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N수첩/김민찬] 국가위상은 걸그룹이 아니라 위대한 기업에서 나온다
[PenN수첩/김민찬] 국가위상은 걸그룹이 아니라 위대한 기업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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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은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의 수혜자
-위대한 기업이 국가의 위상
-'쪽팔리는 나라'를 물려줄 수 없기에
PenN 김민찬 기자
PenN 김민찬 기자

1. 걸그룹

예쁜 여자들이 단체로 나와 선정적인 춤을 추는 것을 싫어할 남자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대환영이다. 그러나 국가의 위상은 그런 밴드들이 해외에서 팬덤을 늘린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위상은 개인을 위해서 중요하다. 아무리 비싼 옷을 걸치더라도 후진국이나 덜 떨어진 나라에서 왔다고 하면 밖에서 제대로 대접받을 수 없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세계에 내놓을 만한 한국의 자랑을 꼽을 때 앞을 다투는 것이 케이팝과 촛불민주주의다. 케이팝 자체는 대중문화이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갈리는 것이지 그 자체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진정으로 강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은 스키니진을 입고 군무를 추는 보이밴드들과, 앞서 얘기한 걸그룹들이 아니다. 잘살고 그럴듯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나와 춤을 추니 멋있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같은 시선으로 비춰졌을까?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의 수혜자들이다. 그리고 촛불을 위시한 광장의 광기는 국제사회에서 깔보임 당하기 가장 좋은 모습이다.

한 나라의 위상은 그 나라가 얼마나 잘살고 강한지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한 나라를 잘살고 강하게 하는 것은 위대한 기업과, 그 나라 국민들의 기풍이다.

2. 킴키즈칸

나의 아버지는 젊은시절 대우의 '킴키즈칸' 원정군에 합류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따라 일본, 폴란드,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특히 폴란드는 대우 세계경영의 가장 화려했던 전방의 격전지이다.

90년대 공산국의 잔재를 털어내고 경제도약을 꿈꾸던 폴란드에는 세계 각국의 기업과 주재원들이 진출해 있었다. 당시 세계최강이었던 GM을 누르고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신(新)시장 전부를 접수했던 대우와 한국인들에 대해 세계인들은 경외감을 가졌다. 그리고 폴란드의 경제 부흥에 동참했던 대우와 한국인들에 대한 폴란드 국민들의 사랑은 뜨거웠다. 대우차를 타고 지나갈 때 폴란드인들이 보내던 박수와 따뜻한 시선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당시 국제학교를 다니며 여러 나라의 아이들과 어울렸다. 나를 비롯한 한국 학생들은 학교에서 늘 당당했다. 학교는 대우 로고와 달력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대우의 위상은 선생님들을 비롯한 아이들도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우가 뿜어내는 도전적이고, 근면하고, 세련된 이미지는 비단 이미지가 아니라 폴란드에 있던 한국인들 전체의 당시 기풍이었다. 역경을 이겨내고 경제적 성취를 이룬 나라, 위대한 기업이 있는 나라, 그리고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자신감 있고, 근면하고, 세련되게 행동하는 한국인들을 어떻게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실제로 내 유럽 친구들의 가족들은 다음 근무지로 한국을 희망했고, 몇몇은 한국에서 주재원 가족으로 수년간 생활했다.

나는 당시 피부로 느낀 체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국가의 위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국가의 위상을 견인하는 것은 위대한 기업과 그 나라 국민들의 기풍이라는 것을.

3. 할아버지가 심는 나무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의 열매를 손자가 따서 먹는다는 말이 있다. 나의 할아버지는 인천에서 납세를 가장 많이 하던 집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재산은 모두 동생들이 물려받게 하고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여러 기업들을 일으켰다. 그 기업들은 지금도 수많은 근로자에게 월급을 주고 국가에 세금을 낸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 세대의 모험적인 기업가들이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세대의 수출전사들이 밤낮 없이 일한 끝에 지금의 이 나라가 있다고 믿는다.

이 나라는 광장에서 소리를 치던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광장에서 감상에 젖어 카타르시스를 느끼던 젊음보다 더 값진, 사무실과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던 젊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늘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웠다. 내 방 벽에는 태극기를 붙여 놓았었다. 그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이루어 놓은 나라에 대한 긍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중심리와 광장으로 점철된 나라에 대해 내 아이들과 손자들은 긍지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러도록 학교와 미디어로부터 세뇌를 당하더라도 밖에 나가 무시를 당할 것이다. 광장의 광기를 찬양하고 인정해주는 곳은 21세기 문명국가 중 어디에도 없다.

이 나라의 핵심 경쟁력인 기업과 기업가 정신이 빠른 속도로 파괴되어 가는데 미래에 국제적 위상이 유지될리 없다. 밖에 나가서 무시나 당하는 나라에 대해 아이들이 긍지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나라의 위상이 기울었을 때도 우리나라 가수들이 해외에서 지금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의 열매를 실컷 먹기만 하고 끝낼 수 없다. 아이들에게 썩은 나무를 물려줄 수 없다. 쪽팔리는 나라를 물려줄 수 없다.

위대한 기업이 넘치는 나라. 위대한 기업의 기풍이 넘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물려 받았었고, 물려 줄 것이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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