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 호소하는 민족지상주의 여전히 동북아 3국만 갇혀 있어
北, 김일성 유일영도체계 이후 맑스發 국제주의 팽개치고 '우리민족끼리' 선전선동
운동권 스스로 '진보'라더니 국제사회 좌파와 정반대로 민족지상주의에 맞춰
민족지상주의, 좌파 국내정치기반 강화와 南北 결속 목적으로 이용돼 와
反美·反日, 같은 '외세 배격' 논리…지금도 韓美동맹 파기 노린 좌파는 은밀 작업중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나폴레옹전쟁 후 유럽 대륙은 민족국가 단위의 국제질서로 발전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 근대화과정에서 일본이 앞서 민족주의를 받아들여 국가건설과 제국주의 침략의 도구로 썼고, 피해자인 조선이나 중국도 독립투쟁과 국권회복, 그리고 국가건설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유럽 시민민주주의의 후발국들도 감성에 호소하는 민족지상주의를 졸업한지 이미 오래인데, 동북아 3국은 아직도 민족지상주의의 포로로 갇혀 있다.

북한정권은 맑스·엥겔스가 주창했던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국제주의 이념을 김일성의 유일영도체계 수립 후에 팽개쳤다. 김일성의 반일활동을 과대 포장하여 민족주의의 화신처럼 치켜세우고 있다. 선전선동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민족끼리’를 주문(呪文)으로 외치고 있다.

한국의 주사파 운동권들도 열심히 민족지상주의를 고취하고 있다. 스스로를 진보세력이라고 우기면서도, 국제사회의 좌파적 양심과는 정반대로 가는 모순덩이다. 그들은 반정부활동 당시 북한 방송 청취록에 장단을 맞추었는데, 이제는 정권 핵심부로 진입하였다. 문재인의 8.15 경축사는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고 하였고, 4.27 판문점 선언은 “남과 북은 우리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에 서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 뜬금없는 북한철도, 도로 건설에 막대한 국민 혈세를 낭비하려 든다. 피땀 흘려 만든 대한민국을 절단 낼 각오로 보인다. 민족지상주의에 맞추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한국 현대사분야를 장악한 좌파 역사학자들이 이승만과 박정희를 친미와 친일의 대표로 낙인찍고, 교과서에서 끌어내리고 있다. 스탈린 지시대로 1946년 3월 북한 땅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통치기구를 설치한 사실은 외면하고, 이승만이 유엔결의에 따른 자유선거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이 분단의 원인이라고 비난한다.

최근 전교조 출신 교육감들은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일합법정부’, ‘자유민주주의’ 등의 서술이 빠진 중·고교 교재를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6.25 남침과 유엔결의에 따른 유엔군의 참전 사실도 빠져있다. 북한의 인권문제, 3대 세습 문제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건국 70주년은 무시하고 임시정부 수립부터 기산하여 내년 건국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한다고 한다. 1948년 7월 인공기를 쓰기까지 북한에서도 게양했던 태극기를 외면하려 한다. 애국가와 태극기를 분단의 상징으로 보려는 것이다. 9월 문재인 평양방문 일행 중 이재용의 태극기만 빛났다.

2005년 독도 영유권에 관한 한일 간 긴장관계가 고조되었을 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편지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웃 일본과 외교 현안을 외교부에서 다루던 관행을 벗어난 파격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의도는 현안해결보다는 한일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데 있었다. 한국사회를 반일과 친일로 나누어 기득권 세력을 친일로 낙인찍고, 자신들을 반일·독립투사와 일체화하려는 기도였다. 일부 정치인이 이 신호에 맞춰 친일을 비판했는데, 막상 자기 아버지가 일본 헌병 오장, 또는 만주군 밀정이었다는 사실이 탄로 나서 정치생명을 끝내는 촌극도 벌어졌다. 어떻든 노무현의 시도는 성공했다. 민족주의를 이용한 국내정치기반 강화였다. 민족주의라는 키워드로 한반도 남·북의 결속을 도모하는 의미도 있다.

반미운동도 반일과 같이 외세배격에 다름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공산침략에 대항했던 한미 혈맹관계를 쉽게 뒤엎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좌파의 집요한 반미활동은 이어져왔다. 이승만은 건국 과정에서 하지 사령관의 몰이해와 미 국무성의 앨저 히스 같은 소련 스파이들의 방해공작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휴전을 서두르던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에버레디 작전(Plan Ever ready)’까지 시행하려 했다. 그럼에도 좌파들은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폄하하고, 이승만의 건국으로 한반도가 분단되고 통일기회가 날아갔다고 비난한다.

미국은 한국전 휴전 후에도 막대한 원조를 제공하고, 경제개발 과정에서 한국 상품의 시장이 되어 주었고,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의 신생 한국의 전폭적 지원자였다. 한국사회에서 미국을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다. 70년대까지 전세계에서 반미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한국만이 유일한 ‘반미의 무풍지대’였으나, 광주사태를 계기로 태풍이 불어 닥쳤다.

2002년 한 포털사이트가 누리꾼 상대의 '올해의 뉴스' 설문조사에서 '반미 열풍'이 1위에 올랐다. 5.18 광주사태 시 미국이 전두환 정부를 지원하였다는 구실 아래 반미운동은 불타올랐다. 1985년 미문화원 점거사건, 2002년 6월 효순이·미선이 사건, 2008년 미국산 소고기수입반대 사태 등을 통해 좌파의 선동이 반미운동을 격화시켰다. 한명숙 총리 당시 남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 참여할 정도였다. 이제는 한국의 반미운동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고 있다.

1994년 10월 북핵문제 타결을 위한 제네바 합의 과정에서 북한의 속임수를 경계하던 김영삼과 미봉적 해결을 원하던 클린턴 간의 갈등은 심각했다. 이 갈등이 1997년 12월 대선 한달 전의 IMF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클린턴이 김영삼에 호의적이었다면 대선 후로 미룰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클린턴은 너무 기뻐했고, 김대중과의 밀월관계가 시작되었다.

그 밀월시기에 한국사회의 반미운동이 폭발한 것을 어떻게 설명 가능한가? 김대중의 지지기반이 지역색과 반미주의자라는 것을 파악한 것은 부시 정부에서였다. 부시 취임 후 서둘러 2001년 3월 워싱턴을 방문한 김대중이 김정일을 옹호하려 하자, 부시가 “디스 맨(this man)”이라고 호칭했던 외교적 참사의 경위였다. 한국 내 반미운동은 좌파 정권하에서 점점 커졌고, 이제 문재인 정부에서 절정에 달한 셈이다.

국제제재로 곤경에 빠진 김정은은 금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평화공세를 폈고, 문재인이 구원투수가 되어 성급한 경제협력과 황당한 무장해제를 추진하고 있다. 3차의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 비핵화를 핵심과제로 삼지 않고, 퍼붓기 식 경제지원 방안에 몰두하였다.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말려들어 남북한 ‘종전선언’제안까지 들고 나왔다.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9월 26일 유엔총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사실상 북한 김정은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지원이나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마치 남북한이 한편이 되어 미국을 공략하는 모양새다.

종전선언이 추구하는 지향점은 평화협정이고 이를 통해 미군 철수를 겨냥하는 것이다. 비핵화를 위한 국제제재가 필요한 시점에 개성에 남북연락사무소를 무리하게 개설한다든가, 유엔군 사령부와 협의 없이 DMZ내 방어시설 해체를 합의해버린다든가, NLL을 형해화 하려는 조치들은 ‘우리 민족끼리’의 주문에 함께 춤추는 것과 같다.

아직 반미를 정면에 내걸지는 않지만, 좌파들은 은밀하게 작업하고 있다. 한미동맹 파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위해 ‘우리 민족끼리’라는 주문을 계속 외쳐댈 것이다. 단일민족이라는 거짓 신화로 반외세 ‘종족적 민족주의’를 내세운다. 북한 동포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김일성 민족주의에 추종하려는 노력은, 훗날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요술피리가 될 것이다. 세계 6위의 수출대국에서 종족적 민족주의에 매달려 반미·반일을 추구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민족공조를 통해 우리와는 전혀 이질적인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과 연방제를 실현하려 한다. 만약 제동에 걸려 실패하면, 이들 민족지상주의자들은 한반도 평화가 깨지는 이유가 미국에 있다고 하면서 반미운동을 더욱 세차게 몰고 갈 것이 틀림없다.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現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前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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