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호넨(法然: 1133년-1212년)사이초(最澄)의 타종파에 대한 관용적 태도, 엔닌(圓仁)이 10년 가까이 당나라에서 체류하면서 수집해 온 각종 불교 관련 서적들은 히에이 산(比叡山)의 엔랴쿠지(延曆寺)를 일본 불교의 중심지로 만들었다.호넨이 9살 때 그의 아버지가 토지 관련 분쟁에 휘말려 자객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임종 전에 복수를 하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유언을 남긴다. 승려의 길을 택한 호넨은 불교수학의 최고 명소였던 엔랴쿠지로 가서 공부하기 시작했고 1147년 교겐(行玄)을 계사로 하여 엔랴쿠지 소속의 관승(官僧)이 된다
아스카 시대(593년-710년)에 이르러 쇼토쿠(聖德) 태자에 의해 일본에 불교(佛敎)가 본격적으로 수용된 이래 각 시대별 일본 불교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나라 시대(710년-794년)의 불교는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호국불교의 성격이었고 승려들도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불교의 교리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당시 불교계의 주류는 법상종(法相宗), 삼론종(三論宗), 구사종(俱舍宗), 성실종(成實宗), 화엄종(華嚴宗), 율종(律宗)의 여섯가지 종파였는데 이를 남도육종(南都六宗)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를 대표
1. 남방정치(南方政治) 모택동은 1965년 11월 12일 북경을 떠나 호북성의 무한과 절강성 항주를 오가며 생활했다. 1966년 7월 18일에야 그는 다시 북경의 땅을 밟게 된다. 문화혁명의 불길이 막 치솟기 시작하던 최초의 8개월 간 그는 북경을 떠나 있었다. 1950년대부터 이미 모택동은 중앙정치가 난마처럼 꼬이면, 훌쩍 떠나 남방으로 가곤 했다. 1953년 12월 모택동은 헌법을 수정한다는 명분으로 항주로 내려가 서호의 빌라에 머물렀는데, 당시 중앙정치는 부주석 고강(高崗, 1905-1954 Gao Gang)과 중공중앙조직부
세계사에 많은 업적을 남겼던 한(漢), 당(唐), 송(宋)의 황금 시대를 기억하는 중국인들은 과거에는 자신들이 전세계의 중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8세기의 당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국가였다.중국인들이 세계질서를 주도하던 시기는 불교(佛敎)가 중국에서 융성하였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즉, 불교는 유교(儒敎)와 도교(道敎) 일색이던 한나라 말기에 중국에 전래되어 남북조 시대에 중국화된 후 당나라 시대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송나라 시대에 접어들자 유학의 분파인 주자학(朱子學)에 밀려 점차 교세가 약해진다.1958년 네덜란드의
중국 정보통신(IT) 업계의 대표적 인물인 마윈(馬雲)이 내년 9월 10일 알리바바 회장직에서 물러난다.마 회장은 10일 인터넷으로 성명을 내고 "오늘 알리바바가 19주년을 맞는 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모두에게 말씀드린다"며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알리바바 설립 20주년 기념일인 내년 9월 10일 알리바바 이사회 주석(회장) 자리를 장융(張勇) CEO에게 승계한다"고 밝혔다.내년 9월 10일은 마윈의 만 55세 생일이자 절강성 항저우의 한 아파트에서 알리바바를 창립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다.마 회장은 "오늘부터 장융과 전적으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3回. "참새大虐殺 寸劇" 한국어에서 몽상은 주로 '헛된 생각'을 뜻하지만, 현대중국어에서 “몽상(夢想)”은 긍정적 의미로 쓰인다. 일례로 2017년 10월 제8차 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 습근평(習近平,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부흥이야말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몽상"이라 말한 바 있다. 중국어에선 미래적 희망과 이상을 뜻하는 "몽상"이라는 멋진 단어가 왜 한국어에선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되었을까?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의 실현을 지향하지만, 자본주의는 현실의 한계를 수용하기 때
* "현대중국의 슬픈 역사"를 보다 더 깊이 살펴 보기 위해 이번 주에는 2004년 중국 절강성 금화지방에서 제가 만났던 한 중공군 참전병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7回. "어느 中共軍 이야기 2004년 여름, 나는 중국지방사 연구팀에 합류해 중국 절강성 금화(金華)에서 한 달쯤 지방 탐사의 기회를 얻었다. 금화는 남송 (1127-1279) 말엽 이래 성리학을 숭상해 “소추로(小鄒魯)”라 불리는 고장이었다.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을 도와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9回. “나는 皇帝로소이다 ” 1. 모택동사상의 부활 최근 중국공산당은 1982년 개정헌법에 명기된 5년 중임의 임기 규정을 파기하고 습근평(習近平, 시진핑) 주석에게 종신집권의 길을 터줬다. 등소평 지도 아래 채택된 5년 중임 임기규정은 실상 모택동식 일인지배를 막기 위한 헌법상 안전장치였다. 등소평 지배 이후 거의 30년 유지된 중국 특유의 집단지도체제가 이제 안전장치를 상실한 채 바야흐로 일인지배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홍콩 자유언론(Hong Kong Free Press)은 공산당의 그 결정을
4일 오전 9시 40분께, 전남 신안군 가거도 남서쪽 35해리(64.82km) 해상에서 우리 해경이 등선해 나포한 중국어선이 이를 재탈취하려는 다른 중국어선의 충돌을 받았다.당시 우리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은 60~80t급 50여 척인데 반해 해경은 경비함정 5척, 어업지도선 1척, 해경헬기 1대을 투입해 대응했다.불법 조업 퇴거명령을 받은 어선들은 지그재그로 방향을 틀며 단속 요원들의 등선을 방해했다.해경은 어선 2척을 나포했으나 이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탈취하려는 중국어선이 충돌을 시도해 나포된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