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애민(愛民)이란 말이 자주 들린다.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호치민이 살던 집을 방문하여 “호치민 주석님의 애민정신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라고 하였다. 호치민은 조선의 정약용이 지은 『목민심서』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 『목민심서』의 제4편이 애민이다. 거기서 정약용은 수령이 사랑으로 보살필 백성으로서 노인, 어린아이, 홀아비, 과부, 병자 등을 열거하였다. 혹자는 이 같은 정약용의 애민에서 오늘날 복지국가의 원류를 찾기도 한다. 그 정약용을 가르치고 아낀 임금이 정조이다. 정조 또한 애민에 충실하였다고 한다. 작
10년 전에 제기되어 그 세를 확산해 온 1919년 건국설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천박한 지성수준을 국제사회에 폭로하는 수치이다. 지난 칼럼에서 지적한 한 가지 이유는 이승만, 이동휘, 안창호, 김구 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역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그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힘겹게 투쟁하고 있다는 것 이상을 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원인 행위와 주체가 없는데 후대의 역사가와 정치가가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다. 임시정부의 조직과 행태를 새로
대한민국의 건국이 1919년 중국에서 결성된 대한민국임시정부부터라는 주장은 2008년 야당, 일부 학술단체, 광복회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이 주장은 마땅한 학술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지난 10년간 정치적 이해에 따라 확산되어 왔다. 마땅한 요건을 결여했다 함은 1919년에 새로운 나라가 건립되었음을 자신의 공적으로 주장하는 어떠한 정치세력도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2008년 야당과 일부 학술단체는 있지도 않은 원인 행위와 주체를 있었던 것인 양 역사를 조작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중국에서 귀국한 대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