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0回. “反外勢 孤立主義의 어리석음” 1. 백년국치(百年國恥)내겐 1995년 여름 하얼빈 공업대학 교정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20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산동 출신의 오랜 친구가 한 명 있다. 고교시절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그는 현재 심천(深川)의 공업단지에서 풍력발전 사업으로 꽤나 성공한 벤처 사업가로 활약하고 있다. 몇 년 전 홍콩의 학회 참석 차 심천에 들러 오랜만에 회포를 풀 때, 그는 내게 직접 써서 블로그에 올린 오언절구(五言絶句) 한 수를 보여주었다. 이 몸은 티끌처럼 작지만 (我身本尘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7회. “土地改革殘酷史!” 국공내전이 한창일 때 공산당이 점령한 “신(新)해방지”에선 급속하게 공산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핵심은 토지개혁이었다. 공산당 지도부는 당시 중국 전역의 농촌에서 대략 10프로의 농민이 지주(地主) 혹은 부농(富農)이라 단정했다. 토지개혁은 바로 그 지주와 부농 소유의 토지를 압류해 중농(中農)과 빈농(貧農)에 재분배하는 과정이었다. 중국정부의 선전에 의하면, 토지개혁은 지주, 한간(漢奸, 친일매국노), 국민당부역자, 토호 등등 소수의 적인(敵人)을 제거하고 다수의
[문혁춘추: 현대중국의 슬픈 역사] 6회. “인민해방군과 인해전술” 1. 국공내전의 클라이막스, 회해전역(淮海戰役)! 1948년 10월 11일, 금주(錦州) 함락 나흘 전, 만주에서의 승리를 확신한 모택동은 남경 북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회수(淮水) 일대에 50만 대군의 투입을 결정한다. 중부 평원을 타고 장강(長江)으로 진격해 남경과 상해를 넘보는 작전이다. 만주에서 파견된 공군(共軍)은 북경 지역의 일부 세력과 합류해 놀라운 속력으로 중부 평원으로 몰려간다. 불과 1달이 못돼 공군은 강소(江蘇), 안휘(安徽), 하남(河南)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