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정상회담은 김정은이 북한 주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는 ‘대극장’일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일 정상회담을 열고 남북한 군축과 경제협력·민간협력 활성화 등의 내용이 담긴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가운데, 미국과 일본 언론 사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와 합의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평양 회담의 핵심 의제인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합의문에 구체적 내용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이틀째인 19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 대형모니터에 선언문 서명식을 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미국 뉴스통신사인 AP는 "정상회담은 김정은이 북한 주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는 ‘대극장’일 수도 있다(Summit may be the grand theater Kim needs to show his people)"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AP통신은 18일(현지 시각) 김정은은 자신이 위대한 지도자라는 걸 북한 주민에게 보여줄 기회를 찾고 있었다면,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訪北)이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자신이 북한 경제 부흥을 이끌 중추적 인물이라는 것을 북한 주민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AP통신은 전했다. AP통신은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가리켜 ‘김정은의 핵심 선전가(her brother’s chief propagandist)’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김정은과 문 대통령이 공동선언에서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며 전문가들 반응을 전했다. WP는 그러면서 "김정은이 서울 방문을 약속했으나 핵 계획의 해체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은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문 대통령이 북한이 핵심 미사일 시설의 영구적 폐기에 합의했다고 말했다고 전하면서도 "그러나 미·북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북한에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당시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모호한 약속을 어떻게 이행할지에 대한 논의에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고 평했다. 로이터는 “이번 합의는 미국 당국자들의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이 종전선언과 국제 제재 완화라는 북한의 목적에 동의하기 전에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실질적인 조치를 요구하면서, 모호한 약속의 이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는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김정은은 비핵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고 미국이 요구해 온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제안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김정은이 ‘비핵화’란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직접 밝힌 것은 처음인 만큼 의미가 있다는 평도 나왔다. NYT는 "김 위원장이 북한 수도 평양에서 전 세계를 향해 육성으로 비핵화 약속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기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영변 핵시설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는 영구적으로 폐쇄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북한이 북한 영토 어디에서든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고 했다. 이어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를 어떻게 진행할지 언급하지 않았며 "영변 핵시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명확하지 않고 조건부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이번 공동선언에서 북한이 보유한 우라늄 농축능력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빠져 있다고도 평했다. 매체는 "북한 비핵화 과정은 공동선언에 적힌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했다.

일본 언론에서도 합의 내용에 미국이 요구해 온 핵 시설의 신고, 검증 등 비해화와 관련한 새로운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또한 "북한이 다소 양보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이 종전선언을 할 정도의 양보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이번 평양 공동선언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평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공동선언은 시설 영구폐기에 대해 언급했지만, 어디까지 포함하는지 등 세부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며 "미국이 요구해 온 핵 목록 제출, 검증 등도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았고, 기자회견에서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도를 통해서는 "합의문에는 비핵화에 관한 두 가지 조치가 명기됐지만,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조건으로 달고 있다"며 "이는 북한이 요구해 온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소개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다음 주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가지는 만큼 미국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달리 북한이 외부 사찰단을 불러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폐쇄하겠다고 밝힌 점 등에 주목하며 이번 남북 공동선언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WSJ는 이와 같은 조치에 대해 "교착 상태에 빠진 미국과의 협상을 타개하고 한국과의 교류를 이어가기 위해 김정은이 내놓은 수"라며 "이번 발표는 3개월 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이어 2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의향을 밝힌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까 하는 새 희망을 불러일으켰다"고 평했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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