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이 설움, 저 설움 해도 집 없는 설움이 제일 큰 설움이라고 일러왔습니다. 새도 보금자리가 있고 다람쥐도 제 굴이 있다는데 제 몸담을 변변한 집이 없어 여기저기 떠돌며 행랑살이하는 사람들의 설움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 공화국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설움을 모르고 삽니다. 심지어 집값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국가에서 지어준 궁궐같은 새집을 무상으로 받아안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사회에 사는 우리 인민은 정말 행복합니다.”위에서 인용한 글은 북한의 대
지난 27일 2023년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윤석렬 대통령은 “우리 국민과 주변국들이 북한 주민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하셨지요. ‘통일은 갑자기 올 수 있다’는 말은 더더욱 가슴 설레게 했습니다. 지난 문재인 정권 시기 남북한이 평화롭게 지내다보면 언젠가는 통일이 된다‘는 말로 남북한 주민을 기만했던 일을 생각하면 이제야 정상이 된 것 같습니다. ‘북한 주민의 실상’이라는 말을 들으며 지난날 북중국경에서 촬영한 사진 몇 장이 떠올랐습니다.최근 백두산 지역이 영하 41도를 기록하고, 56년 만에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해 어떤 소망을 품고 계시는지요?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큰 뜻 이루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분단 조국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할 통일을 소망하는 건 너무 거창한 꿈일는지요? 제가 아는 한 기자는 자신의 꿈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지요. 북한 정권이 붕괴하는 그 날, 정치범수용소가 허물어지는 역사적 현장 앞에 반드시 서 있겠노라고 말입니다. 개인의 안위와 소망을 뒤로 하고 나라와 민족을 품은 그 청년의 꿈이 참으로 위대해 보이지 않습니까? 끝이 보이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함께 이 길을 가다 보면 그날 속히
김정은이 또 딸을 데리고 등장했다. 지난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에 참여했던 공로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자리였다. 리설주를 닮았다는 흥밋거리를 넘어 그 의미를 깊이 살펴봐야 한다. 김정은은 왜 딸을 공개했을까? 김정은의 딸을 공개한 11월 27일자 노동신문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이 기사에서 유독 눈에 띄는 단어는 바로 '존귀하신 자제분', '후대', '백두혈통' 등이다. 기사의 원문을 그대로 보면, "조국과 후대들을 위하여 우선 강해지고...", “앞으
‘무례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말 그대로 ‘예의가 없다’는 뜻이다. 서해안 공무원 피살사건과 관련한 감사원의 서면 요구에 대해 문재인은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고 말했다. ‘무례하다’도 아닌 ‘무례한 짓’이라는 표현을 썼다. ‘짓’은 어떤 행위에 대해 지극히 낮추어 부르는 비속어다. 한마디로 독립적 헌법기관에 대해 무례하다고 말하는 전직 대통령의 무례함 앞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감사원 감사의 부담함을 지적하며 “국민이 진정 촛불을 들기를 원하는 것이냐”고 했다. 이재명 당대표까지 나
지난 8월 28일은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또 하나의 치욕스러운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날 개최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재명은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는 수락 연설에서 “절망에 빠진 국민을 구하고 대한민국을 구하라는 지상명령”이라고 언급했다. 제발 국민을 위한다는 뻔한 거짓말은 하지 말아 주기를. 민주라는 당명을 내세우지만 정작 민주는 없고, 제1야당이 한 개인의 방패막이를 위한 사조직이 되어버렸다. 이재명과 관련한 대장동, 성남FC후원금, 법인카드 불법사용,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에 관한 수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 사건에 연루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싶다.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라 호칭하는것이 정녕 부끄럽지 아니한가. 대체 왜 희대의 독재자 이름을 존칭어까지 붙여가며 불러주어야 하는가.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것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독재자를 위원장이라 부르면 진짜 위원장처럼 보인다.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된 것’처럼 말이다.지난 문재인 정권 시기 남북정상회담 '쇼'는 한마디로 극적인 연출이었다. 사상 최악의 독재자인 김정은
치욕스러운 날이었다. 얼마나 북한의 눈치를 봤으면 일명 김여정 하명법이라 불리었을까. 지난 2020년 6월,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북한 김여정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자 단 하루 만에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14일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시키고 재적 의원 180명 전원 찬성으로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대북전단금지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청와대도 "대북삐라는 백해무익한 행위"라고 가세했었다.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이 법안의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북한 정권의 눈치보기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퇴임한 대통령은 철옹성 같은 요새에 둘러싸였고, 현직 대통령은 특별경호도 없이 국민의 일상과 함께하니 말이다. ‘사람이 먼저’라며 그리도 서민임을 외치던 문재인은 퇴임 후 결국 국민과는 유리된 성벽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자연인으로 살겠다는 그의 말은 언제나처럼 거짓말임이 금세 드러났다. 연일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다. 급기야 따님이 직접 나서 그의 낮잠 자는 모습까지 공개하더니 자칭 문파1호로 자처하며 또 갈라치기를 한다. 달콤한 권력욕에 취해 아직도 몽환의 세계에서
결론부터 말하지요. 당신은 희대의 독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독재자라는 말을 인정하기 어렵다구요? 아마 인정하기 싫겠지요. 어쩌면 독재자라는 개념 자체를 모를지도요. 한국의 어느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시구를 남겼지요. 지난 5년간 당신을 '위원장'으로 또 당신의 아내를 '여사'로 존대하며 꼬박꼬박 불러주었을 때 당신들은 진짜 그런 인물인 듯 행세했겠지요? 평화쇼로 눈 가리고 독재자를 마치 평화의 전도사인 양 미화한 우리 정부의 책임
먼저 ‘여사’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 노여워 마시기 바랍니다. 전직 대통령의 이름도 함부로 부르고, 심지어 조롱의 의미로 ‘씨’라는 호칭을 붙이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더욱이 여사라는 뜻은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표준대국어사전)이니 당신을 부를 때 사용할 호칭은 아닌 듯합니다. 지금도 저에게는 몸서리치도록 잊히지 않는 표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난 2020년 3월 28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었지요. 그곳에 참석했던 당신의 얼굴은 어떠했습니까. 세상에 그토록 표독스러운 표정이 또 있을까
다시 3월이다. 103년 전, 아우내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바로 그 3월이다. 나라 잃은 설움에 목숨까지 내어가며 울분을 토해냈던 그 위대한 날을 되새겨본다. 뼛속 에이는 북풍한설 몰아내고 새 출발을 알리는 3월 앞에 지금 우리가 섰다. 대선을 치루는 2022년 3월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는 대한민국을 선택할 준비가 되었는가?통일‧북한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필자에게 대선후보의 선택기준은 당연히 대북정책과 북한정권을 바라보는 인식 등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거짓 ‘평화쇼’로 북한정권의 눈치만 보는 대
지금이,안일화를 외칠 만큼 안일할 때인가?단일화는 필요 없다 단정할 때인가?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역사에서제명이 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상황이다.서민의 삶을 나락으로 내몰고,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든 책임을 따져 물어도 시원찮을 판이다.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아우성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막상 참된 지도자가 없다. 홍수가 나 사방이 물바다인데 정작 마실 물이 없는 꼴이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을 맞는 국민의 마음은 비참할 정도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는 결단코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2021년이 이제 단 하루 남았습니다. 올 한 해 참으로 힘겨우셨지요? 지난 5년여 동안은 또 어떠하셨습니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참고 견디시느라 정말 애쓰셨습니다. 2022년 대망의 새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다시 회복할 절체절명의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백척간두에 놓였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올바른 국정철학과 국가관을 상실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동안 여실히 경험했습니다.그토록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더니 결국 ‘내로남불’이라는 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