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미군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모기도, 지긋지긋한 더위도, 칼을 물고 달려드는 베트콩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마음 속 연인이었던 한 미국 여배우가 베트남까지 날아와 미국 비행기를 격추하는데 사용했을 대공포 위에 북베트남 군대와 함께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들의 동료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북베트남 군인들과 시시덕대며 장난까지 치고 있었는데 이는 미군들에게 절망감을 넘어 공포심까지 안겨주었다. 나는 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여기서 낯선 동양인들과 싸우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중국 정부는 지난 8월 말 새로운 공식 ‘표준지도’를 발표하여, 남중국해에 10개의 선(10단선)을 그었다. 10단선에 따라 남중국해의 약 90%가 중국의 영해로 명시됐다. 이에 따라, 관련국가들인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은 곧바로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11월 말에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중국에게 자국의 영해를 1인치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중국과 정면 충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남중국해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중국이 남중국해문제에 공세적으로 나갔음에도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대남혁명전술은 통일전선(統一戰線)이다. 통일전선이란 공산혁명의 주적을 타도하는데 공산세력의 힘만 가지고 불가능할 때 비(非)공산세력을 포함하여 필요한 동조세력을 획득하고 그들과 일시적인 동맹체를 형성하여 투쟁하는 전술이다. 특히 주적 타도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제휴했던 비공산세력을 모두 고립화시켜 제거하는 것이 통일전선의 악랄함이다. 이른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공산혁명판이다.통일전선은 1921년 개최된 제3차 코민테른(국제공산당)대회에서 공식 채택되었고 1935년 제7차 코민테른대회에서 ‘디미트로프 테제’
동아시아 근대사 중 왜 일본이 솔선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이는 오늘날까지도 매력있는 연구과제이다. 흔히 일본의 성공을 졸속히 서양을 따라배우는데 누구보다 아선 '원숭이 흉내'라고 감성적 인식으로 일축하려 한다.이런 인식 자체에 큰 결함이 있다. 여기에는 왜 일본만이 성공할 수 있었고 그 이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지 하는 원인, 배경 규명이 감성적 인식으로 대신해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민족적, 감성적 인식으로 편향돼, 사실 한국, 중국의 일본연구, 인식은 방대한 연구시설과 인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성적, 정서적 내지 정
필자가 개인적으로 무척 혐오스러워하는 논리가 있다.‘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고? 그게 조선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나? 다 일본제국주의가 자신들의 조선 지배를 견고하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한 것 아닌가? 그러니 높게 평가해줄 이유가 전혀 없다.’일제시대에 대한 토론이 좀 진척되면 자주 나오는 주장이다. 그럴 때마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의 지적 수준을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나마 좀 배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제시대에 대해 갖추고 있는 방어 논리 즉 일종의 방탄조끼 같은 것이지만 이런 논리 구조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최근
친구들에게 때때로 질문해본다. 대한민국 오늘의 번영을 1960년대 대학생 시절 예상했었느냐고. 그랬다고 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10년 후 마이카 시대가 온다고 말했을 때 뜬금없는 헛소리라고 비웃었었다. 그 당시 이어령의 수필집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대학생들에게 베스트셀러였다. 책의 요지는 ‘한국인은 무능해서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였다. 소위 엽전(葉錢)이라고 자조하는 한국인들은 색깔 감각마저도 없어서 흰옷만 입기 때문에 백의(白衣)민족이라 불렸고, 그래서 일본 순사가 일부러 먹물을 뿌려댔다고
#. ‘홍익인간’은 고조선의 교육 목표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인 1968년 12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을 반포했다. 철학자 박종홍 등 당대의 석학 60여 명이 문안 작성 참여하여 총 393자로 구성된 국민교육헌장을 박 대통령의 목소리를 통해 국민에게 발표한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이란 우리나라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이념과 근본 목표를 세우고, 민족중흥의 새 역사를 창조할 것을 밝힌 교육지표다. 해방 후부터 1968년에 이르기까
개화파 엘리트 김옥균 등이 주도한 1884년 갑신혁명(갑신정변)은 결국 3일천하로 실패로 돌아갔다. 김옥균을 필두로 한 개화파는 갑신혁명을 통해 혁명정부를 수립하고 14항목에 달하는 정치강령을 발표했다.그 주요내용은 청국으로부터의 독립자주, 신분제도의 폐지, 인민평등의 권리, 조세제도의 개혁, 경찰제도의 신설, 행정기구의 개편 등 근대화 개혁, 근대국가의 창설에 위한 요긴한 조치들이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한 군주입헌제 국가를 지향했다.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미 청국이 세계정세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별 개혁을 보이지 못
O 주술(呪術)이 현실을 지배한 망국적 굿판, ‘탈원전’ 영화 속 상상력이 정책의 옷을 입고 현실 세계를 지배한다면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자력 발전의 대재앙을 그린 영화 ‘판도라’가 탈(脫)원전 논의의 기폭제가 됐다는 당시 풍설을 믿고 싶지는 않다. 사실이라면 한국사회의 지력(知力)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원자력 발전의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면 원자력의 ‘안전기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적 논의를 진행시키면 된다. 느닷없는 탈원전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에너지 정책은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
본지는 지난 10월 21일자 칼럼면에 라는 제목으로 KBS 정연주 사장 시절 KBS가 150명 특채를 통해 진보/좌파 성향 매체의 직원을 대규모로 채용하여 인적카르텔을 구성하였다고 주장, 보도 하였습니다.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정연주 사장 시절 경력직으로 채용된 인원은 50여 명으로써 이들은 특채가 아닌 공개채용으로 지역신문 및 방송을 포함한 진보/보수 등 다양한 매체에서 채용되었다"고 밝혀왔습니다.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11월 21일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전후한 북한의 움직임은 조밀하게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펼쳐진 한 편의 '기만·기습·선전' 드라마였다. 지난 5월과 8월에 정찰위성을 발사했다가 실패했던 북한이 11월 22일부터 12월 1일 사이에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일본 해상보안청에 알려준 것은 11월 21일이었다. 서해 2곳, 필리핀 동쪽 태평상 1곳 등 낙하물 추락 예상 구역 세 곳도 알려주었다. 그래놓고는 스스로 예고한 발사 기간을 어기고 발표 당일인 21일 밤에 발사를 강행했다.낙하물 추락 예상 지점을 항행하는 선박들의 안전은 안중
노란봉투법이란 무엇인가?‘노란봉투법’이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일부 개정안을 가리킨다. 이런 식으로 특정 법률의 일부 개정에 대해 별도의 명칭을 붙이는 예는 드물지 않다. 예컨대 「국회법」의 일부 개정에 대해 ‘국회선진화법’이라고 지칭한 예도 있고,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의 일부 개정에 대해 ‘대북전단금지법’이라고 불렀던 것도 그러하다.‘노란봉투법’이라는 명칭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 2014년 쌍용차 파업 노동자에게 47억의 손해배상이 청구되고, 법원이 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지면서, 한 시민이 4만 7천원을
이재명 방탄 국회에 놀아난 21대 국회이재명 방탄 국회로 일관한 21대 국회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야당은 22대에서 200석을 바라본다고 허풍을 떨고 있고, 여당은 내부 총질을 즐기는 못난 자들이 선거를 앞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300명의 21대 국회의원 중 국가와 나라를 위해 제대로 된 법을 만든 사람은 정말 몇 되지 않아 보인다. 법은 한번 만들면 쉽게 고치기도 힘들고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돈 찍어 내듯 법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질(質)보다는 양(量)으로 승부를 거는 의원입법에 대한민국의 선악의 경계
현재 대한민국에는 통일론이 없다. 물론 헌법에는 ‘평화통일’이 실현해야 할 목표로 명시되어 있고 좀더 구체화된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란 것이 있다. 문제는 이 통일 방안이 비현실적인 명분론에 불과하고 진정한 통일 방안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1994년 8월 15일 김영삼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제시한 방안으로 탈냉전과 남북 체제경쟁의 종결, 1992년 2월 19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을 반영한 것이다. 통일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 군사정권 30년은 예외의 시대지난 11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문민화와 민주화의 허상과 실상’이란 세미나가 열렸다. 주최 측에서 필자에게 요청한 발제 주제는 ‘문민화 30년,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였다.이날 필자는 박정희(18년)+전두환(7년)+노태우(5년) 합계 30년의 군사정권 기간은 한국 역사에서 예외의 시대였다는 사실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실 이런 해석은 필자만의 견해가 아니라 일본의 한국 정치 전문가 다나카 아키라(田中明)의 견해이기도 했다. 다나카 아키라는 『한국 정치를 투시한다』라는 저서에서 한민족
예술의 세계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같은 건 없다. 촌구석에서 독학으로 피아노를 쳤든 어릴 적부터 대학교수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든 일단 콩쿠르에 나가면 심사위원들에게는 그거야 나 알 바 아니고다. 잘 치면 1등 못 치면 탈락, 이유 불문 무조건 잘 치는 게 갑이다.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저는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호소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그건 댁의 사정이고요, 하는 냉소 혹은 조소의 시선이다.britain's got talent에 나왔던 폴 포츠와 수잔 보일을 기억하시는가. 그들의 조건과 외모는 감동을 증폭시켰을
중국 정부는 지난 10월 중순에 북경에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개최했다. 이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세계 경제·군사 영토 확장사업인 일대일로사업의 10주년을 맞아 개최한 것이다. 이 포럼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10년간 일대일로사업이 역사적인 성과를 거뒀고, 150개 이상의 국가에 혜택을 제공하여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제협력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했다.다만, 일대일로사업은 현재 흔들리고 있다. 그간 이 사업에 참여하여 중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왔던 많은 후진국들이 디폴트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 포럼에 참석
구체적인 내용까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강준만의 에는 주목할만한 에피소드가 소개된다.여순 사건 당시 현지의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이 살벌했다. 반란군과 진압군이 교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일도 많았다. 국군이 현지에 진주해 이적분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고문과 구타, 인권 유린 사례가 빈발했다. 이때 현지의 이장 한 사람이 진압군 본부를 찾아가 “억울한 피해 사례가 많으니 좀더 신중하게 조사해줬으면 한다”는, 일종의 민원을 전달했다.살벌한 분위기에서 이런 민원이 먹혀들 리 없었다.
70년간의 바빌론 유수를 마치고 일부 유대인들은 본토로 귀환했지만, 상당수는 자의든 타의든 현지에 남거나 다른 이방 지역으로 흩어졌다. 디아스포라(diaspora)의 원류다. 유럽 도시의 게토(빈민가)에서 억눌려 지내던 유대인은 나치에 의해 더욱 심한 핍박을 받았고, 6백만 명이나 독가스로 집단살해 당하기도 하였다. 지구상의 인류는 기후, 환경, 전쟁과 같은 원인으로 집단적 이동을 해왔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든 땅을 버리고 유랑의 길에 오른 경우도 많았다. 재외동포가 많은 민족으로는 유대인을 꼽지만, 중국의 화교는 5천만
#. 리커창 전 총리의 죽음중국 경제를 시장 주도로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리커창(李克强) 전 중국 총리가 총리 자리에서 밀려난 지 지난 10월 27일 사망했다. 발표에 의하면 그의 사인(死因)은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가 왔다는 것이다. SNS에 건강한 모습이 공개된 지 한 달만에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전역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1당 독재에서 시진핑 1인 독재로 변이하면서 철권통치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시진핑에게 밀려 야인 신세가 된 리커창이 의문의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까지 중국에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