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민=라스푸틴' 오역한 이철재, '美대사관 1분소등' 오보 유길용
美대사관이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평가했다?...탄핵여론 부추긴 오역
실제로는 미국 대사관이 직접 평가한 것이 아니라 '한국 루머'를 전한 것
美대사관, 이른바 촛불집회 '1분 소등' 동참?...사실 아닌 것으로 밝혀져
광화문 행사장 조명이 미국 대사관 창문에 반사되며 일어난 착시효과
美국무부 대변인의 '집회 옹호' 발언도 덧붙이며 '소등 동참' 신빙성 더해
실제로는 원론적인 '집회 지지' 발언...촛불집회 목적까지 동조한 것 아냐
미국조차 '비선실세 인지했다, 탄핵 찬성한다'는 인터넷여론 형성한 誤報
쏟아진 오보…그리고 사과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언론

박근혜 전(前)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한국 언론은 수많은 거짓과 왜곡, 선동과 선정적 기사및 논평을 쏟아냈다. 대다수 언론은 '분노 부추기기 경쟁'처럼 제대로 검증도 거치지 않고 의혹들을 앞다퉈 기정사실화하며 여론을 호도했다. 극히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보도내용에 대한 제대로 된 상호 감시와 견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 언론은 보도의 문제점이 드러난 뒤에도 보도 행태를 자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의혹들을 쏟아내는 모습이었다. 어차피 "박근혜가 잘못한 것은 맞지 않느냐"는 인식 아래 사실과 의혹을 구분하지도 않았다. 필요성도 못 느끼는 상황이었다. 중요한 오류나 허위 보도에 제대로 책임지거나 사과한 언론사는 찾기 힘들었다. 대다수 국민도 '탄핵 정변' 과정에서 '황색저널리즘'에 휘둘렸다. 

탄핵 정변 과정에서 쏟아진 '가짜뉴스'는 한 둘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앞으로 몇 차례 다루겠지만 오늘은 우선 미국 대사관이 최태민을 옛 러시아가 공산혁명에 의해 무너지는데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라스푸틴으로 평가했다는 식의 보도와 주한 미국 대사관이 소위 촛불집회 '1분 소등'에 동참했다는 보도를 다룬다. 모두 오보(誤報)로 밝혀진 두 기사는 중앙일보 이철재 기자와 유길용 기자(이하 경칭 생략)가 각각 보도했다. 이들 보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증폭시키거나, 미국및 국제적 시각에서도 박근혜 정부에 대한 한국내 반발을 지지한다는 식으로 악용된 보도다.

● 美대사관이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평가했다?...탄핵여론 부추긴 오역

중앙일보 이철재는 2016년 10월 27일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 2007년 미 대사관 외교전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하지만 국내 소문에 대해서 쓴 내용이 미국 대사관이 직접 최태민을 라스푸틴이라고 평가한 것처럼 오역(誤譯)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이와 같은 보도는 전후 설명 없이 <기밀 외교문서에서, 美대사관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라는 식의 제목으로 확산됐다. 이후 ‘최태민=라스푸틴’이라는 보도의 근거는 실상 한국 루머일뿐, 미국 대사관이 직접 평가한 것처럼 오해하도록 유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당시 야권(현 여권)측에서 이른바 '최순실 농단' 의혹을 집중적으로 문제제기하던 가운데, '미국이 최태민에 대해서 라스푸틴으로 평가했다'는 식의 중앙일보 보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에 앞서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대(代)에서부터 비선실세에 농락당하고 사이비주술에 홀린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생산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앙일보, 2016/10/27]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 2007년 미 대사관 외교전문(화면 캡처)

중앙일보는 “미국은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부친 최태민씨를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교전문은 해킹된 뒤 폭로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실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 대사관이 직접 평가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루머를 전한 것이었다.
 

▲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7년 당시 외교문서

 

-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7년 외교문서'에 대한 조화유 재미 작가(영어교재 저술가)의 번역

Park has also been forced to explain her own past, including her relationship some 35 years ago with a pastor, Choi Tae-min, whom her opponents characterize as a "Korean Rasputin," and how he controlled Park during her time in the Blue House when she was first lady after her mother's assassination.
박근혜는 상대후보측이 “한국의 라스푸틴”이라 규정지은 최태민 목사와 약 35년 전에 가진 관계, 그리고 모친 피살 후 그녀가 청와대에서 훠스틀 레이디 역할을 할 때 최목사가 그녀를 어떻게 컨트롤 했는가를 포함한 그녀의 과거사에 대해 해명할 것을 강요당해 왔다.

Perhaps even more damaging to her image as the maiden who sacrificed herself in the service of the nation upon the assassination of her mother, rumors are rife that the late pastor had complete control over Park's body and soul during her formative years and that his children accumulated enormous wealth as a result.
모친이 암살당한 후 국가를 위한 봉사에 자신을 희생한 처녀로서의 그녀의 이미지에 더욱 타격을 가한 것은 사망 전 최목사가 형성기의 박근혜 심신을 완전히 컨트롤했으며 그 결과 최목사의 자녀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파다한 소문들이다. 

재미(在美) 작가로 인기높은 영어교재 저술가인 조화유 칼럼니스트는 2016년 11월 1일 “중앙일보가 외부 주장이나 소문을 대사관 평가로 오해하게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별다른 설명 없이 문제의 '최태민=라스푸틴' 기사를 슬그머니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미주 중앙일보와 JTBC 링크만 남아있다.

한편 이는 과거부터 정치권에서 제기되던 루머였으며, '정윤회 국정농단' 프레임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많은 언론은 이와같은 표현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주장이나 감정적인 판단에 힘을 실어줬을 뿐 객관적인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 결과에 끼워맞추는 형국이었다.

● “美대사관이 촛불집회 지지한다”?...미국조차 탄핵 찬성한다는 인터넷여론 형성한 誤報

2016년 12월 4일, 주한 미국 대사관이 촛불집회 ‘1분 소등 행사’에 동참했다는 보도가 확산됐다. 해당 보도는 미국조차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탄핵을 지지하고 있다는 식으로 힘을 실어줬다. 이 보도는 오보로 밝혀지기 전까지 상당수 유력 매체들을 통해 확산되며 미국측에서도 탄핵이 정당하다고 보고 있다는 듯이 부풀려졌으며, 인터넷 일각에서는 이를 활용해 탄핵 분위기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광화문 앞 행사장에서 활용되던 조명이 불꺼진 대사관 창문에 반사되고 있다가, 조명이 꺼지자 대사관도 불이 꺼진 듯한 착시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1분 소등' 후 화면 캡처. 1분 소등 후에도 美대사관 건물에서 켜져있던 불빛은 변함이 없다.(사진=YTN 화면 캡처)
다른 각도에서 확인한 MBC '1분 소등' 생중계 화면.
1분 소등 전(왼쪽)과 소등 후(오른쪽) 사진에서 美대사관 건물의 불빛은 변동이 없다.(사진=MBC 화면 캡처)

JTBC와 중앙일보는 이같은 의혹의 진원지였다. JTBC는 2016년 12월 3일 오후 7시 진행된 이른바 '촛불집회 1분 소등'을 여타 매체들과 같이 생중계했다. 다만, JTBC의 생중계 장면에서는 다른 매체와는 달리 미국 대사관 건물에서도 불빛이 꺼지는 모습이 포착된다.

이 장면은 다음날 새벽 '美대사관도 촛불집회 1분 소등에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는 식으로 재조명됐다. 중앙일보 유길용은 2016년 12월 4일 새벽 3시 40분경, 인터넷판에 <美대사관도 촛불 지지?…'1분 소등' 동참 눈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3일 광화문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 중 1분 소등 행사에 주한미국대사관도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JTBC의 '3일자 집회 생중계' 영상 화면을 인용했으며, 미국 대사관의 촛불집회 동참 의혹을 제기한 첫 보도로 알려졌다.
 

[중앙일보, 2016/12/4] 美대사관도 촛불 지지?…'1분 소등' 동참 눈길(화면 캡처)

 

또 “바로 옆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환하게 불을 밝힌 것과 대비됐다”라며 대비된 장면을 부각했다. 중앙일보와 중앙일보 계열 종합편성채널인 JTBC는 이 내용을 보도하면서 “이 장면을 두고 누리꾼들은 '미국조차 박근혜 정권을 포기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고도 전했다. 

특히 해당보도는 "촛불집회를 지지한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이 나온 뒤여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며 미국이 촛불 시위를 지지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1분소등’에 참여한 것이 아니냐는 내용을 제시하며 미국 대사관의 촛불집회 동참에 신빙성을 더한다. 기자는 "커비 대변인은 또 '국민은 정부에 대해 그들의 우려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평화적 시위와 집회는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이라고 촛불집회를 옹호했다"고 부연한다.

그러나 유길용은 존 커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촛불집회의 의도 및 탄핵에 대해서 찬성하고 지지한다는 듯이 썼지만, 실제 의도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국민이 자신들의 정부에 대해 항의하는 평화적 집회를 할 수 있다'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입장을 밝힌 것에 더 가깝다.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자유롭게 평화 집회를 벌이는 행위 자체를 존중한다는 것이지, 촛불집회의 의미에 대해 지지한다는 것이 아닌 것이다. 동맹국으로서 원론적인 반응이었지만, '1분 촛불 소등'과 함께 배치함으로써 미국이 촛불집회 의미까지 동조한다는 듯이 몰아간 것이다. 앞서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2016년 11월 28일 정례브리핑에서 "평화적 시위와 집회에 관한 우리의 입장은 잘 알려져 있다"며 "전세계에서 계속 그런 것을 지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무부 존 커비 대변인 28일 실제 발언

You know where we stand on the right of peaceful protest and assembly and we support that around the world. People should have the ability to go out and voice their concerns about their government. (국민에게는 평화적 시위와 집회의 권리가 있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잘 아실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는 그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국민은 거리로 나가 정부에 대한 우려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Again, that's how democracy works. People have that right and ability to exercise theright. I think that's important.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런게 민주주의 작동방식이다. 국민에게는 그런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행사할 능력이 있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길용의 4일 보도는, 전날인 3일 'JTBC뉴스룸'에서 집회 현장 소식을 전했던 강버들 기자(이하 강버들)가 4일 다시 한번 'JTBC뉴스룸'에 출연해 기정사실화했다. 강버들은 "집회 끝 무렵인 저녁 7시에는 1분 간 소등 행사도 했는데, 세월호 7시간의 진상을 밝히자는 의미의 이 행사에는 미국 대사관도 동참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고 전했다. 
 

[JTBC, 2016/12/4] 평화로웠지만…임계점 향하는 시민들의 '억눌린 분노'(화면 캡처)

소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당시, 이 보도는 '촛불 여론'의 구미에 걸맞는 좋은 이야기거리였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이어 다른 신문사들도 지면이나 인터넷을 통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4일 인터넷판에서 “3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5차 촛불집회 중 1분 소등 행사에 주한 미국대사관도 참여했다고 외교 소식통이 4일 전했다.”라며 외교소식통의 이름을 빌리기도 했다. 많은 매체에서 의혹보도에 대해 확산시켰고 실제로 이 보도에 대해 일부 누리꾼은 ‘나라 망신이다’ ‘미국조차 촛불시위와 함께한다’라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보도양상 일부

미국 대사관도 촛불집회 참여했다?…오후 7시 소등행사에 사무실 불꺼 눈길 (경향신문 12/4)
미국 대사관도 ‘촛불집회’ 소등 행사 참여?…누리꾼 “미국 대사관도 빨갱이라고 해봐라”(스포츠경향, 12/4)
미국 대사관도 '1분 소등'에 참가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12/4)
美 대사관 소등…촛불집회 '1분 퍼포먼스' 동참 (MBN 12/4)
주한미대사관, '1분 소등' 동참했나…촛불집회서 소등 목격돼 (연합뉴스)
美대사관도 ‘1분 소등’ 동참 (국민일보)
[232만 촛불]‘전 국민 1분 소등’ 미 대사관도 동참 (경향신문)

그러나 주한 미국 대사관은 5일 이들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미 대사관의 부인 이후에도 자신들의 오보를 제대로 바로잡은 언론사는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 인터넷판에서 ‘미대사관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는 짧은 보도만 올라왔다. 국민 중에는 여전히 최초의 잘못된 보도가 사실인 것으로 믿는 사람도 적지 않다.

중앙일보는 전날 의혹보도(6면)에 비해 '미 대사관의 공식 부인 입장'은 초라한 위치인 간추린 뉴스(18면)에 간략히 보도했으며, 이조차 보도하지 않은 매체가 다수였다. 국민 여론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오보임이 드러났지만, 의혹보도를 냈던 언론들은 ‘아니었다고 한다’고 드라이하게 전달하는 게 전부였다. 자신들이 원하는 진실을 위해서라면 오보도, 실수도 무방하다는 왜곡된 인식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오히려 미국 대사관의 공식 부인 입장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으니 좀더 지켜봐야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해당 의혹의 발단이었던 JTBC의 경우, 5일 뉴스룸의 '[비하인드 뉴스] "탄핵 강행하면"?…이정현, 손에 장 지질까'에서 다시 한 번 미 대사관의 1분 소등 동참 논란을 다뤘다. 손석희 앵커는 소등 당시에 미국 대사관 건물 창문이 켜 있는게 확인됐다는 기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튼 오른쪽에는 맨 위가 여전히 꺼져 있습니다. 이거 다시 한 번 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라며 여전히 미국 대사관이 소등에 동참했을 가능성을 남겨놨다. 이어 JTBC는 주한미군 대사관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불을 끈 적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손석희 앵커는 "아무튼 지금 증거로 가지고 나온 화면에서 보면 오른쪽 맨 위는 여전히 꺼져 있단 말이죠. 여기도 왼쪽은 켜 있다가, 맨 위가 켜 있다 꺼졌고 이건 좀 확인해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오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없었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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