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박3일을 관류하는 핵심 코드는 민족-민족주의
백두산 등반도 “민족 만세의 신탁(神託)” 완성 위한 연출
“민족이 국가를 삼킨” 민족주의 과잉 속에 빚어진 비극
민족타령은 친북정서 기르고 대한민국 파괴하는 행위 직시를
준비 중인 연방제, 종전선언을 예고하는 서곡일 수도

조우석 객원칼럼니스트(KBS 이사)
조우석 객원칼럼니스트

2박3일 평양 ‘비핵화 쇼’가 끝났다. 그렇게 될 것으로 예견은 했으나 현실은 예상보다 몇 걸음을 더 나간 형국이다. 이 모든 게 이 나라 대통령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빚어졌다. 헌법상 국가보위-영토보전의 의무를 가진 그가 엉뚱한 일을 벌인 탓에 초래된 국론 분열과 공동체 위기다.

좋다. 뱅모 박성현의 며칠 전 글처럼 평양회담으로 피아(彼我) 구별이 분명해졌으니 남은 건 ‘선한 싸움’뿐인데, 오늘 이 글은 대통령의 문제 있는 발언만을 따져보는 자리다. 얼마 전 도태우 변호사와 국본은 NLL을 문제 삼아 대통령을 여적죄(與敵罪)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평양 발언만으로 문제 삼을 게 수두룩하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 중 최악이 다음의 셋이다.

북한주민 앞에서 “어려운 시절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나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봤다”고 한 대목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그게 미국의 대북 제재를 암시했다들 말하지만, 그게 아니다. 6.25 전후 현대사 전체와 북 체제 옹호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 발언을 전후해 “김정은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봤다”는 그 자신의 고백이 이런 추론을 너끈히 뒷받침한다. 겸양도 분수가 있는 법인데 “남측 대통령”이란 엉뚱한 자기비하는 또 뭐란 말인가? 그건 적으로부터 경멸만을 얻을 뿐이다. 즉 그는 북한에 사실상의 투항을 한 장수(將帥)라는 게 나의 중간결론이다.

둘째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란 대목도 큰 문제다. 자기 고모부를 기관총으로 쏴 죽인 사이코패스를 이렇게 찬양한 건 정말 무분별의 극치이고, 상식 이전에 속한다. 물론 백 번을 양보해 김정은에겐 두 개의 측면이 있을 것이다.

즉 적성국의 수괴이자, 협상 대상자다. 때문에 균형 감각을 가지고 능소능대하게 접근해야 옳지 않겠는가? 하지만 무엇보다 최악의 발언으로 나는 “민족 만세”, “겨레 타령”을 꼽는다. 평양회담 전체를 관류하는 코드가 민족이다. 실제 19일 연설에서 민족이란 어휘가 자주 등장했고, “우리민족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는 표현까지 그는 구사했다.

이게 무얼 뜻할까? 이 나라 대통령이 ‘우리민족끼리 바이러스’에 심각하게 오염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북과 남, 8000만 겨레의 손을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갈 것”이란 그날 연설의 진의가 영 수상쩍다. 때문에 문재인이 말한 “새로운 조국”이 우리헌법에 명문화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충돌할 땐 어떻게 할까를 따져봐야 할 때가 지금이다.

누가 그걸 하겠는가? 그게 제1야당과 시민사회의 몫인데, 대통령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민족주의 확신범임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백두산 등반이 그 증거다. 한국인에게 백두산은 민족주의의 상징물인데, 그날 등반으로 민족만세의 신탁(神託)을 드디어 완성했다고 문재인은 스스로 자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23일 SNS에서 “우리는 함께해야 힘이 나는 민족”이란 문구로 시작한 추석 인사도 했다, 아찔하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지금인데, 그렇다면 왜 민족만세 타령이 문제일까를 공유할 때다. 우선 대한민국은 민족주의를 졸업하고 만들어진 근대국가인데, 그 점을 문재인과 청와대의 아이들은 애써 무시한다.

혈연-언어 공동체란 민족주의 정서를 극복하고 만들어진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걸 확인한 게 새로운 국가공동체를 선언한 1948년 건국이다. 누구라도 언어-음식 등으로 민족을 말하며 일체감을 확인할 순 있겠지만, 무언가 목적이 다를 때가 문제다.

즉 국가공동체를 흔들려는 음험한 목적 아래 민족주의를 들고 나온 세력이 이 나라에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게 1980년대 이후 좌익 운동권이다. 그들에게 좌익이념과 민족주의는 양손에 든 무기다. 그래서 그들은 박정희 시절의 그래도 건강했던 우파 민족주의를 완전히 형해화시킨 뒤 좌파 민족주의로 모조리 탈바꿈시켰다.

왜? 민족주의 속에서 “우리는 하나”, “우리민족끼리” 구호를 외치며 친북-반일-반미를 고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럭무럭 자라나 어느덧 민족주의는 한국사회의 시민종교로 자리 잡았다. 그걸 기독교와 비교할 수도 있는데, 민족주의교(敎)에서 악마와 사탄은 일본-미국-이승만으로 설정된다. 3·1운동은 종교부흥을 위한 지하운동의 시원으로 숭배된다.

그리고 백범 김구는 민족주의교의 중흥조(祖)인데, 그래서 기독교의 예수쯤으로 모셔지며, 이 나라 대통령이란 자리는 민족주의교의 총회장 격이다. 이제야 그 구조가 가늠되시는가? 요즘 좌익과 운동권은 애써 표정 관리 중이다.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으니 춤이라도 덩실덩실 출 판이다.

공산주의 이념을 내세우지 않고도 대한민국을 절단 낼 비밀병기인 민족주의를 확보했고, 이제 그 과업도 거의 끝나가기 때문이다. 이게 이해된다면 진도를 더 나가자. 왜 한국사회에 틈만 나면 친일파 시비 광풍이 부는지, 그게 자해(自害)의 드라마인지도 가늠해야 옳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로 몰고 가는 게 친일파 시비이고, 배경에는 민족주의교가 있다.

한국사회의 이 악성구조를 염두에 둔 채 평양에서 문재인의 민족 만세 타령을 새로 음미해보시라. 불길하다. 아니 등골이 오싹하다. 한국의 좌익-좌파는 이념 본색을 감추려는 속성이 있지만, 민족주의자 행세는 거리낌 없다. 명분 그럴싸하고 대중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민족만세 타령을 하는 배경도 크게 보아서는 그 그림이다. 민족이냐 국가냐 하는 선택의 순간, 기꺼이 대한민국 편에 설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과잉이 정말 문제는 문제인데, 그걸 이영훈 교수는 이렇게 절묘하게 표현한 바 있다. “민족이 국가를 삼켰다”. 그게 백 번 맞는 소리다.

즉 대한민국은 민족주의란 괴물의 먹잇감인데, 문재인의 잘 계산된 민족만세의 타령은 대한민국을 절단 내는 소리로 내 귀에 들린다. 그리고 그가 만지작거리는 연방제통일, 종전선언을 예고하는 서곡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자유한국당 머저리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조우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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