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문제, 21C 美中 패권경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아니면 말고' 식의 종전선언, 국가지도자가 할 이야기가 아니다
종전선언 할 여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종전선언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김영호 객원 칼럼니스트
김영호 객원 칼럼니스트

평양정상회담을 계기로 체결된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에 대해서 미국이 공개적으로 반박을 하고 나섰다. 지난 9월 25일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에이브람스 美육군 대장은 남북한이 합의한 비무장지대(DMZ) 전방초소(GP) 철거 작업은 유엔군사령부의 중재가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한이 종전선언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존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의 발언은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와 관련한 미국측의 최초의 공식적 입장이다.

그의 발언은 문재인정부가 이번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를 북한과 논의하면서 사전에 유엔사와 미국과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맹국가인 미국과 군사문제를 협의하지 않고 민족공조론에 서서 북한과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들을 합의한 것 자체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군사분야 합의서는 군사분계선 지상 뿐만 아니라 공중과 해상에서 남북한이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이 내용들은 한국군의 정상적 군사 작전과 훈련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한미연합군과 미국의 군사훈련을 제약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한국군에게도 큰 문제이지만, 이번 에이브럼스의 발언은 미국이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재인정부는 남북문제가 마치 국제정치적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진공상태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남북문제는 미중간 치열한 무역전쟁에서 보는 것처럼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군사분야 합의서는 북방한계선(NLL)을 해상 적대행위 중지 ‘지역’으로 설정하여 교묘하게 무력화시키고 있다. 정전협정에는 분명히 북방한계선은 북한이 넘어서는 안되고 우리와 유엔군이 지켜야 할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선’을 ‘면’과 ‘지역’으로 바꾸어 북방한계선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에이브럼스 대장은 인준청문회에서 이런 꼼수를 미국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서해 지역에 그렇게 넓은 해상 적대행위 중지 지역을 설정하면 미국에게 어떤 일이 생기는가? 미국은 서해에 전략 무기를 배치하고 서해를 통해서 동중국해와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해군력을 더 이상 견제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빠지고 만다. 이번 군사분야 합의는 남북공조라는 미명 하에 서해에서 미해군의 활동과 미국의 군사력을 무력화시키려는 ‘반미친중’(反美親中) 정책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에이브럼스 장군의 발언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은 문재인정부의 이런 기조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한국이 이 군사분야 합의서를 북한과 함께 밀어붙이려고 할 경우 한미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종전선언만 하더라도 문재인대통령이 유엔 방문에서 트럼프대통령과 이를 논의했지만 미국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대통령은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이 선언을 한 후 북한이 이를 어길 경우 되돌리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미국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은 국가지도자가 할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과 자유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종전선언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 종전선언을 할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종전선언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 끝을 모르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보는 것처럼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을 더욱 격화되고 있다. 그 여파는 어김없이 한반도로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있다. 한반도는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된 패권전쟁에서 한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구한말 영국과 러시아 사이 전개된 첫 번째 패권경쟁 와중에서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해방 이후 전개된 두 번째 패권전쟁인 미소 냉전대결이 전개되면서 한반도는 분단되고 북한의 남침에 의해서 동족상잔의 끔찍한 일을 경험했다. 한국은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세 번째 파도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는 미중 패권경쟁에서 문재인정부가 ‘반미친중’(反美親中) 노선을 걷겠다는 입장을 보여준 것이다. 에이브럼스 장군의 발언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은 앞으로 문재인정부의 이런 노선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취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패권경쟁의 거친 파도에 대한민국 호(號)가 난파(難破)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영호 객원 칼럼니스트(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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