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최고의 부유함을 구가하던 1963년 뉴욕주 로클랜드 카운티에 살던 한 유복한 중산층 가정주부가 책을 썼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엄마가 된 여자의 좌절과 고독을 이렇게 묘사했다. “침대 정리 하고, 시장 보고, 소파 덮개 갈고, 아이들과 피넛 버터 샌드위치 먹고, 보이스카웃이나 걸스카웃에 아이들 데려다주고, 밤이면 남편 옆에 누울 때 나는 자신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게 다 인가?”물론 그녀는 아주 평범한 가정주부는 아니었다. 명문 여대인 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버클리 대학원 연구생으로 1년 다녔다
미션 콘셉시온과 덕수궁 정관헌미국에서 ‘미션 콘셉시온’이니 ‘미션 에스파다’니 하는 이름의 오래된 교회들을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텍사스에는 왜 샌 안토니오나 엘 파소 같은 스페인 식 지명이 많고, 켈리포니아에는 왜 샌프란시스코니 샌디에고 같은 도시명이 많으며, 서부 영화에는 왜 리오그란데 같은 스페인 단어가 등장하는지 알게 되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천상의 음악이 펼쳐지던 영화 ‘미션’도 비로소 확연하게 시간과 장소가 특정되었다. 텍사스와 켈리포니아는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미합중국으로 편입되었고, 그 이전 110년간 스페인과
가시성과 권력전통적으로 권력은 언제나 떠들썩하게 자기를 과시했다. 서양의 중세 도시 광장에서 죄수를 잔혹하게 고문한 후 처형하는 날이면 사람들은 생업을 전폐하고 구름처럼 모여 환호성을 질러댔다. 고문이 잔혹하면 할수록 군중의 환호성은 높아졌다. 완전히 카니발의 축제날이었다. 공개처형은 죄수를 잔인하게 징벌하는 과정을 백성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군주에 대한 경외감을 높이는 일종의 통치 수단이었다.그런데 어느 순간 공개처형이 광장에서 사라졌다. 권력과 죄수 사이의 역할의 전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권력을 두려워하고 죄수를 조롱하던 군중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인파 속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사진은 참으로 불쾌했다. 평양 시민들이 흔들어대는 빨간 꽃은 영락없이 무당 꽃 같았고, 여자들이 입은 한복은 무늬와 색깔이 난잡하고 야단스러웠다. 대리석 기둥과 아치로 치장한 노동당사(3층 서기실)는 그냥 값비싼 키치였고, 그 호사스러움은 평양 밖 주민들의 혹심한 가난과 대비되어 민망했다. 그래도 남한의 수많은 개인들은 젊은 김정은의 통 큰 리더십을 찬양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것이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나라 망했다’고 나지막하게 되뇌이는 요즘, 시대를 거슬러
신체자본상류층일수록 큰 키에 얼굴이 잘 생긴 남성과 날씬한 몸매에 얼굴이 예쁜 여성들이 많다. 신체의 속성이 사회계급별 분포상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신체가 사회적 위계에 상응하므로, 한 사람의 신체에 대한 미적 표상은 그의 사회적 계급과 거의 그대로 일치한다. 결국 신체 자본은 경제 자본과 나란히 간다.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생물학적 유전이 가끔 다른 모든 측면에서 전혀 혜택 받지 못한 계층에게 최고의 미모를 선물하는 변덕을 부릴 때가 있다. 상류층의 우아함이 느껴지는 빼어난 미모의 가수와 배우들이 거의 아주 가
미국의 대학생들은 4년간 대학을 다니고 나면 골수 리버럴(liberal)이 되어 사회로 나온다. 이때 리버럴은 버크에서 출발하여 하이에크에 이르는 보수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완전히 사회주의의 다른 이름이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좌파다. 그들은 민주당 노선을 앵무새처럼 따라 말하고, 마르크시즘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미국을 인종차별주의 나라 혹은 전쟁광의 나라로 증오한다. 환경 문제, 섹스 문제,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아랍-이스라엘 분쟁에 이르기까지, 대학들은 끊임없이 극렬한 반미주의 리버럴 예비군을 양산해 내고 있다. 젊은 보수
좌파와 우파가 있다. 좌파는 진보, 민주화, 주사파, 친북, 종북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빨갱이’라는, 이제는 사적 대화의 수면 밑으로 숨어 들어간 매우 논쟁적인 이름도 있다. 우파는 보수, 반공, 산업화, 군사정권, 권위주의, 친일파 등의 이름이 있고, 조롱의 함의를 지닌 태극기, 틀딱 등의 별명을 갖고 있다.사상적으로 좌파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고, 우파는 반공, 자본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개인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특정 개인들이 들쑥날쑥 편차를 보이기는 해도 대강은 이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실재(實在)’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개념이다. 영어에서 대문자 the Real로 표기하는 그의 실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실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자라 하더라도 이 용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큰 흠이 아니다. 인문학은 그 범위가 한 없이 넓어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많은 저서와 강연으로 20~30대 여성 독자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한 문학평론가가 이 용어를 잘 못 이해하고, 그 잘못된 해석을 저서와 강연을 통해 확산시킨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다. ‘문
조짐은 전혀 없었다. 세계적으로 경제는 대호황이었고, 베이비붐 현상으로 거리마다 젊은이가 가득했다. 1965년 프랑스의 젊은 세대 인구수는 25년 전에 비해 50%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총 인구 수가 25% 증가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였다. 사람들은 온통 청춘을 찬양했다. ‘젊은 프랑스’, ‘젊음을 만끽하라’, ‘무조건 젊어야 돼!’ 모든 신문과 잡지의 페이지들을 연일 장식했던 문구였다. “젊은이들은 생각이 깊어. 우리 세대보다 공부도 많이 했고. 아마 우리보다 훨씬 더 잘할 거야.” 나이 든 사람들이 늘상 주고받던 말이었다.
파시즘은 정치를 예술화 했고, 공산주의는 예술을 정치화 했다고 벤야민은 말했다. 정치 행위를 예술인 것인 양 하든, 예술가의 작품이 실제로 정치적인 것이든 그 어느 쪽도 결국은 전체주의다.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실험이 모두 실패로 끝나 사회주의적 환상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21세기 오늘 날,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아직 예술의 정치화와 정치의 예술화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왜 한국의 화가, 문인 등 예술가들은 모두 좌파냐고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물론 기존의 관습에 저항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의 본령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 메이저 신문의 주말판에 연극인 손숙과의 인터뷰가 실렸다. 미투의 가해자가 유독 좌파에 많은 이유를 묻는 기자 질문에 손숙이 “성 문제에 좌우가 어디 있겠어요?”라고 대답하자 기자는, 아마도 ‘여성 문제에 진보적인 줄 믿었다 발등 찍혔다는 배신감, 우파 못지않게 위선적이고 부도덕하다는 실망감...’ 때문일 거라고 스스로 분석했다. 우파 못지않게 위선적이고 부도덕하다? 우파는 그럼 당연히 부도덕하고 위선적이란 말인가? 성추행을 저지른 건 좌파들인데 굳이 상관없는 우파를 슬쩍 끌어 들여, 마치 위선과 부도덕성이 우파의 본질인 듯 규정
이윤택, 그는 과연 블랙리스트로 불이익을 당했는가?여자 단원들은 밤마다 돌아가며 황토방이라는 별채로 호출 받아 수건으로 단장의 나체를 닦고 성기와 그 주변을 안마했다. 배우 김보리(가명)는 19세이던 2001년과 20세이던 2002년 두 번의 성 폭행을 당했다. 배우 김지현은 2005년에 임신했고, 혼자 조용히 낙태했다. 그보다 더 적나라한 묘사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감히 옮길 수가 없다. 연극인 이윤택.촛불 시위 때는 광화문 광장에 나가 연극 공연을 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7년 6월에 한겨레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광
비트코인을 비교적 초기에 경험하다아직 일반인들이 비트코인이니 랜섬웨어니 하는 말을 잘 모르던 몇 년 전에 나는 비교적 일찍 비트코인을 경험했다. 어느날 원고작업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파일을 클릭하는 순간 갑자기 모든 파일의 확장자가 crypt로 바뀌면서 컴퓨터 안의 모든 문서와 이미지 데이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드롭박스에 저장해 놓은 데이터도 예외가 아니었다. 확인하느라 새 파일을 누르는 순간마다 도미노처럼 확장자가 크립트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치 서양 교회당의 지하 납골당(crypt는 지하 납골당이라는 의미다. 그
사치의 정치학장밋빛 대리석 계단, 분수, 잔디, 기하학적으로 전지(剪枝)된 나무들, 그리고 온통 금과 수정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궁전에서 수 천 명의 기지와 매력이 넘치는 남녀가 매일 밤, 잔치를 벌이며 호화스러운 궁정생활을 즐기고 있다. 보석으로 수놓은 의상, 관복, 시종들의 제복, 샹들리에, 마차, 녹색과 홍색의 벨벳 커튼, 비단 꽃무늬 의자, 이 모든 것들이 시시각각 찬란한 오색 빛을 발하며 환상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귀족들은 저녁 6시가 되면 모두 포장을 걷어 올린 마차를 타고 나가 음악을 들으며 운하에서 곤돌라를 타고 뱃놀