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스턴 처칠의 경고“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윈스턴 처칠의 말입니다.앞으로 이 나라를 5년간 이끌어갈 대통령 선거일에 이처럼 무거운 발언을 소개해 드려 송구하옵니다. 온갖 범죄 의혹, 배신과 무속이 난무하고 여야, 군소 후보 가릴 것 없이 아르헨티나의 페론이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그리스의 파판드레우처럼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는 식의 포퓰리즘이 난무합니다. 이처럼 참혹한 정치 난동의 현실을 접하며 처칠의 발언은 이 나라 국민을 위해 미리 준비한 소름 끼치는 예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제20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종국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그 운동의 치열함을 지켜보면서 저는 이 나라가, 자유 한국이, 흥망을 가르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고 느낍니다. 국민의 선택이 잘 되면 이 나라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선진사회로 들어설 것이고, 잘못되면 전체주의의 지배를 받는 후진사회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비장한 느낌입니다.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거하는 제도는 1952년 7월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성립하였습니다. 당시 국회의 다수 석을 차지한 야당은 국민의 지지에 직접 제약을 받지 않는, 지배 정파가 권력을 차지하는,
#. 조선에 나타난 독일인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라는 35세 청년 독일인이 조선에 도착한 시기는 임오군란이 진압된 직후인 1882년 12월 9일이었다. 청나라가 묄렌도르프를 조선에 보낸 이유는 “청과 뜻이 통하는 서양 전문가를 조선에 보내 조선의 내·외정을 감시하고, 청의 지시를 받아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서양 전문가를 동원한 간접지배 전략이었다.고종은 묄렌도르프를 외아문 협판(현재의 외교부 차관급), 해관 총세무사에 임명했다. 이때부터 청나라는 묄렌도르프를 통해 조선의 내정과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