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결 많은 좌파' 유은혜 두둔한 박용만, 자유 지키는 헤리티지 재단 만든 쿠어스
자유와 시장의 혜택 가장 많이 누리면서도 책임은 외면하는 상당수 한국 기업인
미국 레이건 혁명, 영국 대처 혁명의 숨은 공로자였던 기업인 쿠어스-코크-피셔
"자유사회라는 체제가 생존해야 기업도 생존할 수 있다"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하 경칭 생략)은 이달 초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물의를 빚었다. 그는 9월 6일 지명철회 논란이 커지고 있던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를 옹호하는 내용의 글을 썼다.

박용만은 "요즘 논란을 보면서 갑자기 내가 아는 유은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면서 "왜냐면 내가 아는 한 유은혜는 늘 옳은 선택을 하고 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말수가 많지 않은 대신 상대하는 사람을 어렵게 하는 무게가 있는 사람"이라면서 "단단한 원칙이나 논리가 따뜻한 미소와 결합하면 참 강해지는 법인데 그런 유은혜를 두고 난무하는 이야기들이 참 안타깝고 속상하다"고 아쉬웠다. 그는 또 "만나는 기회라는 것이 대부분 돌아가신 김근태 선배 선배의 추도행사나 관련된 모임에서 봤으니 그 선하고 순수했던 분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더해져서 그 웃음이 더 따뜻해보였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박욤만의 페이스북 글은 누가 봐도 아들의 병역면제, 딸의 상습적 위장전입, 피감기관 사무실 입주 등 전방위 의혹에 휘말려 곤경에 처한 유은혜를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에서 국민의 반응은 싸늘했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이나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박용만이 대놓고 현 집권세력에 아부하고 있다" "명색이 경제단체장이 나라를 벼랑으로 몰아가는 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지적하기는커녕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유은혜 감싸기'를 하고 있나"라는 비판이 잇달았다. 좌파정권 출범 후 줄곧 핍박을 당하다가 결국 MBC를 떠난 김세의 기자는 "내가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가 아닌 LG 트윈스 팬인게 너무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비꼬았다. 반발이 거세지자 박용만은 문제의 페이스북 글을 삭제했다.

박용만이 유은혜와 어떤 개인적 인연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갖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박용만에 비친 유은혜의 모습이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전문성과 도덕성에서 모두 고위 공직자 후보로는 낙제점인 유은혜를 굳이 감싸고 나섰을 것이다. 별 생각없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가 잇단 반발 움직임을 보고 "아.뜨거워라" 하며 글을 삭제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용만의 이번 '해프닝'을 보면서 내가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우리 사회의 이른바 주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념에 대한 몰이해와 천박성이었다. 유은혜는 골수 좌파 운동권 출신이다. 정치권에 투신한 뒤에도 그가 보여준 모습은 한국의 강성좌파 노선에서 벗어난 적이 드물다. 그런데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 핵심가치의 헤택을 누구보다 많이 누린 재벌가(家) 3세라는 '금수저'에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용만이 개인적 친분 때문에 부적격 고위공직자 후보인 유은혜를 공개적으로 두둔하고 나선 것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러고보면 그동안 두산이나 박용만이 한국의 국가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이게 현재 한국의 재벌가(家) 사람들의 이념에 대한 평균적 수준이라면 가슴이 답답하다. '박용만 사건'을 지켜보면서 자유 진실 시장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미국과 영국의 기업인들을 떠올렸다.

미국의 대표적인 우파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쿠어스맥주 창업자인 조지프 쿠어스가 기부한 25만 달러를 바탕으로 1973년 설립됐다. 쿠어스는 자유시장경제와 기업을 공격하는 일방적 주장이 득세하는데도 미국 기업인들이 외면하는 현실을 우려하던 루이스 파월 검사의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아 자유주의자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일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쿠어스라는 '각성한 기업인'의 출연(出捐)으로 출범한 헤리티지 재단은 미국 사회의 흐름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다. 헤리티지 재단과 쌍벽을 이루는 케이토 연구소도 코크 인더스트리 회장인 찰스 코크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쿠어스와 코크가 미국 '레이건 혁명'의 숨은 공로자라면 강성 노조와 방만한 공공부문이라는 '영국병'을 고친 '대처 혁명'의 숨은 공로자는 앤서니 피셔다. 양계사업으로 돈을 번 기업인인 피셔는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조언을 듣고 사재(私財)를 출연해 영국 경제문제연구소(IEA)를 설립해 자유주의 이념의 전파에 힘썼다. 훗날 대처는 피셔를 비롯한 IEA 관계자들에게 "당신들의 위대한 노력에 동참한 모든 이들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소수였지만 옳았고 영국을 구했다"라고 칭송했다.

한국에서도 기업과 기업인들이 이른바 사회공헌 활동에 적지않은 돈을 쓴다. 그러나 쿠어스나 코크, 피셔처럼 자유주의 신념으로 무장해 이런 움직임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하는 기업인은 드물다. 몇몇 기업인이 거액의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재단 중에는 오히려 '자유의 적(敵)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곳으로 전락한 곳도 적지 않다. 한국에 제대로 된 우파 싱크탱크 하나 없고 '자유와 시장'이 이처럼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쿠어스나 코크, 피셔 같은 '깨어있는 기업인'이 적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학 정치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학자인 마이클 노박은 기업인들에게 이런 충고를 한 적이 있다. "자유사회라는 체제가 생존해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 기업세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자유사회를 지탱하는 원칙들을 잘 알고 지키는 다수의 사람들을 교육하고 계몽하면서 유지할 책임을 강하게 느껴야 한다." 박용만을 포함한 한국 재계의 리더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ks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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