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WP 인터뷰서 "처음부터 北에 핵리스트 요구하면 협상 교착" 주장
"北 핵리스트 어느 시점엔 봐야" 넘기고 "양측에 신뢰와 상응조치 있어야 도달"
WP "폼페이오 7일 訪北서 옵션 될 듯…韓정부가 美 설득할지는 두고 봐야"
美국무부 康 언급에 논평 거절, 폼페이오 최근 입장은 "北 FFVD까지 안보리 결의 이행"

강경화 외교부 장관.(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선(先) 핵 리스트 신고·검증' 요구마저 스스로 내려놓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북핵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목표를 공동으로 천명하던 행보를 뒤로 하고, 선 핵 리스트 신고·검증 요구를 미루자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강경화 장관은 3일(현지시간) 주 유엔 한국대표부에서 가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핵무기 목록을 (북한에) 요구하면 이후 검증을 놓고 이어질 논쟁에서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WP에 따르면 강 장관은 지난 2008년 6자 회담에서 조지 W.부시 행정부 시절 북한이 플루토늄 관련 시설에 대한 수천 페이지의 자료를 넘기고 난 뒤 북핵 합의였던 9.19 공동성명이 실패한 사례를 근거로 댔다.

강 장관은 "핵 목록 신고를 받은 뒤 그걸 검증할 상세한 프로토콜을 산출해내려고 하다가 결국 실패했다"며 "우리는 다른 접근을 하길 원한다"고 했다.

그는 "어느 시점에서는 북한의 핵 목록을 봐야 한다"면서도 "양측에 충분한 신뢰를 줄 수 있는 행동과 '상응조치'가 있어야 그 시점에 더 신속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른바 '상응조치론'까지 덧붙여 전제를 달았다.

강 장관은 남북 정권이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밝혀 둔 영변 핵시설 폐기와 6.25 전쟁 종전선언을 미북이 맞바꿔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도 폈다.

그는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서 매우 큰 부분"이라고 북측의 입장을 대변한 뒤 "만약 북한이 종전선언과 같은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핵시설을 영구 폐기한다면 비핵화를 향해 나아가는 대단히 큰 도약"이라고 말했다.

종전선언과 관련해서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서가 될 것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반복하고 유엔군사령부 무력화, 주한미군 철수 등 우려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WP는 북한의 핵 리스트 신고 및 검증을 미루자는 이런 제안이 비핵화 협상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감이 커지는 가운데 북미 간 협상 교착상태를 타개하고자 한국 정부에서 고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WP는 "이 계획은 7일 (하루 동안) 방북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도 여러 옵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으나, "한국 정부가 이같은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미국 정부를 설득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례로 미 국무부가 강 장관의 입장에 대한 코멘트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문화일보는 4일 보도에서 강 장관의 입장에 대해 "핵 리스트 신고를 바탕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폐기를 우선 추진하는 기존의 '프런트 로딩(핵심적 비핵화 조치 초기 이행)' 방식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지난 1일 보도에서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에 비핵화 전 선행조치를 공개 요구한 것에 관해 미 국무부에 논평을 요청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FFVD와, 북한을 위한 보다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과 관련된 여러 약속을 한 바 있다"며 "우리는 이 모든 약속을 이행하는 것에 관해 북한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기존 선 비핵화 입장을 재차 분명히 했다고 전했었다.

국무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 신문에 "미국 정부 입장은 폼페이오 장관의 유엔 연설이나 헤더 나워트 대변인의 브리핑에서 밝혀왔던 것에서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27일 유엔 안보리 장관급 회의에서 "세계는 핵무장한 북한을 용납할 수 없다"며 "FFVD까지 북한과 관련된 모든 안보리 결의안을 완전히 이행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엄숙하고 공통된 책임"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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