓말 그 자체를 금지하는 유일한 법이 하나 있긴 있었다. 구 전기통신법 제47조는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었으나, 헌법재판소는 이마저도 위헌판결을 선고함으로써 거짓말할 자유(?)를 보장해버렸다.

왜 그럴까. 왜 언론의 자유는 마치 무제한인 것처럼 보장되는 것일까. 언론 기사로 피해를 입은 일반인들은 형사적으로 명예훼손, 모욕으로 고소, 고발이 가능하고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정정 혹은 반론보도청구, 보도금지가처분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유독 국가(혹은 정권)가 처벌을 하거나 통제하겠다는 것은 이토록 금지하는 것일까. 

그것은 언론의 자유가 가지고 있는 속성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는 전체주의에 대비되는 즉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개인의 자유는 독재 혹은 전체주의체제가 아닌 경우에만 보장받을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려면 반대세력의 존재를 강제적으로 보장받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반대세력이 어느 날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반드시 담보되어야 한다. 현실에서 이 가능성은 자유로운 언론을 통해 나타난다. 따라서 어떤 명목이든 간에 언론을 국가가 통제하려들면 이는 곧 반대세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를 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다른 자유와 달리, 특이하게도 국가나 정권이 개입하는 순간, 그 정도나 강도보다 더 심하게 언론의 자유가 축소되는 특징도 갖고 있다.

이제 이낙연 국무총리의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꿔보자. “정부가 나서서 가짜인지 진짜인지 가려내고 시원하게 전부 감옥에 보내자. 억울하면 재판에서 무죄 받으면 되니까 일단 정부가 나서서 때려잡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렇게 말을 바꾸면 가짜뉴스를 엄벌에 처하라는 총리의 말에 환호를 보내던 사람조차도 망설이게 될 것이다. 왜 망설일까. 우리는 그걸 전체주의라고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짜인지 진짜인지 여부를 정권이 판단하는 것에 우리는 거부감을 느낀다.

소위 586세대 이후에 태어난 필자 같은 사람은 여기서 의문을 제기한다. 왜 군사정권이후 문민정권 이래 유독 이들 운동권 586은 언론에 집착할까.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실에 대못을 박겠다고 했고 문재인 정권하 국무총리는 언론을 손 좀 보겠다고 한다. 

한편, 한 가지를 더 생각해봐야 한다. 아무리 국가가 언론을 규제하는 것을 백안시한다 하더라도 정말 가짜뉴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기성 언론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개개의 언론기관은 사인(私人)에 불과하고 그 언론기관을 구독하는 일부의 국민에게 선택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진실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이바지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가짜뉴스와 허위보도가 난무하면 그에 대해 자정 또는 비판하고 진실과 사실을 보도해야한다. 여론의 자유경쟁, 언론의 자유경쟁 속에서 진실이 드러난다. 본질이 사인에 불과한 언론에 최소한 정치권력이나 국가권력으로부터 그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역할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이제 국민들도 냉정해져야 한다. 언론이 기능을 못하는 것은 한편으론 독자들의 냉정한 비판의식 결여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에선 언론이 오보를 내면 사주(社主)가 사과를 하거나 담당자를 바로 해고조치한다. 우리 언론에게는 보기 어려운 언론 스스로의 자존심 때문인 면도 있겠지만, 그러한 자정조치를 하지 않으면 독자들로부터, 즉 시장에서 도태되기 때문이다. 언론의 수준은 언론 스스로도 결정하지만 독자들이 결정한다. 특히 언론을 정치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가 정치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과 독자가 이러한 역할을 자각하지 않으면 국가권력이 들어온다. 우리는 그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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