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최대의 기근 (2): "정치가 인민을 굶겨죽이다!"[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8回. “人類史 最大의 饑饉”(2) 대약진은 대기근으로 귀결되었다. 1958년-1962년 중국 전역에서 3천6백만에서 4천5백만 명이 아사(餓死)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야만 했을까?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의 와중에 대체 중공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했던가?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Amartia Sen, 1933)은 “언론의 자유가 있는 민주국가에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한 사례는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7회. “人類史 最大의 饑饉” 1.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지금껏 “문혁춘추”에선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정 및 1950년대 사회주의 건설과정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대약진운동(1958-1962)에서 문화대혁명(1966-1976)까지 18년간 중국 전역을 휩쓸었던 혁명의 노도(怒濤)와 광풍(狂風)을 돌아본다. 그 시기 중국의 역사는 무지와 망상, 광기와 폭력, 배신과 반역의 연속이었다. 과연 왜 중국인들은 그토록 참혹한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을까? 대약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6回. “江물과 人間의 鬪爭” (2) 1. 댐이 무너지다 1975년 8월 5일부터 7일까지 사흘에 걸쳐 하남성 주마점시를 강타한 태풍은 1천 밀리미터가 넘는 폭우를 쏟아 부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빗줄기는 흡사 소방관의 호수에서 쏟아지는 소화액과도 같았고, 그 빗줄기에 맞은 새떼들이 화살처럼 땅바닥에 내리꽂힐 정도였다. 남반구 호주의 기류와 남태평양의 기류가 충돌해 일으키는 태풍은 일반적으로 중국 동남부지역을 지역을 때리면서 약해지지만, 그해 여름의 태풍은 돌연히 북상해 장강과 중원지역을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5회. “江물과 人間의 鬪爭” 1. 회하유역의 슬픈 역사 1975년 8월 태풍이 하남(河南, Henan)성 주마점(駐馬店, Zhumadian)시를 강타했다. 광풍이 몰아치면서 하늘 뚫린 듯 단 사흘 만에 530밀리미터의 폭우가 쏟아졌다. 높이 116.34미터의 판교댐은 저수지를 가득 채운 5,083입방미터의 물을 막고 있었다. 한계치를 훨씬 웃도는 양이었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판교댐의 수문은 1천에 한 번 일어날 확률의 큰 홍수를 대비해 설계되었지만, 판교댐은 급속한 방류 과정에서 무력하게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4回. “붉은 鬪士냐, 專門家냐?” 1. 붉은 투사의 무능 유가경전 에는 상고시대 성왕(聖王)들의 권력승계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다. 문명(文明)을 개창한 요(堯)는 퇴위를 앞두고 덕망이 높아 널리 존경 받는 순(舜)을 후계자로 선택한다. 50년 포용의 덕치(德治)를 실현한 순은 수리(水利) 사업의 영웅 우(禹)에게 후계자로 왕좌를 물려준다. 훗날 덕성이 남달랐던 순은 도덕군주의 심벌이 되었고, 기술관료 출신 우는 전문적인 국가경영의 아이콘이 되었다. 모름지기 한 국가의 지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3回. "참새大虐殺 寸劇" 한국어에서 몽상은 주로 '헛된 생각'을 뜻하지만, 현대중국어에서 “몽상(夢想)”은 긍정적 의미로 쓰인다. 일례로 2017년 10월 제8차 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 습근평(習近平,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부흥이야말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몽상"이라 말한 바 있다. 중국어에선 미래적 희망과 이상을 뜻하는 "몽상"이라는 멋진 단어가 왜 한국어에선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되었을까?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의 실현을 지향하지만, 자본주의는 현실의 한계를 수용하기 때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2回. “當身들의 民族主義” 1. 대체 민족주의란 무엇? 이쯤에서 민족주의의 문제를 짚어볼까 한다. 지난 150년 간 민족주의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주요국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중요한 정치이념이었다. 일본 “천황” 히로히토(裕仁, 1901-1989)의 군국팽창주의, 손문(孫文, 1866-1925, Sun Wen)의 삼민주의(三民主義), 장개석(蔣介石, 1887-1975)의 유학사상, 모택동의 “인민독재” 대중노선, 김일성(金日成, 1912-1994)의 전체주의 “주체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1回. “自由人의 亡命” 1. “아, 천안문,” 어느 서글픈 추모회 지난 주 월요일 (2018년 6월 4일) 홍콩의 빅토리아 공원에 10만을 웃도는 대규모 시위군중이 모였다. 백발성성한 노인, 중년부인, 대학생, 어린이들까지 함께 모여 손에 촛불을 들고 29년 전 북경 천안문 대학살의 진상규명을 외치며 중공정부의 일당독재를 규탄했다. 오늘날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한 중국 대륙의 어느 도시에서도 그 같은 추모 집회는 허용되지 않는다. 대학가의 공개토론도 열릴 수 없었으며, 천안문 사태를 조명하는 신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0回. “中央書記處의 秘密” 1. “먼저 쓰라고 해놓고선······.” 중국의 백화제방운동(1957)과 반우파(反右派)운동(1957-1958)을 생각하면 뇌리에 겹쳐지는 학창 시절의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1985년 서울 서북지역 한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났던 일. 30대 중반의 한 미술교사가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빈 종이에 이 선생님에 대한 불만과 건의사항을 자유롭게 써라!” 뜻밖의 요구에 어리둥절해진 학생들을 향해 교사가 거듭 말했다. “뭐라고 써도 좋으니 깨알같이 너희들의 생각을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9회. “빅브라더의 精神世界” 20세기 세계사에서 인간평등을 모토로 삼은 대부분의 공산주의 정권들은 일인독재와 인격숭배의 디스토피아(dystopia)로 귀결되고 말았다. 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수백, 수천만, 혹은 10억 이상의 인간집단이 단 한 명의 영도자를 그토록 흠모하고, 추종하고, 숭배하게 되는 걸까? 영웅적 카리스마 때문일까? 매스미디아의 선전선동 때문일까? 계급투쟁, 인민해방, 민족주의 등등의 이념들 때문일까? 세뇌교육 때문일까? 감시와 처벌 때문일까? 억압과 통제 때문일까? 대체 그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8회. “百花齊放, 右派사냥” 1. 못 다 핀 꽃송이들 1957년 4월 말부터 6월초까지 중국 전역에서 들불처럼 이른바 “백화제방(百花齊放)운동”이 일어났다. 백화제방이란,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모두 활짝 피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경쟁하던 춘추전국시대(기원전 8세기-3세기)의 “백가쟁명(百家爭鳴)”과 짝을 이루는 성어(成語)이다. 1956년 소련의 흐루쇼프(1894-1971)가 탈(脫)스탈린 운동을 전개한다. 이어서 폴란드와 헝가리에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소련군은 탱크를 몰
* "현대중국의 슬픈 역사"를 보다 더 깊이 살펴 보기 위해 이번 주에는 2004년 중국 절강성 금화지방에서 제가 만났던 한 중공군 참전병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7回. "어느 中共軍 이야기 2004년 여름, 나는 중국지방사 연구팀에 합류해 중국 절강성 금화(金華)에서 한 달쯤 지방 탐사의 기회를 얻었다. 금화는 남송 (1127-1279) 말엽 이래 성리학을 숭상해 “소추로(小鄒魯)”라 불리는 고장이었다.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을 도와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6回. “文字獄: 그물 치고 떡밥 뿌리고” (2) 1. "文化侵略”이란? 몇 년 전 상해의 한 국제학회에서 목격한 한 장면. 네덜란드 외교관 출신 패널리스트가 중국의 인권문제에 관해 언급하자 방청객 한 명이 매섭게 질문했다. “서방 시각으로 중국인의 인권을 거론한다면, 그 자체가 문화침략이 아닙니까?” 송곳처럼 날선 질문에 패널리스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인권이란 모든 인간에 적용되는 보편적 개념입니다.” 방청객은 따져 물었다. “각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고 인민의 체험이 다른데, 일방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5回. "거지와 求乞의 智慧"* 독자분들께, 이번 회는 비참하고 무거운 역사 대신 경쾌(?)한 이야기 한토막 드립니다. 14회에 이은 "문자옥: 낙인찍고 재갈물리고"(2)는 조만간 게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몇 년 전 1920-30년대 상해의 거지들을 연구한 미국 조지아텍 (Georgia Tech) 한차오 루교수의 논문을 한 편 읽었다. 루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동경과 뉴델리를 제치고 아시아 최고의 근대도시로 급성장했던 상해는 중국의 전역에서 몰려 온 ‘표류민(=流民)’들과 ‘부랑인(=游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4回. “文字獄: 낙인찍고 재갈물리고” (1) 1. 혁명과 反혁명 지난 회에 소개했던 모우식(茅于軾) 선생은 과연 무엇 때문에 홀로 80대 후반 노구(老軀)를 이끌고 모택동을 비판하며 중공정부에 항거하고 있을까? 아니, 왜 오늘날 중국에선 더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억압에 결연히 맞서 투쟁하지 못하는 것일까? 중국내 관변 이데올로그나 친중 성향의 학자들이 주장하듯, 중공정부의 유능한 협치(協治, governance) 능력 때문일까? 아니면, 중국에 비판적인 외국학자들이나 중국내 소수의 반체제 지식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3回. "毛澤東神話批判" 1. “신성(神聖) 모택동” 오늘날 중국은 모택동의 나라다. 자금성(紫禁城) 천안문 앞엔 1949년 10월 이래 줄곧 모택동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옛날 중화문(中華門)이 있던 천안문 광장의 중앙에는 모택동의 시신이 안치된 거대한 모택동기념관(毛澤東紀念館)이 들어서 있다. 중국 전역의 어느 대학을 가도 캠퍼스 중앙에는 그의 동상이 우뚝 세워져 있다. 전국의 소학교 모든 교실에도 그가 직접 쓴 “好好學習, 天天向上!”(잘 배우고 익혀서 날마다 쭉쭉 자라자!)”라는 문구의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역사] 12回. “中國의 인텔리들, 어쩌다 自由를 잃었나?” 1. 중공정부가 외치는 자유와 민주란? 오늘날 중국 전역에선 2012년 12월 중공 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채택된 24자 12단어의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흔히 볼 수 있다. 공공게시판, 건물벽, 관공서, 대학교정, 호텔로비, 택시계수기, 심지어는 화장실벽에도 어김없이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이 적혀 있다. 국가의 목표로서 “부강, 민주, 문명(文明), 화해(和諧),” 사회적 지향으로서 “자유, 평등, 공정, 법치,” 공민(公民)의 덕목으로서 “애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1回. “빼앗긴 民國의 꿈, 改憲에 부쳐" 1. 사회주의 군주제? 철학의 빈곤 지난 3월 11일 중국에선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2980명 중 2964명이 표결에 참여했다. 그 중 찬성 2958명, 반대 2표, 기권 3표, 무효 1표의 거의 만장일치(99.8프로) 찬성으로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모두 21개의 수정 조항 중 11개는 반부패 운동을 주도할 국가감찰위원회를 정부 내 막강한 독립조직으로 정립하는 절차이다. 나머지 10개 조항은 습근평(習近平, 시진핑) 개인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규정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0回. “反外勢 孤立主義의 어리석음” 1. 백년국치(百年國恥)내겐 1995년 여름 하얼빈 공업대학 교정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20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산동 출신의 오랜 친구가 한 명 있다. 고교시절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그는 현재 심천(深川)의 공업단지에서 풍력발전 사업으로 꽤나 성공한 벤처 사업가로 활약하고 있다. 몇 년 전 홍콩의 학회 참석 차 심천에 들러 오랜만에 회포를 풀 때, 그는 내게 직접 써서 블로그에 올린 오언절구(五言絶句) 한 수를 보여주었다. 이 몸은 티끌처럼 작지만 (我身本尘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9回. “나는 皇帝로소이다 ” 1. 모택동사상의 부활 최근 중국공산당은 1982년 개정헌법에 명기된 5년 중임의 임기 규정을 파기하고 습근평(習近平, 시진핑) 주석에게 종신집권의 길을 터줬다. 등소평 지도 아래 채택된 5년 중임 임기규정은 실상 모택동식 일인지배를 막기 위한 헌법상 안전장치였다. 등소평 지배 이후 거의 30년 유지된 중국 특유의 집단지도체제가 이제 안전장치를 상실한 채 바야흐로 일인지배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홍콩 자유언론(Hong Kong Free Press)은 공산당의 그 결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