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억 중국인은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잃었을까?중국의 15억 인구는 어떻게 하늘이 한 개인에게 부여한 천부의 자유를 잃고 공산당과 그 수괴인 1인 독재에 침묵·순종하며 살아왔으며, 지금도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근본적 의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역작이 발간되었다. 캐나다 맥마스터대학 역사학과에 재직 중인 송재윤 교수의 3부작 『슬픈 중국』이 그것이다. 『슬픈 중국』 3부작은 충격과 경악 그 자체다. 지금까지 마오쩌둥이 저지른 광기의 학살극을 중국공산당은 ‘대약진운동(The Great Leap Forward)’이니 ‘문화대혁명’
1981년 1월 25일, 중국에서는 이른바 4인방에 대한 공개 재판이 열렸다. 4인방이란 마오쩌둥 주변 인물 네 사람으로서 중국 문화대혁명 동안 권력을 장악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고통에 몰아넣은 자들이다. 마오쩌둥의 아내인 장칭[江靑], 정치국 위원 야오원위안[姚文元], 부주석 왕훙원[王洪文], 국무원 부총리 장춘차오[張春橋]가 그들이다. 지역 간 심한 방언 때문에 피고 등 참석한 주요 인물들이 통역 헤드폰을 끼고 등장한 재판의 모습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보여졌다. ‘죽(竹)의 장막’으로 철저하게 가려져 그 속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들을 향해 자제를 호소하고 나섰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당내 ‘이탈표’가 대거 발생한 이후, 개딸들은 ‘찬성표’ 등을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의 얼굴과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공천 살생부’를 배포하는 등 행보가 점차 과격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문재인, 이낙연, 김어준 등이 포함된 ‘살생부’ 혹은 ‘수박 처단 명단’ 나돌아게다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당대표까지 ‘수박 처단’ 명단에 올리면서 당내 갈등을 부추기자, 이 대표가 내부 공격 중단 요청
1. 주석님의 호화열차 1965년 12월 초, 계획대로 요문원의 오함 비판이 전국의 주요 매체를 장식하자 모택동은 유유히 북경을 떠나 상해로 향했다. 이후 8개월 그는 북경에 돌아가지 않은 채로 상해와 장강 이남의 도시들을 오가며 지냈다. 모택동은 원할 때면 언제든 어느 곳이든 불쑥 찾아가서 맘대로 머물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무한, 항주, 광주 등등 전국의 주요 도시에는 모택동만 사용하는 호화 빌라들이 있었다. 항주에 가면 그는 서호(西湖) 부근에 위치한 청나라 거상의 빌라에 머물렀다. 16만 평에 달하는 호화판 저택이었다. 무
1. 문화혁명: 대중운동인가? 관제데모인가? 공식적으로 “중국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은 1966년 5월 16일 중공중앙위의 통지가 정부 각 조직에 반포되면서 시작되어 1976년 10월 4일 4인방이 전격적으로 체포될 때까지 무려 10년 동안 전 중국을 혼란, 폭력, 살육, 기근 속으로 몰아넣었던 극단적인 “대중운동”(mass movement)이었다. “대중운동”에 국가공인의 발발과 종결의 시점이 있다는 사실은 지독한 패러독스(paradox)이다. 모름지기 대중운동이란 권력의 부패나 국가의 폭력에 맞서는 인민의 자발적인 저항이어야 한다
송재윤 (宋在倫, 하버드 대학 박사)-맥매스터 대학(McMaster University) 교수(중국역사/철학), 작가-주요저서: 학술서적 Traces of Grand Peace (Harvard University) 및 영어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등. 1. 여전히 중국은 미지의 대륙2018년, 한반도를 둘러싸고 격심한 변화가 예견된다. 의 경구처럼, “매사 극단으로 가면 변하게 마련이고, 변화는 막힌 것을 뚫고, 막힌 것이 뚫리면 오래도록 새로운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