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의 몇몇 기적 중 하나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었다. 메이지 유신 후 입헌민주제를 택한 일본의 초대 총리는 이토 히로부미였다. 일본 체제에 맞는 정치체제를 고민하고 있을 때 군주가 권력을 장악하는 체제를 이토에게 가르쳐 준 것은 프러시아 국법학자 로렌츠 폰 쉬타인이다. 천황을 옹위하는 체제를 찾던 이토는 여기에 정착했다. 그 후 이를 가르쳐 준 독일이나 그걸 배운 일본은 절대 제국을 지향하다 몰락한 후에야 자유민주국가로 정착했다.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르쳐 심어준 것은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정책분석론의 “3종 오류”(Type-Ⅲ error)란 해결해야 할 정책문제를 잘못 정의한 뒤엔 그럴싸한 정책대안들을 아무리 잘 선택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며칠 전 정부가 발표한 청년일자리 대책은 자본에 대한 증오는 본능이고, 일자리 만들기에는 무능인 정부가 보여준 3종 오류의 표본이었다. 동시에, 잘못된 이념에 선 정권이 만드는 정책 능력의 끝을 보여 준다.그 골간은 중소기업이 ‘청년’ 실업자를 고용할 경우 세금으로 연 1천만 원 정도의 소득을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기업을 열망하느라 실업 상태에 머물러 있는 청년
인간이 종(種)의 증식을 넘어 자아의 성숙까지 추구하게 된 것은 산업혁명을 통해 물질적 생활이 상당히 향상된 이후부터이다. 인간 성숙의 지향 내용 및 실현 방법은 개인의 자유가 선택한다. 인간의 성숙은 국가를 통해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국가는 궁극적으로 폭력을 통해 일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런저런 일, 딴에는 선량한 일조차, 적극적으로 행하는 자체가 곧 누군가의 자유를 열심히 침해함을 수반한다.이것이 주는 함의는 개인에게 최대의 자유를 주고, 국가는 가장 외곽의 테두리에서 개인들의 상호작용의 집합 곧 시장 질서를 외
2차 대전 중 나타난 프랑스 비시(Vichy) 정부의 공식 이름은 ‘프랑스 국’이며 나름 프랑스를 대표하는 공식 정부였다. 이에 맞서 영국에서 세워진 드골의 망명 정부도 초기엔 일부 국가의 지지를 받았을 뿐 미국과 소련마저 상당 기간 비시 정부를 프랑스의 합법정부로 인정했다. 이 괴뢰 정권은 나치의 강포에 굴복하고 자국 수호에 수반되는 책무를 평화주의란 이름으로 회피했던 필리프 페탱 및 그에 호응하는 다수 군중의 합작품이었다.국가권력 책임성 실종의 상징과도 같은 이 정권의 행태는 기이했다. 히틀러의 군사력을 직감한 비시정부의 언론인
행정부가 거대 국가관료제를 토대로 명목상의 권력분립을 넘어 서는 시기는 1887년 우드로 윌슨의 ‘행정의 연구’가 나온 1887년 즈음으로 본다. 그 해 최초로 설립된 주간통상위원회(ICC: Interstate Commerce Commission)는 우리의 공정거래위에 근사한 소위 독립규제위원회의 남상인데 국가가 시장경제에 개입하는 상징으로도 해석된다. 정부가 개인과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자로 나선 것은 20세기 초반 및 대공황을 이유로 적극 간섭에 나선 시기이다. 이 때 개인의 자유 및 시장경제에 대한 규제의 두 주역으로 과용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