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안보리 긴급회의 소집해 러 제재 위반 맹공
헤일리 美대사 "北비핵화 아직 먼데 러, 제재 완화 요구"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철도 북한에 연결해 궁극적으로 한국의 국제항에 연결되고자”
비핵화 보다 앞서는 '남북경협'에 경고될 듯

유엔 안보리 회의(연합뉴스)
유엔 안보리 회의(연합뉴스)

미국은 17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 회의에서 러시아의 대북제재 완화 움직임을 강하게 압박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러시아가 대북제재를 조직적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 유류 제공과 선박 간 환적 등 제재 위반 행위를 하고도 이를 덮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유엔 안보리 회의장에서 미국과 공방을 벌였다.

헤일리 대사는 이날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이 완전한 비핵화로 향하는 길을 열었지만 우리는 아직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 아니다”며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강력하고 범세계적인 대북제재를 완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14일(현지시간) 미국은 러시아의 압력으로 대북제재를 감시하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의 보고서 내용 중 러시아의 제재 위반 부분이 삭제된 수정안이 나왔다며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안보리는 대북제재위 소속 전문가 패널이 작성한 보고서를 이달 초 채택할 계획이었지만 러시아가 자신들의 제재위반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보고서 채택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러시아의 압력으로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제재위반 부분이 삭제된 수정안이 나왔다면서 수정 보고서의 채택을 막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9월 안보리 순회 의장국을 맡은 미국이 '비확산과 북한'을 주제로 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제재위반 행위는 물론 제재 완화 주장에 대해 쐐기를 박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연합뉴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연합뉴스)

헤일리 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비핵화 달성에 아직 가까워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대북제재 위반 행위를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그는 ‘11번이나 대북제재에 찬성했던 러시아가 이제 와서 되돌아가려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한 뒤 “러시아가 속여 왔고, 이제 적발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의 대북 제재 위반 행위는 조직적으로 이뤄졌고 미국은 ‘거듭되고 광범위한 러시아의 위반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다.

헤일리 대사는 “러시아의 도움으로 북한은 불법적으로 정제품을 조달하고 있다”며 공해상에서 이뤄지는 선박 간 환적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러시아 선박 ‘패트리어트’호가 지난 4월 공해상에서 정제유를 북한이 운영하는 유엔 제재 대상 선박에 넘겨주는 장면이 촬영됐다”고 밝혔다. 또 “더 많은 선박들이 선박 간 환적방식으로 불법을 저질렀다는 증거 또한 갖고 있다”며 “올해에만 148건의 관련 사례를 추적했다”고 했다.

헤일리 대사는 “이를 통해 북한은 70만 배럴의 정제유를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며 “이는 2018년 허용된 상한선 50만 배럴의 160%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연 상한선의 4배에 도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대북제재위원회에 이와 관련해 제재 위반 증거를 제출했지만 러시아는 위원회가 북한의 정제유 상한선 초과 사실을 공식 발표하는 것을 막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신경화학무기인 VX에 의해 살해됐을 당시 미국은 유엔의 생화학무기 기술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했고 러시아도 이에 동의했지만 이후 12년 동안의 리스트를 업데이트하는 것에 대해 러시아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했다.

또한 러시아는 모스크바에서 무기 프로그램을 위한 돈벌이를 하고 있는 북한 국적자를 제재하기로 동의했지만 아직까지 추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북한 국적자가 모스크바 내 은행 계좌를 유지하는 것을 러시아가 돕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헤일리 대사는 최근 러시아가 유엔 전문가패널을 압박해 중간보고서 내용을 수정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는 분명히 제재 위반의 증거를 감춰달라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보고서 공개를 막겠다고 위협했다”며 “미국의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문가패널은 이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헤일리 대사는 러시아가 추진 중인 북한과의 철도 협력사업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그는 “당초 러시아는 북한과 추진하던 철도 프로젝트를 미국이 박은 것을 비난하기 위해 회의 소집을 요구했었다”며 “러시아는 자국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안보리에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러시아의 극동지방은 석탄을 포함해 일부 경제적 기회가 있기 때문에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러시아가 북한 라진항에 많은 돈을 들여 항구를 만들었다는 설명이었다.

헤일리 대사는 “안보리는 2016년 이후 5번이나 라진 항구를 통한 석탄 수출에 대해 제재 예외를 인정했다”며 “그러나 러시아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제재 완화를 요구했는데 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북한에 연결해 궁극적으로 한국의 국제항구에 닿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에 얼마나 수익을 가져다주는지에 관계없이 현 시점은 대북압박을 줄일 때가 아니다”며 “우리 모두가 동의한 대로 그 시점은 비핵화 이전이 아닌 비핵화와 함께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실리 네벤쟈 러시아 대사는 헤일리 대사의 이 같은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특히 최근 미북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원인을 미국에게 돌리면서 대미 압박 수위를 높였다.

네벤쟈 대사는 “현재 미북대화가 어려움에 처한 사실을 국제사회가 목격하고 있다”며 “21세기 외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요구에 대한 대가로 무엇이든 제공하지 않으면 합의에 이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핵 미사일 프로그램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실체가 없는 약속 아래 아무런 조건 없이 북한에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한다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비핵화 과정은 신뢰를 쌓는 조치와 함께 시작돼야 한다”며 평화협정을 체결해 종전에 이르는 것을 그런 조치의 한 가지 예로 들었다. 그는 “남북은 이 목표에 매우 근접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전문가패널에 압력을 가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문가패널은 객관성과 공명성의 원칙을 따라야 하지만 (중간) 보고서의 초안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문가패널은 패트리어트호는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했고 이 내용은 초안에 포함돼 있었다”며 “러시아 회사와 관련된 내용이 삭제됐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부록에서 자세한 내용이 지워진 것 외에 아무 변화도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러시아에서 북한 국적자가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미국에 추가 증거를 요청했지만 여전히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헤일리 대사는 추가 발언에서 “러시아가 부인하고, 혼란스럽게 만들며, 거짓말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나 영국에서 전직 러시아 스파이에 살해 시도를 했을 때 또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미국선거에 개입하려 했을 때에도 (러시아로부터) 같은 식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고 했다.

이어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불량하게 행동하는 것은 러시아의 새로운 문화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며 전문가패널 보고서의 원본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최근 제재 지속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안보리 회의와 관련해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오늘 북한에 대한 제재 및 러시아의 적극적인 제재 준수 약화 시도를 논의하기 위해 안보리 회의를 소집했다"면서 "전 세계적인 제재는 비핵화 달성을 위한 노력에 있어 필수적 부분"이라면서 제재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14일에도 기자회견을 통해 비핵화를 위해서는 제재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이행 관련 패널 보고서에 대한 '수정 압력' 논란이 빚어진 러시아를 강력하게 성토했다.

마차오쉬(馬朝旭) 유엔주재 중국 대사도 대북제재의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힘에 의존하는 것은 재앙적인 결과 외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밝혀 제재 거부감을 우회적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대북제재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간극이 갈수록 커지고, 대북제재 이완현상도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러시아는 그동안에도 대북제재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6월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 필요성을 담은 안보리 언론성명을 추진하다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또 미국은 지난 7월 북한이 안보리 제재 상한을 위반해 정제유를 밀수입했다면서 대북제재위가 북한에 대한 올해 추가 정제유 공급금지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6개월간 검토 시간을 달라면서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지난달에는 미국이 대북석유 불법 환적을 한 혐의로 러시아 기업과 해당 선박에 대한 안보리 제재를 시도했지만 러시아가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대북제재를 둘러싼 갈등 속에 북한이 유엔 제재를 지속해서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엔 로즈매리 디카를로 정무담당 차관은 이날 안보리 브리핑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일부 긍정적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유지, 개발하고 있다는 징후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에는 북한이 시리아, 예멘, 리비아 등에 불법 무기를 밀매한 사례가 적시돼 있다. 한 시리아 무기 밀수업자가 예멘 후티 반군에 탱크, 로켓추진수류탄(RPG), 탄도미사일 등 북한 무기를 구매하도록 중개했고, 수단에는 북한 대전차시스템 거래를 중개한 증거가 있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 선박의 도움으로 북한에 연료 수입이 급증했고, 감시를 피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석탄수송이 이뤄진 사례도 다수 파악됐다고 보고서는 적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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