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이 허망하게 가버린 뒤 4개월이 흘렀다. 허망하다는 건 그를 지지했든 증오했든 대선 출마까지 준비하던 그가 갑작스레 죽음을 선택한 방식과 그 사유 때문이다. 박 시장은 떠나며 여러 가지 과제를 안겼다.첫 번째 과제는 당연히 공직사회의 권력형 성범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다. 여성존중특별시라는 이름으로 각종 친여성정책을 내놨던 당사자에 의해 벌어지고, 또 공무원 사회 특성상 그것이 엄폐되기가 너무나도 쉬웠다는 것이 비극의 맨얼굴이다.두 번째는 내년 4월의 재보궐 선거가 대선의 전초전 수준에서 미니대선 급으로 격상됐다는
기자는 최근 연해주·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들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정리 중이다. 만주벌판, 시베리아 동토를 누비며 조국 광복을 위해 혈투를 벌인 그들의 영웅스런 행동은 풍찬노숙, 고심혈통(苦心血痛)의 연속이었다. 독립운동에 투신한 민족지사들을 상징하는 단어 중에 이보다 더 적합한 용어가 있을까?하지만 한편에선 그 시대 사료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가슴 먹먹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사례들이 연속으로 발견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항일무장투쟁은 그 어떤 가치보다 드높은 권위를
최근 나는 어느 독자로부터 ‘더럽게 할 일 없는 기자’라는 지적을 받았다. 독자의 지적인 만큼,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급변하는 지구촌에서도 태평세월 한반도의 더럽게 심심한 기자’가 ‘더럽게 할 일이 없는’ 관계로 ‘더럽게’ 황당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때때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조선(대한제국)은 우리나라인가요?”이 질문도 그런 질문들 가운데 하나다. 이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당연한 질문을 어째서 하느냐는
경제학자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경험과 기억이 경제를 설명할 수 있다. 지난 10월 25일 작고한 이건희 회장의 업적을 통해 우리는 새삼 놀라는 것이 많다.필자가 대학생이던 1960년대에 일본의 경제식민지가 된다고 해서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데모에 참여했었다. 한국이 70~80년대 고도성장을 이룬 다음에도 삼성이 소니(SONY)를 능가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한국 대기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산업일꾼들의 노력과 희생을 저평가해서는 안 된다.한강의 기적은 20세기의 신화다. 독일이나 일본은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반(反)체제 작가’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그가 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나라 밖에서 소련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폭로한 거의 최초의 소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솔제니친은 전쟁이 끝난 후 소련군 포병 장교로 근무하던 중 친구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스탈린의 분별력을 의심하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가 발각돼 솔제니친은 1945년부터 1953년까지 8년 간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보냈고, 여기에 3년 간의 추방형도 선고받았다. 그는 자신이 실제 복무했던 카자
11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치른 후의 미국은 그야말로 혼돈이다. 아래의 대선 판세 차트가 미국의 현상황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친 바이든 성향의 CNN은 바이든 279, 트럼프 217이라고 표시해 놓고 있다. 숫자는 각 후보가 현재까지 확보한 선거인단 규모를 말한다.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 대통령은 유권자의 직접 투표가 아니라 주별로 선출된 선거인단의 투표로 뽑는다. 선거일인 11월 3일에 미국 유권자들은 대통령에 직접 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 그 대통령을 지지하는 선거인단에 투표를 한 것이다. 선거인단 규모는 주마다 다른데 50개주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박원순과 싸움이다.야권에서 '누가 후보로 나오느냐' 만큼 중요한 점은 '어떤 아젠다로 선거를 치르느냐'다. 고(故) 박원순 전(前) 서울시장은 단순히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한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좌파 시민운동의 야전사령관이었고, 지방정부에 새로운 시스템 이식한 장본인이었다. 이제 정치인 박원순은 없지만, 박원순식 정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박원순식 정치는 조직 방식과 정치적 방향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조직 방식에 관해 말하자면 '정치투쟁과 보급
전 세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질서를 털고 신대륙으로 나간 시민들이 자치적으로 세웠던 민주공화정의 모범 국가 미국이 선거와 관련하여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반목과 갈등, 분열 속에 있다.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넘도록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지 못하고 대규모 법정 소송에 따라 판가름이 날 수도 있는 이 상황의 본질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제도의 오염 여부에 대한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전 투표의 오염인데, 한 쪽에서는 이미 오염되었다고 보고 그 오염된 표를 제외한 표를 ‘합법적
지난주 미국 대선에서 정치적 양극화로 정파간의 극단적 대결로 치닫는 민주정의 위기를 확인하였다, 정치적 반대파를 적폐로 몰아 척결을 시도하는 한국의 정치 상황도 동일하다. 1990년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공산권의 몰락에 따른 자유민주정의 승리로 역사의 종말을 말했지만, 30년이 지난 오늘날 자유민주정은 혼란에 빠져 있다. 극단으로 갈려서 대립하는 정치적 양극화라는 현실은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로 설명된다.민주정의 진전에 따라 성별, 종족, 종교, 문화 정체성등의 정체성 그룹이 탄생하고 사회의 다원화는 정체성
민주당 바이든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트럼프의 패인인 무엇인가. 다음 서너 가지가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성공한 트럼프의 경제정책, 포용성 약한 서민정책 공약, 적절하게 대응 못한 코로나위기, 부통령러닝메이트의 선택이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왔다. 파격적인 감세와 규제완화 그리고 리쇼어링으로 요약되는 경제정책으로 미국은 2008년 9월부터 코로나위기가 미국경제를 타격하기 시작하기 전 2020년 2월까지 128개월 연속 호황을 기록해 미국경제사상 최장 호황을 기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현재 여전히 개표가 진행 중이고, 워낙 접전이 계속되고 있어 속단은 어렵지만,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가 예측한대로 바이든 후보의 당선 쪽에 무게가 실리는 추세이다. 다만, 누구의 승리가 이루어지든 우리가 과거에 보았던 미 대통령 선거 이후의 과정 즉 패자의 깨끗한 승복과 승자의 화합 메시지가 어우러지는 멋진 종결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개표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우편투표 개표 이후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하자 트럼프 후보 측에서는 선거의 관건을 쥔 일부 주에서의 개표에 의혹을 제기하였고, 또 개표중단과 우편
한국인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과거지향적이다. 한국인의 이같은 성향은 DNA에 뿌리박힌 것처럼 연원이 깊은 것이라고 하겠다. 6.25 침략전쟁을 '승리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며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 공산당에 대해서는 변변한 항의조자 못 하면서 과거의 제국주의 일본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일원(一員)인 일본에 대해서는 유독 강퍅하다. 이 나라에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보편화된 국제외교질서의 관념이 있는가? 아직도 역대 중국 왕조의 화이질서(華夷秩序) 안에서 '소중화'를 자처하고 있는 조선의 뿌리
2018년 제73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를 위한 관련국들의 조치들이 실행되면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북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병행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2020년 9월 22일 제75차 유엔총회에서 영상으로 발표한 기조연설에서는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했고,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이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으므로 비핵화와 무관하게
내내 이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조롱하고 비웃었다. 시장을 무시하고 앞일을 하나도 예측하지 않는 무모함 혹은 무식함이 참사를 불러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내 생각이 짧았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해도 이기는 게임이었다. 혹시라도 부동산 시장이 잡히면 정책 성공을 자랑하면 되는 거였고 ‘삑 사리’가 나면 부동산 가격이 올라 세수가 늘어나니 그 또한 싫을 게 없었다. 물론 말은 그렇게 안 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정책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마 말하고도 자기들도 안 믿었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은 공급으
지난 9월 초 방탄소년단(BTS)이 미국의 대표적 친한 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Korea Society)가 주는 밴플리트상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방탄소년단 대표는 미국은 6.25 전쟁 때 우리와 큰 시련을 함께 극복한 혈맹이었음을 상기시키는 말을 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인사말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이에 발끈하고 나섰다. 자기들의 ‘항미원조(抗米援朝)’를 무시하고 미국을 치켜세웠다는 것이다. 곧 이어 중국의 한국전 개입 70주년을 맞으면서 시진핑 주석부터 일반 언론 기관에 이르기까지 ‘항미원조’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내년 4월 7일에는 서울특별시장과 부산광역시장 등 2개의 광역자치단체장과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의 재보궐 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번 재보궐 선거의 초점은 당연히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이다.보궐선거에서 뽑힌 서울 및 부산 시장의 임기는 1년 반 정도이다. 하지만 짧은 임기에 비해 정치적 의미는 매우 크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광역단체장의 보궐선거 결과가 1년 뒤 대통령 선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모두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장의 문제가 원인이다. 시민
한국사회를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연예계와 스포츠 스타에게 열광하면서 그보다 더 치열하고 불가역적인 상업세계에서 분투하고 있는 기업인에게는 공감이 없는 사회이다. 기업은 국가와 국민이 다 키워줬고 수출은 당연히 되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다. 기업 경영을 ‘금수저’ 물고 나온 사람들이 자기 재산 지키는 정도로 여기는 사회, 기업인이 사망하면 상속세로 그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라고 윽박지르는 사회가 우리의 얼굴이다.이건희는 누구인가? 직설과 은유, 눌변과 열변, 은둔과 절대적 존재감, 온유와 격정. 도저히 양립될 수 없는 단어의 조합을
10월은 (살짝 오버해서) 박정희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유신과 10.26일 서거일, 그리고 11월 14일 그의 생일까지. 유난히 빨리 다가온 찬바람을 스산하게 느끼며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반추해 본다. 100년도 안 되는 한국정치사에서 박정희라는 인물은 그를 옹호하는 전통주의자들과 그를 극렬하게 비판하는 수정주의자들의 끝나지 않는 대립 의제다. 그만큼 박정희가 한국사에 남긴 족적이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크다는 이야기다. 누구는 박정희의 만주군 이력을 갖고 뼛속가지 친일파라고 한다. 이 주장은 2015년 박근혜
기(起) : 항일무장투쟁의 3대 승첩, 왜 1920년에 일어났을까?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만주 북간도에서는 우리의 용맹한 항일 전사들이 5,000명의 일본군 정규군을 상대로 청산리 일대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쳐 압승을 거두었다고 알려진 청산리대첩의 웅대한 승전보가 울렸다.1920년대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우리 무장 독립군이 기록한 항일무장투쟁의 3대 승첩으로 꼽히는 것이 니콜라예프스크(니항·尼港) 탈환전투(1920년 3월), 봉오동전투(1920년 6월), 청산리전투(1920년 10월)다. 일정을 추적해 보면 1920년에 3대 승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그 가족들이 심각한 비리를 저지르고 상식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서도 이리저리 구멍난 곳을 막으려 구차한 변명을 둘러대고 있다. 심지어 그들을 옹호한답시고 또 다른 유력 인사들이 되지도 않는 ‘막말 릴레이’를 줄지어 펼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 절반 가까이는 그들을 지지한다. 그들이 잘못하고 있음을 아는 지지자들도 있는 듯하다. 그래도 지지를 거두지 않는다. 그 가장 큰 명분은 “전(前) 정권 사람들은 더 했다”라는 근거 없는 비교다.설사 전 정권 사람들이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 해도 그것을 이유로 부정(不正)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